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그 여름>

2017.08.04 14:55

성민희 조회 수:18756

<7월, 그 여름>

 

성민희

 

 대학을 졸업한 그 해, 교수님께서 장애아들의 고아원에서 봉사할 의향이 있느냐 물으셨다. 그렇잖아도 먼저 다녀 온 선배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울며 돌아서 나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잠시 멈칫 했지만 한편으론 가보고 싶기도 했다.

 

 뜨거운 햇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7월의 한 낮. 언덕길을 헐떡이며 오르던 버스에서 내렸다. 오른편으로 산비탈을 끼고 왼편으로는 시원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부산 영도섬 귀퉁이의 작은 동네였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의 출렁임에 나의 머리카락도 함께 휘날렸다. 언덕배기 흙더미에 핀 보랏빛 개망초는 뜨거운 햇살의 주먹질을 하염없이 맞고 서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골목을 들어섰다. <oo 재활원> 간판이 걸린 기둥 뒤에 기역자로 앉은 건물과 넓은 마당. 한 낮의 지열이 어룽거리는 그 곳에는 투명한 햇살이 빨랫줄에 널린 아이들의 바짓가랑이에서 찰랑거렸다.

 

 사무실을 찾아 들어섰다. 후줄근한 와이셔츠 차림에 안경을 낀 40대의 남자가 연신 얼굴에 부채질을 하고, 광대뼈가 불그레한 원장님이 돋보기 너머로 나를 쳐다보았다. 벌써 연락을 받았는지 사무장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환한 얼굴로 의자를 권했다. 사무실 한쪽 귀퉁이에는 기증 받은 물건인 듯한 상자들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쌓여있었다. 원장님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책상 위의 서류를 뒤적이며,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이 기거하는 방부터 먼저 둘러보고 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울기만 하다가 돌아서 나왔다는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바싹 마른 체형의 보모 아가씨가 뾰족한 턱으로 가리키는 문을 열고 아이들의 침실을 들여다보았다. 남자 아이 예닐 곱 명이 기거한다는 방이었다. 나는 숨을 헉 들이켰다.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방 복판에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배를 바닥에 깔고 있었다. 모두 심한 소아마비거나 정신박약아였다. 더욱 가엾은 것은 장애아란 이유로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아이는 시장바닥에, 어떤 아이는 고아원 문 앞에 버려졌다고도 했다. 그들은 일반 학교로는 갈 수 없는지라 교육청에서 파견한 특수교사의 지도를 받아야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가야할 아이들도 초등학교 교과서로 공부를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나는 교실까지 둘러보고 나서 원장님과 사모님, 사무장과 보모, 그리고 한 살배기 딸을 키우는 얼굴이 하얀 주방아줌마와 함께 부엌 식탁에 앉았다. 어떻게 할까. 내 마음은 아이들의 눈동자만큼이나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제 스스로 뭘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없어요. 예산이 없어서 직원을 더 쓸 수도 없구요.” 원장님은 무심한 척 시선을 마당에 꽂아둔 채 팔짱을 끼며 말했다. 사모님은 파마가 풀어진 푸석한 머리칼을 자꾸만 귀 뒤로 넘겼다. 천장에서 돌고 있는 선풍기도 힘이 드는지 더운 바람만 뿜어내었다. 마당 한 구석에 누런 개는 혀를 길게 빼물고 엎드렸다.

 

 점심시간이었나 보다. 아이들은 저만치 식탁에 둘러앉아 숟갈로 밥을 퍼 먹었다. 비록 목발에 의지한 상태지만 그나마 거동을 할 수 있는 큰 아이들이 식탁 사이를 돌아다니며 동생들의 밥그릇을 챙겨주었다. 간신히 죽을 면한 것 같은 질척한 보리밥과 시래기가 둥둥 뜬 된장국. 아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양만큼 식탁 위로도 흘렀다. 국을 한 숟갈 입에 떠 넣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열 두어 살은 되었을까. 귀밑으로 딸려 올라간 왼쪽 입술이 나를 보고 살짝 웃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한번 해 볼께요.” 나도 모르겠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 애련한 아이들을 외면하고 어떻게 돌아서 나올까 하는 마음 뿐, 오줌 냄새가 진동하는 교실, 한 마디 말을 뱉으려면 열 번도 더 오물거려야 하는 입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 할 자음과 모음이 충돌하는 소리. 그것을 마주하고 지낼 시간이 두렵다고 머릿속에서는 자꾸 ‘안 돼’를 외치는데 내 영혼은 동생들이 흘린 밥풀을 줍고 있는 아이를 안아주고 싶다는, 내 안 깊은 곳의 소리를 기뻐하고 있었다. 그것은 청량한 파도였다.

 

 원장님이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우리도 어서 점심을 먹자고 큰 소리로 말했다. 주방 아줌마와 사모님이 어느새 식판에다 보리밥과 멀건 된장국을 가득 담아 왔다. 우리는, (그래. 우리는 ‘우리’가 되었다.) 밥과 된장국을 후루룩 마시고 아까부터 파리가 질퍽거렸던 수박도 물을 뚝뚝 떨어뜨려가며 단숨에 먹어 치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길가에 섰다. 어느새 산그림자가 내려와 개망초를 시원하게 덮어주었다. 더욱 선명해진 보랏빛 꽃잎 위로 나비 한마리가 살풋 내려앉았다.

 

 해마다 나뭇잎에 내려앉는 7월의 햇살을 보면 목발을 짚고 서서 퇴근하는 내게 손을 흔들어주던 아이들 생각이 난다. 그 아이들도 이제는 반백의 나이가 되었겠지. 어느 세상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을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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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자 에세이> 중앙일보 2017.7.17. [이 아침에]

 

7월, 그 여름

 

성민희

 

 대학을 졸업하던 해였다. 교수님께서 장애아 고아원에서 봉사할 의향이 있느냐 물으셨다. 먼저 다녀 온 선배가 울며 돌아서 나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잠시 멈칫 했지만 한편으론 가보고 싶기도 했다.

 

 햇살이 뜨거운 한낮.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부산 영도섬 귀퉁이의 언덕배기를 헐떡이며 오르던 버스에서 내렸다. 흙더미에 핀 보랏빛 개망초도 수런대며 올라오는 지열에 몹시 지쳐있었다. 골목으로 들어섰다. 'ㅇㅇ재활원' 간판이 걸린 기둥 뒤에 기역자로 앉은 건물과 넓은 마당이 보였다. 투명한 바람이 빨랫줄에 널린 아이들의 바짓가랑이에서 찰랑거렸다.

 

 원장님은 책상 위의 서류를 뒤적이며 아이들의 모습과 기거하는 방부터 먼저 둘러보고 오라고 했다. 울기만 하다가 나왔다는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침실을 들여다보았다.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방 복판에는 서너 명의 아이가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려 있었다.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는 그들은 심한 소아마비거나 정신박약아였다. 일반학교로는 갈 수 없어 교육청에서 파견한 특수교사의 지도를 받긴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중학생, 고등학생 나이에도 초등학교 교과서로 공부를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더욱 가엾은 것은 시장의 사람들 틈이나 혹은 고아원 문 앞에서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교실까지 둘러보고 나서 직원들과 함께 부엌 식탁에 앉았다. "제 스스로 뭘 할 수 있는 아이가 몇 명 없어요. 예산이 없어서 직원을 더 쓸 수도 없구요. 전임 교사가 떠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네요." 원장님은 시선을 마당에 꽂아둔 채 말했다. 사모님은 파마가 다 풀어진 푸석한 머리칼을 자꾸만 귀 뒤로 넘겼다. 점심시간인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밥을 퍼먹었다. 입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양만큼 식탁 위로도 흘렀다. 거동을 할 수 있는 큰 아이가 돌아다니며 동생들의 밥그릇을 챙겨주었다.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귀 밑으로 딸려 올라간 왼쪽 입술이 나를 보고 살짝 웃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한번 해볼게요." 머릿속에서는 자꾸 '안 돼'를 외치는데. 내 영혼은 흘린 밥풀을 줍고 있는 아이를 안아주고 싶다는, 내 안 깊은 곳의 소리를 기뻐하고 있었다. 그것은 청량한 파도였다.

 

원장님이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았다. 아기를 업고 있던 주방 아줌마와 사모님이 어느새 식판에다 보리밥과 멀건 된장국을 가득 담아 왔다. 우리는, (그래 우리는 '우리'가 되었다.) 밥과 된장국을 후루룩 마시고 파리가 질퍽거렸던 수박도 물을 뚝뚝 떨어뜨려가며 먹어 치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길가에 섰다. 어느새 산그림자가 내려와 개망초를 시원하게 덮어주었다. 더욱 선명해진 보랏빛 꽃잎 위로 나비 한마리가 살풋 내려앉았다.

 

 해마다 나뭇잎에 내려앉는 7월의 햇살을 보면 목발을 짚고 서서 퇴근하는 내게 손을 흔들어주던 아이들 생각이 난다. 그 아이들도 이제는 반백의 나이가 되었겠지. 어느 세상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을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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