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고나서

2018.07.20 16:58

고안상 조회 수:12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고나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얼마 전에 평생교육회 회장님으로부터 영화감상 기회가 있는데 참여할 의향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였다. 바로 곁에 있던 아내에게 이야기한 뒤, 부부가 함께 관람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내용을 듣고 보니, 정읍노인회가 후원하는 고마운 행사였다. 드디어 영화를 감상하기로 한 날, 아내와 함께 극장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많은 분들이 반가갑게 맞아주었다.

 

 19805, 서울에서 택시기사로 일을 하며 하나뿐인 딸과 성실하게 살아가는 만섭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는 사글세가 자그마치 10만 원이나 밀려있어서 집주인으로부터 온갖 핀잔을 다 듣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 상구와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던 도중 뜻하지 않은 돈벌이 기회를 엿듣는다. 바로 전라도 광주까지 내려갔다가 통금시간 전까지 서울에 다시 올라오면 일당 10만원을 주겠다는 외국인 손님이 있다는 것이었다. 만섭은 밀린 사글세를 단번에 갚을 절호의 찬스라고 여기며 손님을 가로채려고 먹던 밥도 뒤로 하고 외국인 손님이 기다린다는 장소로 달려간다.

 

 손님은 독일 제1공영방송(ARD) 도교지국에 근무하는 사진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피터)이다. 그는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찮은 사건을 취재하려고 했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만섭은 짧은 영어로 피터를 냅다 차에 태우고는 광주로 내달린다. 그런데 웬일인지 광주로 들어가는 길목은 도로와 산길이 모두 군인들에 의해 막혀있었다. 간신히 군인들을 피해 시내로 들어왔으나, 길거리는 난장판이었고, 가게는 셔터가 닫혀있는 등 황량하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는 만섭과는 달리, 피터는 심상찮은 눈빛으로 이를 카메라로 열심히 찍었다. 이때 한 무리의 청년들을 태우고 지나는 트럭을 발견하고, 그들을 붙잡고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물어본다.

 

 피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난감해하던 청년들은 영어를 조금하는 재식에게 통역을 맡긴다. 피터는 재식일행과 트럭을 타고 가고, 만섭은 그들을 뒤따르다 아들이 부상당해 병원에 있다며 울부짖는 아주머니를 태우고 적십자병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만섭은 피범벅이 되어 신음하는 부상자들로 가득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응급실 광경을 보고 놀란다. 그리고 태술을 비롯한 광주지역 택시운전사들을 만난다. 만섭은 다시 피터와 재식을 태우고 광주역 광장으로 간다. 그곳에 모인 성난 군중들은, 군인들이 물러갈 것을 외쳐댄다. 이에 군중과 대치하던 군인들이 최루탄을 쏘며 대치중인 학생과 시민들을 총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내리친다. 이 모습을 보면서 어찌나 가슴이 떨리고, 울분과 분노가 북받쳐 오르는지, 나 자신도 숨이 가빠지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다시 광주 충장로 살육의 현장을 촬영하던 피터 일행을 군 사복조장 무리가 뒤쫓는다. 그곳에서 도망치던 중 재식은 붙잡히고, 피터와 만섭은 겨우 위기를 모면한다. 만섭은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인들의 살육과 무차별 폭행장면을 카메라에 담은 피터에게 이곳을 피해 서울로 올라갈 것을 재촉한다. 그러나 피터는 만섭에게 자신은 이곳에 남겠으니 혼자서 올라가라고 한다. 만섭은 서울 딸 걱정에 광주를 떠난다. 어렵게 감시망을 피해 도착한 곳이 순천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택시가 그만 고장이 나 정비를 맡긴 만섭은 그사이, 딸 신발을 사고, 연등이 걸려있는 절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곰곰 생각해보니 만섭은 광주의 일들이 마음에 걸린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며 그는 다시 피터를 찾아 광주로 간다. 만섭은 태술 아내가 말한 장소로 가, 재식의 죽음에 절망한 태술과 많은 주검을 목격하며 넋을 잃고 있는 피터를 만난다.

 

 광주 지역신문 최기자와 태술을 비롯한 택시 기사들, 그리고 청년들이 피터에게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부의 무자비한 살상행위를 전 세계에 알려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만섭은 피터와 함께 광주 탈출을 시도한다. 외신기자가 잠입하여 광주현장을 촬영한 사실을 간파한 군부에서는 광주에서 나가는 모든 길을 차단하고 엄중히 감시한다. 태술을 비롯한 기사들은 만섭 일행이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희생하며 돕는다. 무사히 김포공항에 도착한 피터는 예약 비행시간을 앞당기는 방법으로 감시를 피하며 도교 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이런 피터와 만섭, 그리고 광주의 택시기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로 광주의 진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영화는 엔딩부분에서 아래 내용을 자막으로 올리면서 끝을 맺는다; '많은 시간이 흐른 2003, 힌츠페터기자는 광주사건을 보도한 공로로 언론상을 받게 되고 자신과 생사를 함께하며 도움을 준 택시운전사 만섭(실제인물 김사복)을 만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나는 19805월 장성에서 광주를 거쳐 영산포까지 버스를 이용하여 출퇴근하고 있었다. 521(?) 퇴근길에 광주 백운동을 지난 사거리에서 시민들과 군인들이 대치하고 있어서 타고 있던 승객 모두는 버스에서 내려야만 했다.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운암동 간이터미널로 이동하여 버스를 타고 장성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날 “여러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총에 맞아 숨졌다.”는 택시기사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치솟는 분노를 삭여야만 했다. 그리고 한동안 버스길이 차단되어 장성에서 영산포까지 기차로 출퇴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시민들과 학생들의 주검이 안치된 장소에 다녀온 직장 동료들은 그 처참한 광경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고, 또 그런 사실을 함부로 발설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서 피터와 만섭 그리고 광주의 시민들에게 참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정의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감명 깊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왜 김사복 씨는 힌츠 페터 기자를 끝내 만나려고 하지 않았을까?’ 몹시 궁금했다. 그 이유는 최근 그의 아들 김승필 씨가 방송에 출연하여 밝혔다. 평소 인권과 민주화에 관심이 많았던 김사복 씨는 안타깝게도 1984년 간경화로 별세했다고 했다.                                            

                                                                   (2018.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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