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사투

2018.08.17 07:29

전용창 조회 수:4

벌들의 사투

꽃밭정이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어제는 텃밭에 나가 보았다. 가뭄에 단비를 만난 채소를 보고 싶어서였다. 빗물은 밭고랑만 흘러갔을 뿐 땅속으로는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나 보다. 한동안 돌봐주지 못해 수난을 당한 고추는 줄기가 처져있었고, 케일 잎은 벌레가 다 먹었으며, 호박은 끝이 말라 버렸다. 그래도 보라색 가지는 더위에 강한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잡초는 작물을 에워싸고 밭 가장자리까지도 가득했다. 무더위에 내 몸만 생각하고 자주 못 와서 미안했다. 내일 아침 일찍 오겠노라며 마음을 전하고 돌아왔다.

 

  아침 일찍 밥도 안 먹고 텃밭으로 갔다. 예초기를 꺼내서 풀을 베었다. 밭두렁을 먼저 하고 고랑을 하였다. 그런데 인근 대학 언덕 위에 널브러진 칡넝쿨이 철조망 울타리를 뚫고 우리 밭에까지 왔다. 안으로 들어가서 예초기 작업을 했다. 일이 끝날 무렵이었다. 소나무 아래 칡넝쿨을 쌓아 놓은 듯이 가득했다. 예초기 봉대를 그곳으로 돌리는 순간, 더위를 피하려고 말벌들도 땅속에다 집을 지었는지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순간 혼비백산했다. 수 십 년을 이곳에서 예초기 작업을 하였으나 벌을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안경을 쓰고, 귀까지 덮는 모자를 썼는데도 모자 위로 달려들어 몇 방을 쏘였다. 모자를 벗어 들고 정신없이 내돌리며 달아났다. 5~6m를 가니 더 이상은 쫓아오지 않았다. 예초기를 차에 싣고 약국으로 달렸다. 그런데 약국에서는 상태를 보더니 약만 먹어서는 안 될 것 같다며 병원 문 열면 주사 맞고 처방전을 받아오라는 게 아닌가. 나는 벌침에 면역력이 있으니 괜찮다며 해독약 처방을 부탁했으나 도리어 나를 설득했다.

 

  의사 선생님은 머리의 정중앙인 정수리를 쏘이지 않아서 그나마 천만다행이라며 정수리를 백회(百會)라고 하며, 모든 혈 자리가 모여 있어 생명의 근원인 급소(急所)라고도 부르는데, 우주의 기운이 이곳으로 들어오기에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데 그곳을 피해갔다는 것이다. 해독 주사를 맞고 3일분 처방을 받았다. 말벌들은 약한 곳을 어떻게 아는지 처음에 맞닥트린 머리의 앞부분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곳은 모자 채양 중에 가장 단단한 섬유로 되어 있어 그곳을 피하고 망사로 덮여있는 머리 뒤쪽을 공격했다. 약한 곳을 공격하여 침입자를 한 방에 쓰러트리려 한 것이다. 사람의 뇌는 크게 대뇌와 소뇌로 구별되는데, 대뇌에 속하는 좌뇌는 몸의 중앙에서 자신의 위치와 반대가 되는 우측을 관장하면서 논리, 추리 등 수학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에, 우뇌는 좌측을 관장하며 감정, 이성 등의 문학적인 기능을 담당한다고 한다. 그런데 머리 뒤쪽에 있는 소뇌는 눈을 관리하고 몸의 운동신경을 관리한다고 하니 벌들은 내가 글을 쓰는 줄 어찌 알고 눈을 밝게 해주는 소뇌만 집중적으로 공격한 게 아닌가? 말벌이 참 고마웠다.

 

 사실 내가 벌집을 건드려서 밤송이가 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십여 년 전에도 동생과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가서 묘비부근을 밀다가 수많은 땅벌들의 공격을 받았다. 아마 그때는 무려 20여 방은 쏘인 것 같다. 어찌나 많은 수가 공격을 하든지 산소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수로 쪽으로 도망가서 그곳에 머리를 들이밀었으나 한 번 머리에 붙은 땅벌은 침을 쏘았고, 한 마리 한 마리를 손으로 떼어내기 전에는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는 머리뿐 만이 아니라 얼굴과 눈까지 부어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읍내 의원에서 주사와 링거를 맞으며 오후 내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 그때 땅벌이 쏜 봉침(蜂針)도 내가 잔병 치례를 하지 않도록 선영(先塋)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도와주었다며 고마워했다.

 또 한 번은 3년 전의 일이다. 돌담이 있는 독배마을에 갔을 때다. 그곳은 내가 장차 흙집을 지으려고 마련한 집터인데, 나무판 사이에 말벌이 집을 짓고 있었다. 조그만 벌집 속에 두세 마리가 있고 주위에 경비병이 몇 마리 더 있었다. 나는 말벌을 죽이지는 않고 연기로 쫓아버릴 요량으로 합판 조각에 불을 지피어 가까이 댔다. 그래도 말벌들은 도망가지 않고 집밖으로 나와서 “웽웽” 거렸다. 날개에 불이 붙어도 도망가지 않았다. 경비를 맡고 있는 벌들도 다가왔다. 집을 지키려고 사투를 벌였다. 나는 불쌍해서 더 이상 불을 가까이 댈 수 없었다. 이웃집 김 씨 형님이 그 광경을 보더니 물을 끼얹어서 집을 없앴다. 그때마다 나는 자기네 가정을 외세로부터 지키려는 벌들의 충성심과 사명감을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백의종군하면서도 불평을 하지 않고, 임전무퇴정신으로 오직 왜군들을 물리치며 목숨을 아끼지 않으신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모습이 떠올랐다.

 

  낮에는 주사와 약기운으로 잠만 자고 저녁에 매형에게 전화를 했다.

 “매형, 나 오늘 공짜로 보약 한 재 들었으니 저녁을 살께 누나랑 나올 수 있어요?

 “그럼 좋지, 동생이 나오라면 언제라도….

 

 나는 매형에게 ‘벌들의 사투’ 이야기를 했다. 매형은 이렇게 덥고 가뭄이 지속되면 벌들이 독이 많은데 큰일 날 뻔했다며 염려해 주었다. 그리고는 부기가 가라앉았다며 돈을 주고도 맞기 힘든 봉침을 맞았으니 좋은 약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누나한테 말했다.

 “누나, 매형이 누나와 가족들을 위하여 벌들처럼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 지금 애써 이루는 농장도 다 누나와 자식들을 위해서고, 강제징용으로 청춘을 노예처럼 보낸 불쌍한 아버지와 고생한 어머니 묘역에 십장생이 그려진 둘레석을 꾸며놓은 것도, 부부의 가묘도, 이 모두를 힘에 겨워도 거금을 들여서 아름답게 가족 묘역을 조성한 것이 훗날 자식들한테 부담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 앞으로 매형 너무 혼내지 말고 명절 때마다 빠짐없이 자식들이 꼭 성묘를 하도록 누나가 가르쳐야 돼.

 “이제, 그래야겠어 동생!

 

 돌아오는 길에 매형은 나의 손목을 꼭 잡아주었다. 나는 그 손에 45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 탄광으로 끌려가서 갖은 고난을 겪은 매형 아버지의 삶이 담긴 서류봉투를 건네주었다.  

 

 “매형, 이 글을 이번 추석명절 때 온 가족이 모이면 큰 아들 보고 동생들, 제수씨 그리고 손자, 손녀가 있는 자리에서 읽어주라고 하세요”

 

 벌들의 사투가 가족을 위하여 한 평생을 수고하고 땀 흘리며 살아온 우리네 부모님의 삶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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