채영선 제2시집 < 미안해 >해설

2016.12.22 13:21

채영선 조회 수:175

채영선 제2시집 <미안해> 해설 (2014년 창조문학사)

 

 

                                              자연 친화의 지극한 시학

                                                 -채영선 시인의 시집 <미안해>에 부쳐

 

 

 

                                                                                                홍문표

                                                                                               (문학박사. 신학박사. 시인. 평론가. 전 오산대 총장)

 

 

   채영선 시인이 그의 두 번째 시집 <미안해>를 상재하게 되었다. 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물신주의로 삭막해진 세상에서 시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인데 시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감동적인 작품을 통해 함께 공감하겠다는 노력이 얼마나 갸륵한 것인가.

   일반적으로 시를 쓴다고 하면 어떤 대상을 시적으로 드러내는 것만 알고 있다. 그래서 대개의 시집들은 그 제목을 명사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에 대한 어떠함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채 시인의 이번 시집은 제목을 <미안해>라는 형용사형의 반성적이고 고백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매우 이색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안해란 무슨 말인가. 남에게 대하여 거북하고 부끄럽고, 겸연쩍은 심리적 상태를 숨기지 않고 말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앞세워 상대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 오히려 감추거나 변명하려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우리의 문학사나 우리의 정신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하려는 참회록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반성은커녕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거나 괴변으로 일관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제기하면 모르쇠로 일관한다. 정직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고, 반성하지 못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크라인 바움이 말하는 죽은 시인의 사회이고 때 묻은 속물들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채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서 미안해하는 진정은 무엇인가. 책 제목이자 시집의 서두에 제시하고 있는 미안해를 보자.

 

       미안해 이파리가 많아서

       나뭇잎을 조금 일찍 덜어뜨릴까

 

       메아리 소리 사라질까봐

       아무 것도 모르는 아파트 땜에

 

       손님은 많이 오는데

       구름, 바람...

       빗방울은 나그네지만

 

       뒷산이 안 보이면

       병이 나고 말거야

 

       태풍을 기다리고 있어

       차라리 데려가줄까 하고

                                                                           -미안해전문

 

    작품 미안해의 시적화자는 누구일까. 첫 구절에서 미안해란 말을 제시하면서 그 사연을 역으로 풀어가고 있다. 첫 연에서는 이파리가 많은 나뭇잎을 일찍 떨어뜨릴까라고 했다. 왜 이파리를 떨어뜨리자는 것인가. 그 이유는 둘째 연에서 해명된다. 바로 메아리 소리가 사라질까봐 이파리를 떨어뜨리겠다는 생각에 대하여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파트 때문에라는 구절을 덧붙이는 것을 보면 시적 화자가 미안해하는 사연의 실마리는 바로 메아리 소리, 즉 자연의 소리, 투명하게 진동하는 자연의 메아리가 방해받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이 제 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래서 내가 자연과 흡족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것, 그 안타까움이 바로 시적 화자가 미안해하는 이유가 된다는 말이다. 그 안타까움을 극명하게 보이는 구절은 바로 넷째 연이다. 뒷산이 안 보이면 병이 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시적 화자는 자연의 메아리와 뒷산이 그의 절대적인 관계인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지금 자연과 공생의 관계다. 그런 관계가 지금 아파트에 의해서 방해되고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에 대해서 시적 화자는 지극히 미안한 맘을 갖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연을 노래한 시인들은 많다. 아니, 시인이라면 누구나 자연을 노래하기 마련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는 자연의 모방이라고 했듯이 자연이야말로 시의 원천이고 시의 재료이고, 삶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과 인간의 공존관계는 이미 태초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태초에 자연을 먼저 창조하셨다. 그리고는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갈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연을 터전으로 해서만 살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과 인간이 공존관계라고 할 때 대개는 서로가 주고받으며 이익을 공유하고 생존을 같이하는 그런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자연관을 가진 시인은 자연이란 유용한 것이며 무상한 것이며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거나 묘사하거나 찬양하는 정도의 노래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자연을 노래한 대개의 시들이 그렇다. 마치 여행객들이 새로운 공간을 만날 때마다 그 감격을 기행문으로 기록하듯이 시인은 자연을 구경꾼의 입장에서 제 삼자가 되어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것이다.

   자연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이성적 인간으로서는 매우 합리적인 자세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근대 산업혁명이 발달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공존의 관계이거나 이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저 만큼에 있는 꽃밭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에 봉사하는 존재가 되어 무참히 파괴되는 비극을 맞는다. 지연이란 다량생산과 다량소비의 소모품에 불과하여 개발이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짓밟히는 처지가 된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학대와 정복을 처음엔 대단한 승리로 알았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자연의 파괴는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왔고, 그것은 자연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마저도 파괴되는 무서운 저주의 굿판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셨다. 우주 자연은 그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도 그렇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역시 보기에 좋았더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연을 창조하신 것이나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모두 보시기에 좋았더라에 있다. 인간에게 자연을 관리하도록 경영권을 주신 것은 인간이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고 지배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잘 관리하고 보살펴서 더욱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선한 세상을 만들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의 본보기가 바로 하나님이 마련하신 에덴동산이다. 에덴 동산은 자연과 인간이 구별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도 구별되지 않는다. 하나님, 인간, 자연, 모두가 하나 되어 감성과 이성으로 소통하는 영원한 평화의 세계다.

   도대체 시를 쓰는 본질이 무엇인가.. 왜 시를 쓰는가. 시를 써서 무얼 하자는 것인가. 그것은 인간이 꿈꾸는 궁극적인 세계의 실현이다. 그 궁극적인 세계는 대립과 분열이 아니고, 파괴와 저주가 아니라 구별되고 차별화된 너와 나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사랑이 분열된 인간과 자연,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는것처럼 시도 분열되고 상실된 모든 관계들을 회복하는데 절대적인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열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이 회복의 진리는 이미 하나님이 먼저 시행한 것이다. 하나님은 배반한 인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성육신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신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관계회복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동화되는 비상한 사건이 아니고는 화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회복의 원리가 바로 시에서 메타포(metaphor)로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시학에서 의인화라든지 감정이입이라든지, 은유라든지 하는 표현기교들이 모두 분열된 자연과의 회복을 위한 화해의 방식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대개의 시인들은 왜 자연과 화해를 해야 하는지 그 근본을 모르고 단지 표현기교라는 이유로 억지로 자연과의 통합을 모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은 타자도 아니고 제삼자도 아니고, 우리들 생명의 터전이고, 우리들의 영양가이고, 우리들의 피와 살이다. 아니 하나님이 모든 생명들을 위해 주신 은혜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을 학대하고 파괴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육신을 학대하고 파괴하는 것이고 주물주의 섭리를 거역하는 것이다. 채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자연에 대하여 미안해라고 한 말은 단지 채 시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인간들이 저질러 온 자연에 대한 학대와 파괴로 인해 자연이 그 순수성을 잃고 신음할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인간과의 소통이 단절되고 그로인해 인간마저 병들게 된 사실에 대한 깊은 반성과 참회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데서 채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서 보여주는 자연 친화에 대한 보다 차원 높은 진정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왜 채 시인은 자연에 대하여 미안해하는가. 그것은 자연에 대한 그의 깊은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어쩌면

       나무는 당신의 숨결

       태초에

       당신의 숨으로 살아

       모래알처럼

       저마다의 길을 가는

       한낱 자벌레에게

       순간마다 베푸시는 당신의 날숨

 

       어쩌면

       태양은 당신의 사랑

       태초에

       당신에게 길들지 못해

       여물지 못한 몸

       어두움 벗어나려고

       조각난 형상

       때워주시려

       눈부시게 떠오르는 당신의 사랑

 

       어쩌면

       바다는 당신의 가슴

       태초에

       당신의 약속을 잃어

       가시와 슬픔의 땅 비틀거리며

       찾아 온 항구

       나그네 길 끝나는 곳에

       계절 없이 기다리는 등대처럼

       보듬어주시는 당신의 가슴

 

                                                                       어쩌면전문

 

   왜 나무가 소중하고 자연이 소중한 것인가. 나무는 어쩌면 당신의 숨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순간마다 베푸시는 당신의 날숨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생명들을 키우기 위해 태초부터 지금까지 베푸시는 생생한 당신의 날숨인 것이다. 그것은 태양도 그렇다. 태양은 단지 우연하게 태어난 유성이 아니다. 길들지 못하고 여물지 못하고 조각나버린 것들을 익혀주시고 채워주시고 때워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그것은 바다도 그렇다. 바다는 그냥 푸르른 물이 아니라 당신의 한없이 넓은 가슴이다. 태초에 당신 약속을 잊고 방황하는 존재들의 등대처럼 모두를 보듬어 주시는 당신의 넓고 자비로운 가슴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은 그냥 자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분신이고 하나님의 숨결이고 사랑이고 뜨거운 가슴이 된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를 자연계시라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자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채 시인에게 있어서 자연은 한낱 정복의 대상이거나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소모품이 아니라 그 자연을 통해 오히려 당신의 숨결을 경청해야 한다. 그러한 자연을 훼손하고 있으니 채 시인으로서는 한 없이 부끄럽고, 죄송하고, 미안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두렵고 불안하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다음시를 읽어보면 그가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바람 벽 뒤에 서 있는

       너의 인기척을 느낄 수 없다면

 

       사월이 되어도 봄이 오지 않으면

       봄이라고 말해주는 개나리

       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지 않으면

 

       하늘의 별빛이 어두워진다면

       내 마음을 알고 있는

       별들이 빛을 내지 않으면

 

       봄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린 사과나무가 말라 버린다면

       짝을 지어 날아간 새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아무리 눈을 감고 헤아려 봐도

       너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으면

       아 나는 안개처럼 시들어져

       바구니 마른 꽃이 되어 버린다면

                                                                                   - 만약에전문

 

 

       봄비가 속삭이고 있네요

       가슴 속으로 눈물이 흐르네요

       마음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어도

       몸은 여기 머물고 있네요

 

       꽃잎이 스러지고 있네요

       눈 속에 피어난 보라색 꽃송이

       봄비에 떨어지고 있네요

       마음 속 꽃송이 따라 지고 있네요

 

       봄바람이 흔들고 있네요

       마음이 송두리 채 흔들리고 있네요

       못다 한 말 마디마디 지워지고 있네요

       붉은 열매 알알이 떨어지고 있네요

 

       사랑이 떠나고 있네요

       남겨둘 말 한 마디 남아 있지 않네요

       한 여름 밤 꿈으로 사라지고 있네요

       밤하늘 별똥별처럼 흘러가고 있네요

                                                                          - 잃어버린 사월에전문

 

   자연과 분열된 인간의 고독, 너와 나의 단절감, 그것은 두려움이고 절망일 수밖에 없다. 만약에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바람 벽 뒤에 있는 자연의 진실을 느낄 수 없다면, 봄이 오지 않으면, 개나리도 피지 않으면, 하늘의 별들이 빛을 내지 않으면, 봄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과나무가 말라버린다면, 새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리하여 자연의 순수한 얼굴을 기억할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안개처럼 시들어버리고 메마른 꽃이 되고 말 것이 아닌가. 인간이 자연을 계속 파괴하고 그래서 자연은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세상을 상상해 볼 때, 그것은 자연만이 패배가 아니라, 인간도 패배일 수밖에 없는 무서운 미래를 예견하면서 묵시적으로, 분열된 자연과 인간, 너와 나의 단절을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두려워하는 만약에의 경고는 시 잃어버린 사월에서 현실이 된다. 봄비가 속삭이고 있지만 시적 화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고, 마음만 저만큼 달려가지만 몸은 여기 있는 괴리감, 꽃잎은 떨어지고, 내 마음의 꽃잎도 떨어지고 바람은 불고, 하고 싶은 말도 지워져 버리고, 붉은 열매는 떨어지고, 사랑도 떠나고, 모든 것이 상실되는 고독과 절망의 현실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채 시인은 이 번 시집을 통하여 우선은 자연에 대하여 미안해하고, 자연과의 괴리에 대하여 두려워하며 걱정하지만 궁극적인 진심은 자연과 인간의 분열된 관계, 그리고 너와 나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자는 자연 친화에 지극한 소망을 두고 있는 것이다.

 

       청포묵 메밀부침 먹고 오는 길

       엉겅퀴 사그라진 길가 잡초 밭에

 

       아주까리 잎사귀 바람에 바시랑거리고

 

       덜커덩덜커덩 달구지에

 

       일이십 년 묵은 몸 뉘어

 

       굴다리 질러가는 호수 한 다라 이고

 

       콧노래 흥얼대며 오고 싶은 길

                                                                                      - 가을 나그네전문

 

       부슬비 내리는 천안 휴게소

       길 잃은 잠자리 쉬고 있다

       장마 속 집 떠난 나의 모자 위에

 

       굵은 빗방울에 날개 다칠라

       머리 위에서 잠자리가 단잠을 잔다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장마 비 속에 날아 온 편지

       사이좋게 지내자고

       때때로 힘이 들 때 도와달라고

 

       어느새 대구에 왔나

       보송보송한 풀밭에

       살그머니 내려주었다

                                                                                                 편지전문

 

   가을 나그네에는 시적 화자가 꿈꾸는 세상이 잘 들어나고 있다. 이 시는 우선 청포묵, 메밀부침으로 시작한다. 원래 에덴동산에서는 채식만 하였다. 육식은 노아홍수 이후부터다. 그는 엉겅퀴 사그라진 길가 잡초 밭에 아주까리 잎사귀 바람에 바시랑거리는 길을 상상한다. 그리고는 달구지에 몸을 뉘고, 호수 한 다라 이고, 콧노래 흥얼대며 유유자적하는 초월적인 삶, 그런 자연과 일치하는 안빈낙도의 삶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편지에서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장소는 천안휴게소, 달리는 관광버스, 바로 도시 문명이 있는 공간에서 피로에 쌓인 잠자리 한 마리가 안식처를 잃고 머리 위에서 낮잠을 잔다는 스토리다. 정상적인 안식처를 상실한 잠자리를 보면서 자연이 던지는 준엄한 메시지를 확인하게 된다. 내용은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보송보송한 풀밭에 살그머니 잠자리를 내려주는 행동을 통해, 자연 친화의 지극한 실천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채 시인이 보여주는 자연 친화의 지극한 시학은 어디에서 그 꽃을 피울까.

 

       너는 나에게

       오월에 내리는 이슬비

       우산을 쓰지 않아도 좋을

       머리칼이 젖어 흘러내리지만 않으면

       종일 맞으며 걸어 다니고 싶은

       가는 곳마다 너의 체취가 배어

       나는 숨이 막히고

       그 젖어 드는 옷깃에 남는 자국

       마른 다음에도 남는 그 자국을 따라

       이슬 내린 길섶을 서성대겠지

       겨울이 가고 다시 오월이 오면

       기다리던 마음 난초가 되어

       구르는 빗방울 느끼고 싶어

                                                                                      - 너는 나에게에서

 

       닭 벼슬보다 붉은

       맨드라미 길을 보고 있어요

       발밑에 가라앉은 돌을 세면서

       돌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

       큰 돌은 커서

       작은 돌은 작아서

       뒤뚱거리며 힘겹게 굴러온

       반짝이는 수면 아래에서

       흐느끼는 소리 들어본 적 있나요

                                                                                       - 청평호의 꿈에서

 

       이 자지러지는

       낯붉혀 숨죽이는 느낌표들을

       고통을 나눌 수 있다면

       베어낸 자리에 핏물은 흐르지 않아

       옥빛 치맛자락 팔랑거리며

       가파른 언덕길을 달려가겠지

       질긴 기다림 주머니 안에

       연두 빛 젊음을 눈부시게 감추고 있어

       들켜버린 속내 부끄러워서

       어디론가 달음질 하고 싶어서

       고개 숙여 천 갈래 만 갈래

       , 다그닥 다그닥 앓고만 있네

                                                                                           - 석류전문

 

   채 시인의 시학은 자연과 인간, 너와 나의 관계가 이성적으로 분열되고 갈등하고 그래서 고립된 세계가 아니라 사랑과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긴밀하게 결합되는 감성적 세계의 복원이다. ‘너는 나에게를 보면 너는 나에게 오월에 내리는 이슬처럼 신선한 생명 같은 축복의 존재가 된다. 가는 곳마다 체취가 있고, 그래서 나는 숨이 막힐 지경, 감격에 휩싸이는 정말 생명력이 충일하는 세상이 된다. ‘청평호의 꿈도 그렇다. 문명을 벗어난 청평호 길가에 닭 벼슬보다 붉은 맨드라미 길을 발견하고 발밑에 가라앉은 돌을 셀만큼 투명한 맑은 물을 발견한다. 거기서 흐느끼는 자연의 순수한 소리를 듣는다. 그러한 감격은 석류에서 절정을 이룬다. 자연과 인간의 분열이나 너와 나의 갈등을 극복하는 길은 단지 자연을 사랑하자느니, 자연은 아름다운 것이라느니 하는 제 삼자적 관찰이나 환경보호단체들 같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과의 분열에 대한 극복을 위해서는 명령이나 선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인자가 되어 십자가를 지시는 성육신과 희생으로 화해를 가능케 했던 것처럼 시인이 자연과의 화해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바로 인간과 자연이 메타포를 통해 내가 완전히 네가 되는 것이고, 네가 온전히 내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과 인간이 너와 내가 함께 에덴동산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석류의 붉은 알갱이들을 이 자지러지는 숨죽여 낯붉히는 느낌표들이라 하였다. 고통을 함께 나누었기에 베어 물어도 피가 흐르지 않는 순수가 있다고 했다. ‘옥빛 치맛자락 팔랑거리며 언덕길을 달려가는 희망이 있고 기다림이 있고, 젊음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때 묻지 않은 부끄러움까지 있다고 했다.

 

   물론 이것은 도시나 문명이나 이성이나 차별이나 미움이나 욕심과는 전혀 무관한 순수 자연의 세계, 바로 태초에 하나님이 자연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감격하셨던 그러한 감동의 세계,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처음 만났던 그 천진한 감정, 그 순수하고 황홀한 세계가 석류의 세계요, 채 시인이 꿈꾸는 자연 친화의 지극한 시학의 세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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