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우리 젊어 기쁜 날

2018.04.17 00:55

서경 조회 수:8849

우리 젊어 기쁜 날.jpg


내가 좋아하는 조정훈씨 사진 한 장이 폐북에 올라 눈길을 잡는다.
친구인 듯 보이는 두 여자 등산객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산행을 하는 모습이다.
때는 겨울 마지막 무렵이거나 이른 봄철인 양, 아직 앙상한 나무 마른 가지다.
얼음이라도 녹은 물일까.
거울 같이 맑다.
문득, 오래 전 그 애랑 올랐던 내장산 가을 산행이 떠오른다.
부산 초량 역에서 완행 열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렸다.
기차 안은 등산객으로 북적대고 낯선 마을 가을 풍경은 차창을 스치며 흘러갔다.
아무려나.
난 차창 풍경보다 하얀 그 애 얼굴을 더 유심히 본 듯하다.
독산행을 좋아한다던 그 애.
그 날은 일행이 있음에도 미소 번진 얼굴이 자못 즐거운 듯 보였다.
일일이 길을 안내해 주고, 맑은 내장산 골짝물을 길어 와 밥까지 맛나게 지어 주었다.
보글보글 끓던 된장찌개와 고슬고슬 지어 올린 소박한 밥상.
12첩 반상도 부럽지 않았다.
만산 홍엽에 마음은 행복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돌아오는 길.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대만원이었다.

자리는 이미 매진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기차를 놓칠 수는 없는 법.

우리는 입석권을 사 들고 차에 올랐다.

꿈과 호주머니 사정이 번번이 반비례하던 학생 시절.

입석권이면 어떠랴.

이것도 하늘이 돕는구나 싶었다.

몇 시간을 선 채 흔들려 오면서도 우리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기차가 심하게 덜컹거릴 때마다 팔을 잡아주고, 조금이라도 편히 가게하려고 온 몸으로 공간 확보를 해 주던 아이.

고 작은 친절과  배려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스무 살 꼬맹이들.

진정, 우리 젊어 기쁜 날이었다.
그 애는 아직도 독산행을 즐기고 있을까.
아니면, 예쁜 아내와 장성한 아이들 데리고 가족 산행을 하고 있을까.
거울처럼 맑은 물에  되돌아 가고 싶은 시간이 물구나무로 서 있다.


                                                                                        (사진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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