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다녀오다

2018.06.01 06:15

김상권 조회 수:72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다녀오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상권

 

 

 

 

  우리가 사는 동안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곳과 어쩔 수 없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은 어디일까?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다녀왔다. 붉은 벽돌담장과 높은 망루가 보였다. 높이가 4m나 된다는 담장을 따라 역사관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일행은 모두 경로우대 대접을 받아 관람료를 내지 않았다. 이곳은 잡범들을 가둔 곳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잡혀 온 애국투사들이 수감된 곳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연인원 4만 명이 넘는 애국인사가 투옥됐고, 4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독립운동의 성지이자 그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곳은 처음엔 경성감옥이라 하다가 뒷날 서대문감옥으로, 다시 서대문형무소 등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고, 광복이 되면서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 등으로 바뀌었다. 사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감옥시설은 전옥서(典獄署)로 절도나 강도 등 죄인들을 가두는 시설이었다. 이 이름이 감옥서(監獄署)로 다시 감옥으로 바뀌었다.  

  전시관 2층에 이르면 사면의 벽을 독립운동가들의 수행기록표 5천 장으로 빼곡히 채운 방이 있다. 이 가운데 몇 분의 투쟁 경력을 들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견학 온 많은 학생들도 그냥 지나쳐버렸다. 나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좀 아쉬운 대목이었다. 이 방에 전문 해설가를 배치하면 좋으련만.

 독립운동가의 죄명은 무엇일까? 독립운동가들은 일제가 만들어 놓은 법으로 소위 보안법, 치안유지법, 국가총동원법, 출판법 위반 등의 명목으로 투옥되었다.

 쇠사슬, 철제수갑, , 쇠도리깨 등 고문도구와 구타의 흔적 사진을 보면서 일제의 잔인한 고문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하의 고문실이라고 불리는 취조실, 임시 구금실의 모형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밀어 넣어 고통을 주었으며, 심할 경우 손톱뿐 아니라 입속까지 마구 질러 고통을 주기도 했던 손톱 찌르기 고문실, 강제로 수조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거꾸로 매달아 코와 입에 물을 마구 들어부어 호흡을 곤란하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물고문,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넣어 마구 흔들어 못에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상자 고문, 움짝달짝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벽관 고문.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고문 도구, 학생들은 체험 삼아 들락날락하였다. 취조 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지하 독방 모형 등을 둘러보았다.  

 

 심훈이 쓴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머니!

(중략)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이상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밥 찍는 틀을 보았다. 이것은 수감자들의 밥을 폈던 밥 틀로 밥의 양을 조절하려고 깊이가 다른 원통형의 틀에 밥을 퍼서 배급했다. 이 때문에 감옥의 밥을 일명 ‘가다’ 밥(틀에 찍어낸 밥)이라고 했단다.

  2018 이달의 독립운동가.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2018. 1. 1,~12. 31.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12 옥사’ 라 쓴 긴 펼침막이 눈에 띄었다. 12개의 감방 안에 2018년 이 달의 독립운동가의 사진과 그들의 활동 상황을 전시해 놓았다.

 이를테면 1월의 독립운동가로 한국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 임시정부를 후원한 선교사였던 조지 애쉬포어 피치, 2월은 중국과 러시아를 누비며 무장 투쟁한 대한 신민당 단장이었던 김규면, 3월엔 김원벽, 4월엔 윤현진, 5월은 신건식, 오건해 부부, 6월은 이대위, 7월은 연미당, 8월은 김교현, 9월은 최용덕, 10월은 현천묵, 11월은 조경환, 12월의 독립운동가로는 유상근이 선정되었다. 이들은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어서 생소하게 느껴졌다.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국가보훈처에서 1992년부터 매년 12명 이상의 독립운동가를 각 월별로 선정, 국민들께 알리는 사업으로 2018년 현재 총 327명이 선정되었다. 이는 국민들과 함께 독립운동가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기획한 행사라고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여기 역사관에 들르지 않았다면 나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언론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또 다른 옥사에서는 특이한 내용이 전시되고 있었다.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들어가 보니 커다란 스크린에 ‘산 자여 따르라’ 는 글귀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5 18 기념관이 옮겨온 듯했다. 수십 개의 감방 문 앞에는 “산 자여 따르라, 끝없는 함성, 산천은 안다. 새날 올 때까지, 동지 간데없네, 5 18 소나무는 아직도 붉은가. 20여 점이 넘는 박종화 작가의 캘리그라피 체로 쓴 글씨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그 글귀를 모두 스마트폰에 담았다. 알고 보니 12옥사였다.

 

 12옥사 먹방은 12옥사 내부에 설치되었던 독방으로 겨우 누울 수 있는 약 2.4(0.7)의 공간이다. 내부는 24시간 내내 빛이 한 줌도 들어오지 않아 먹물처럼 깜깜하다 하여 일명 먹방이라 불렀다. 또한, 마룻바닥 끝부분에 구명을 내어 용변을 밖으로 처리하게 하는 등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공간이었다. 이곳에 감금되면 정신 공황장애를 겪기도 하는 등 상상 이상의 고통이 뒤따랐다.

 죄도 아닌 죄를 뒤집어씌워 고문하고 목숨을 앗아간 일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천주교신자들은 죄를 짓지 않았다. 단지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 죄였다. 그들을 강제로 잡아 가두고 악랄한 방법으로 고문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형까지 시킨 조선후기의 천주교박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붙잡혀 감금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고 처형까지 당했던 독립운동가들도 죄를 짓지 않았다. 죄도 아닌 죄를 뒤집어씌웠던 것이다.

  신체적 감금을 당하는 감옥이 있는가 하면, 마음의 감옥도 있다. 이를테면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교만, 시기, 질투, 잘못된 말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행위, 배신, 교묘한 말로 속이는 것, 한 입으로 두말 하는 것, 악한 말들을 내뱉는 것, 남의 것을 탐하는 것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 마음의 감옥 안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누구도 감옥이라는 곳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의로운 행위를 했을 경우를 제외하고 일생에 단 한 번도 가서는 안 되는 곳이 교도소이고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은 병원이 아닐까? 오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둘러보고 역사책에서 배우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의 절절한 아픔을 깨달았다.

                                         (2018.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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