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에와 정치

2017.06.08 05:56

김학천 조회 수:1162

 오케스트라에는 제왕적 존재가 둘 있다. 지휘자와 오보에다. 음악을 완성시키는 것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의 몫이다.’란 말이 있듯이 지휘자 손마디를 따라 모든 파트가 일사불란하게 하나로 되기도 하지만 곡이 재조명되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지휘자를 거부한 오케스트라가 있다. 뉴욕의‘오르페우스 챔버’다. 단원 모두가 연주할 곡의 해석과정에 관여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듣는다. 그리고 리더도 그 때 그 때 뽑는다. 중앙집권적인 제왕적 통제를 없앤 거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이견 없이 절대적으로 따라야하는 튜닝이다. 다양한 각 악기의 오묘한 음들이 모두 다 잘 어울리도록 해야 하는 이 임무는 목관악기 오보에의 몫이다. 오보에가 내는 A(라)음에 맞춰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현을 조절하고 나면 나머지 악기들이 또 이에 맞추어 나간다. 그렇다고 오보에가 유아독전일까?

 오보에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름답고 애절한 음색과 다른 악기들 보다 튀는 오만한 음정 때문이다. 해서 이러한 심령을 자극하는 음색이 신성함을 거역한다 해서 영혼을 앗아간다는 낙인이 찍혀 중세 교회에서 추방당하기도 했다.
 또한 특이한 음정은 다른 악기와 어울리지 못하고 뚫고 튀어나오기 쉽기 때문에 자칫 공연을 망칠 수가 있어 경계 대상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해서 오보에 연주자들은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입에 무는 리드를 다듬고 또 다듬는다. 이는 오보에가 오케스트라 전체 음을 조율하는 절대 리더이면서도 자칫 한순간 방심으로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위험한 존재라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보에는 연주자와 함께 힘든 인내를 감수하고 처절한 수도자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이러한 철저한 자기희생과 성찰을 거치고 나서야 어떤 여건 하에서도 가장 안정된 음을 내는 믿음직한 악기로 거듭나게 된다.

 오보에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지난 반년을 혼란한 정국으로 상처받은 한국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제 그 공백을 메우고 상처를 치유할 새 정부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왠지 아직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우려는 너무도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불행한 전철의 그림자 때문일 게다.

 그러니 이를 거두어 내기 위해서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오르페우스 챔버가 중앙집권적인 제왕적 통제를 거부했다 것. 그리고 대화와 소통의 음악을 지향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며 효율성보다는 참여와 창의성을 존중한다는 것 말이다.
 또한 오보에가 가늠자 역할은 하면서도 화합을 위해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각고의 인내와 구도자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세종대왕께서 주신 경구에도 귀를 기울여야 봄이 어떨지. ‘성군(聖君)이 니샤도 경천근민(敬天勤民)하샤 더욱 구드시리이다. (아무리 훌륭한 왕이 대를 이어도 경천근민해야 더욱 안정될 것이다.) 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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