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워지는 것

2018.07.20 06:22

한성덕 조회 수:4

비워야 채워지는 것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오랜만에 한 친구 집에 갔다. 온갖 잡동사니가 넘쳐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방에도 옷장, 입는 옷들, , 그리고 웬 박스들이 그리도 많은지 빼곡히 들어차있어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안정과 차분함이 사라지고 어수선했다. 아내가 그 친구네 집을 꺼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워낙 바빠서 정리할 새가 없다지만 성격 탓이려니 싶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지 않던가?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이유가 다 있다. 없으면 사야하니까 낭비를 막아준다. 모아두면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다. 쌓아놓으니 빈약하지 않고 풍성해 보인다. 무엇이든지 찾으면 나오니까 마음이 든든해서 좋다. 왜 이런 생각을 하나 싶어서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더니, 상태가 지나치면 ‘저장강박증’ 현상을 보인다고 했다.

  저장강박증이란, 단순히 취미로 모으는 ‘수집광’이나, 게으름에서 오는 ‘나태증’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하잘 것 없는 물건을 단단히 끌어안고, 버리는 것을 극히 어려워한다. 또 어떤 물건을 버리고 놔둘 것인지 결정을 못해서 주춤주춤한다. 심리적으로 ‘저장강박증’에 속하는 경우다. 그렇게 모아둔 물건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 산더미를 이루고, 집안의 실제적인 생활공간을 침해한다. 공간이 없기는 복잡한 마음도 마찬가지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삶의 질은 겉과 속을 비우는데 있다. 비우지 못하고 탐욕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다. ‘비움’이란, 지극히 평범한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삶이요, 불필요한 소유와 복잡한 인간관계를 덜어내는 묘약(妙藥)이다. 그때야 비로소 내가 제일 아끼는 물건이 무엇인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알게 된다. 요즘에 와서야 그것을 깨달았으니, 나도 이제야 겨우 철이 드는가보다. 이처럼 모든 것을 비우고 단순하게 살게 되니, 하루하루의 삶이 행복의 연속이다.

  목회자는 교인들이 많든 적든 매여서 산다. 조기 은퇴로 마음을 비우고, 자유롭게 사는 게 이리도 좋을 줄은 미처 몰랐다. 인간관계에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니까 살맛나고, 내 자신을 제일 먼저 챙겨서 건강하니까 좋고, 가장 소중한 존재인 아내가 늘 곁에 있어서 아끼고 사랑하니까 기쁘다.

  거의 매주 아내의 신앙 간증과 찬양을 듣는다. 조기은퇴하자 아내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역이다. 그 때마다 아내에게 ‘당신의 간증과 찬양에 가슴이 벅차올라 행복하다’는 고백을 한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그런다. 두 암(유방, 갑상선)을 극복했다는 간증 때문이다. 죽음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한가? 그 생각만하면 가슴이 멍~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한두 가지 더 감사한 것은, 시간만 나면 여행하는 즐거움이요, 책상머리 컴퓨터 앞에 앉는 버릇이다. 수필을 쓴다고 몰입해서 자판기를 두드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쨌든 행복의 미소는 ‘비움’에서 다가와 ‘채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은퇴한 뒤에 깨닫게 된 나름의 진리다.

 

  사실 ‘비워야 채워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웠다. 지구가 존재하는 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스승이자 친구요, 구원자시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인데,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고 인간으로 오셨다. 오히려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전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부활하신 뒤에는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위치에 앉으셨다. 이로써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비워야 채워진다.’는 교훈을 남기셨다. 기독교의 핵심이자 뼈대요, 진리중의 진리다. 이 가르침을 따라, 목회하는 내내 ‘비워야 채워진다.’는 진리를 교인들 앞에서 얼마나 외쳤던가? 그래도 교인들은 비우는 것을 몹시 힘들어한다. 나 자신도 은퇴하고서야 겨우 눈을 떴다는 게 아닌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생각은 늘 복잡하다. 누구를 밀어내고 어떤 자리에 올라설 것인지, 어느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 떵떵거려 볼 것인지, 누구를 만나서 뭘 좀 부탁하고 잇속을 챙겨볼까?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혼란스럽다. 어제부터 오늘까지도 그랬지만, 내일도 사라지지 않을 ‘한탕주의’가 볼썽사나울 뿐이다. 사악(?)한 인간들의 허물진 생각을 비우지 않는 한, 도지고 또 도져서 결국은 터지고 말 것이다.

  비우지 않으면 욕망만 덧칠할 뿐,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 수 없다. 집안의 물건도 자신의 심령도 그렇다. 안과 밖을 속히 비우면 비울수록 좋다. 그러면 새로운 것이 들어서서 행복해진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2018.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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