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수필 - 추녀 끝 물고기**

2018.04.13 23:40

서경 조회 수:8098

추녀 끝 물고기 1.jpg

 

바람이 분다
풍경 소리 낭랑하고
물고기 춤을 춘다 
 
추녀 끝에 매달려
대롱대는 저 목숨
설법을 전하는가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내 목숨
난 무얼 노래하나 
 
오늘도
내 손 잡고
놓치 않는 이 
 
그의 손
꽉 쥔 채




다 

 
  * 시작 메모 : 시조의 저변 확대를 위해 인터넷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시조' 그룹이 있다. 시, 서, 화에 능하고 사진, 그림, 캘리그레피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 시와 함께 눈까지 호강시켜주는 격조 높은 모임이다. 어느 날, 사찰 추녀 끝에 물고기가 대롱거리고 있는 풍경 사진이 올라 왔다. 시와 시진에 능한 나병춘 선생님 작품이었다. 이 사진은 비행기 삯 하나 받지 않고 순식간에 고국의 어느 절간 마당으로 날 데려다 주었다. 이제 나는 '절간 같이 고요하다'는 그 고요로움 속에 서 있다. 고요한 절 마당엔 아무도 없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만이 조심스레 오간다. 풍경 소리에 취해 함께 춤 추던  물고기가 제 자리로 돌아간다. 마치, 바람따라 흔들리던 마음이 평상심을 찾아 제 자리로 돌아 가듯이. 가만히 올려다 본다. 웅장한 대웅전 추녀 끝에 매달려 있는 종, 그리고 그 종 밑에서 대롱거리고 있는 물고기. 셋은 가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세게 불면 끈이 끊어질 듯 하나, 끊어질 것까진 않다. 오래도록 보고 있노라니, 마치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나의 관계처럼 연상 된다. 대웅전처럼 믿음직하게 자리 보전하고 있는 하느님과 절반은 인성을 지녔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종 예수님과 조그만 바람에도 뿌리 째 흔들리는 물고기 같은 평신도 나. 각각의 위치와 신분이 다름에도 우리 셋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러브 체인'이겠지. 마음 저 밑바닥으로부터 알 수 없는 감동과 감사가 치밀어 오른다. 또 한편,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풍경은 제 몸 때려 눈 뜬 고기처럼 깨어 있으라 일러주는데 난 무얼 했나. 아무리 거저 주는 은혜라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신앙 생활을 그저 얻는 행운처럼 공짜로 했다. 여지껏 살아오는 동안 '신덕'과 '인덕'으로 살아 왔다는 내 말은 농이 아니다. 겸손도 아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했지만 어떻게 '항상' 기뻐 하나. 쉬지 말고 기도 하라 일러도, 할 일 많은데 어떻게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시나. 범사에 감사하라고? 노력이야 하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느님께 디밀고 싶은 트집도 많고 이유도 많다. 교회에서는 조건 없는 주님 사랑이라 하고 다 '프리'라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동의할 수 없었다. 성경을 보면, 주님 사랑은 모두 '조건부 사랑'이었다. 또한, 살다 보면 성경처럼 다 지키기도 어렵다.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하면 오죽 명쾌하고 쉬운가. 에덴 동산도 그냥 주면 되지, 하필이면, 따 먹으면 안 되는 선악과를 심어 놓고 왜 사랑을 시험 하시나. 언젠가, 성경 공부 시간에 이런 질문을 했더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또 '좁은 문'도 언급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수도자'나 '성직자'가 되긴 일찌감치 틀린 나. 그 날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온 기억이 난다. 내가 생각해도 다분히 삐딱한 신앙이다. 그럼에도, 나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 '완전하신 하느님'이었으며  '내 인생의 설계자'셨다. 성경적 하느님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활동하시는 나의 하느님은 내게 그런 분이었다. 아마도, 내 신앙적 성향 자체가 성경이나 성직자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하느님과 독대하기를 원하고, 어련히 알아서 해 주실까 하는 낙천적 믿음이 있는 것같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집 앞에서 고무줄 뛰기 하고 놀다가 예수님께 낚였던 나. 교회로 향하던 길손의 권유를 받고 고무줄 팽개치고 따라 갔으니, 그물을 버리고 간 베드로와 많이 닮아 있다. 알고 보니, 날 인도하신 여자 분은 주일 학교 교사였다. 그때부터, 내 삶이 산처럼 나를 막고 날름거린는 파도처럼 날 희롱 해도 딱 3일이면 해결해 주시던 나의 하느님. 하지만, 지금도 난 여전히 '게으른' 신앙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난, 이 시 마지막 줄을 이렇게 놓았다. '그의 손/ 꽉 쥔 채/ 올.려.다.본.다' 그렇다. 신앙 생활에 게으른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손 '꽉 쥔 채, 올려다 보는 것'이다. 그 뿐이다. 군중을 지나 곁을 스쳐가는 에수님 옷자락을 잡던 간절한 성경 속 어미의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그 분 옷자락을 당긴다. 나 여기 있다고. 시적 완성도를 위해 기교를 부리거나 고심하지 않았다. 다만, 나의 간절한 마음과 눈빛을 어련히 알아 주실까 하는 그 믿음 하나로 내 사랑의 고백 시를 마무리 했다. 쓰다 보니, 너무 구구절절이 내 '게으른 신앙 생활'에 대해서 고백성사를 하게 됐다. 사실, 시에 이어 수필적 시작 후기를 쓰게 된 동기는 내 시를 읽고 한 문우가 끝 줄을 '기도하며 올려 본다' 혹은 '기도로써 올려 본다'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고견'을 보내 왔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도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기도라는 말로 내 시를 화장시킬 수 있나. 가끔은 매끈한 도자기 보다 투박한 막사발이 더 정감이 가고 쓰임새가 좋은 법. 그냥 두기로 한다.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은 바깥이다. 그리고 시각적 감동을 받아 시각적 표현으로 끝낸 시다. 추녀 끝 물고기는 높이 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바라보며 내 내부로부터 치밀어 올라온 신앙 고백을 한 것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사랑을 고백한 셈이다. 시의 마지막 표현을 두고 고민은 해 보겠지만, 당장은 교정할 생각이 없다. 처음 이 시를 썼던 순정어린 마음이 없어질까 봐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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