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상주

2018.08.16 10:26

오창록 조회 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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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주(馬上酒)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오창록











한창 젊은 나이에는 친구끼리 만났다가 헤어질 때 흔히 마상주를 한 잔하고 헤어졌다. 내내 같이 있었어도 막상 헤어지려고 하면 아쉬움이 남아서 술이나 한 잔 하려는 것이다. 마상주라고 해봐야 근처의 대폿집이나 구멍가게에서 주는 안주로 간단히 몇 잔 하고는 일어선다.



요즘에는 친구들끼리 만났다가 헤어질 때는 친구의 인정이 모두 어디로 떠났는지, 각자 자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기 바쁘다. 오늘날 마상주라고 하면 젊은이들은 2차나 3차를 하면서 밤에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고, 다음날 각자의 일터에서 자기가 어젯밤에 술이 과했던 것을 후회한다. 나도 한때는 저녁에 회식을 하고 2차를 한 적도 많았으나 이제는 전과 같지 않아서 아예 포기하고, 차라리 마실 때 각자 자기 주량을 알아서 마시라고 한다.



아직도 옛날 습관이 남아서인지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면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서 언제나 내가 먼저 마상주를 제안한다. 내가 주량이 많아서가 아니고 그냥 이대로 헤어지기가 서운해서 한두 잔 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의 정에 이끌려 한국을 다시 찾는 것을 TV나 글을 통해서 본 적이 있다. 지난번 TV를 보니 서울 만리동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분이 소갣되었다. 그는 세계각처에서 자기 집을 찾았던 관광객들이 보내준 기념사진이 집안과 입구까지 가득 세워져 있었다. 한 번 다녀갔던 관광객들이 그분의 정에 이끌려서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정은 인간관계에서는 꼭 필요한 윤활유와 같은 존재다.



마상주라는 화두(話頭)를 머릿속에 간직한 채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막상 쓰려고 자료를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자료가 없었다. 마상주는 흔히 쓰는 소재였으나 그 어원을 찾으려니 겨우 희미한 흔적들만 보였다. 고대 이래 말을 탈 수 있는 신분은 고급장교 이상이거나 민간에서는 상류사회 남자들이었다.

당나라 이태백 (701~762)의 마상주라는 시(詩)가 있었고, 한무제(漢武帝) 시절 말을 탄 채 마시는 마상주가 제법 호방했으며, 실크로드에는 말 탄 아미타불도 늠름한 모습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우리의 정서는 이웃나라의 문화 때문인지 거리가 멀다. 아무래도 우리의 마음속에 마상주라 하면 춘향전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럴 때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외손녀에게 어원(語源)의 출처와 자료를 부탁하곤 한다. 2.3일 뒤 손녀에게서 컴퓨터에는 특별한 자료가 없고, 도서관에서 관련된 책들을 찾아서 보낸다면서, 이메일과 복사본을 등기로 보내주었다. 복사본 표지에는 손글씨로 “총 3권의 춘향전 (春香傳 閔濟, 註校 春香傳, 春香傳 全集), ‘판소리 3본’ 의 창본(唱本)에서 ‘마상주’에 관련한 내용을 찾았어요. 춘향이가 말을 타고 떠나는 도령에게 술을 권하는 장면은 형광펜으로 체크해 두었어요.” 라고 적혀있었다. 아래 자료들은 외손녀가 도서관에서 관련도서를 발췌하여 보내준 내용을 옮긴 것이다.



향단아, 술상 이리 가져오너라. 술 한 잔을 부어들고, 옛소 도련님, 약주 잡수시고, 금일송군수진취(今日送君須盡醉)니 술이나 한 잔 잡수시오. 도련님이 받어들고, 세상에 못 먹을 술이로다. 합환주(合歡酒)는 먹으려니와 이별주라 주는 술을 내가 먹고 어이 살잔 말이냐. 춘향이 지환(指環) 벗어, 도련님, 지환 받으오. 여자의 굳은 마음 지환 빛과 같은지라, 이토(泥土)에 묻어둔들 변할 리가 있으리까. 날 본 듯이 두고 보오. 도련님이 받어 놓고, 대모석경(玳帽石鏡)을 내어주며,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 빛과 같을지니 날 본 듯이 두고 보아라. 서로 받아 품에 넣고 둘이 서로 꼭 붙들고 떨어지지를 못하는구나.



춘향아 나는 간다. 너는 부디 우지 말고 노모 하에 잘 있거라. 춘향이도 일어나서 한 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또 한 손으로는 도련님 등자(鐙子) 딛인 다리를 잡고, 아이고, 여보 도련님. 한양이 멀다 말고 소식이나 종종 전하여 주오. 말은 가자 네 굽을 치는데 님은 꼭 붙들고 아니 놓네.



우리의 헤어짐이 마상주에 나오는 연인이나 친구들의 잠시 이별하는 것 뿐이랴? 불가(佛家)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회자정리(會者定離)를 말하면서, 사람은 만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진다는 것을 이미 설파하지 않았던가?

우리사회가 핵가족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웃의 따뜻한 정보다는 자기 위주로 생활하는 환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앞으로 세상이 달라지고 삭막한 겨울이 찾아와도 마상주의 따뜻한 정을 언제나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가리라….

(2018.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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