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그 풍요로운 명절

2018.09.15 14:24

김학 조회 수:5

추석, 그 풍요로운 명절

김 학

*추석을 맞는 농촌풍경

검붉은 알밤이 벌어진 밤송이 사이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제 세상으로 나가도 될지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밤송이도 우리네 최대 명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111년만의 폭염이라던 더위도 꼬리를 빼고 가을에게 왕좌를 물려주었다. 여름이 떠나자 우리 집 선풍기도 여름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여름과 가을은 어느새 임무교대를 하고야 말았다.

풍요로운 명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들녘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신방의 금침(衾枕)같은 황금 들녘이다. 올 추석에도 햅쌀로 송편을 빚을 수 있을 것 같다.

오곡백과가 여물어 가는 가을이 깊어지니,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 그러나 농촌에는 참새와 제비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잠을 자기 불편하고 먹이가 마땅치 않기 때문인 듯하다.

농촌의 주택도 옛날과 달라져서 기와집이나 초가집이 사라지고 슬라브 집이나 아파트가 들어서니 처마 밑에 제비집을 지을 수가 없다. 또 들녘에는 독한 농약을 뿌려대니 벌레들도 사라지는 바람에 아무거나 먹을 수도 없는 실정이다.

농촌의 참새들마저 도시로 가서 아파트단지 이 나무 저 나무를 오가며 잠을 자야 하는 서러운 신세가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강남으로 떠났던 제비도 돌아올 줄 모른다. 빨랫줄에 줄지어 앉아서 지지배배 노래를 부르던 제비를 본 게 언제인지 모른다. 세상이 참으로 많이도 변해 버렸다. 옛날 같으면 농촌에서는 ‘우여! 우여!’ 하며 새보기에 바쁠 때인데 새를 볼 필요가 없게 되고 말았다.

농촌도 옛날과 달리 몹시도 한가해졌다. 봄에는 기계로 모를 심고, 가을에는 기계로 벼를 베고 탈곡까지 한다. ‘米!’, 이 쌀미라는 글자는 농민의 손길이 88번이 가야 쌀 한 톨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해서 지어진 글자라는데 지금은 농민의 손이 가지 않아도 기계가 농사를 다 짓는다. 그러니 이제 이 米자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옛날 추석 요즘 추석

가난하던 옛날의 추석은 몹시도 기다려지던 명절이었다. 보릿고개시절 배고픔을 견디며 주린 배를 움켜잡고 추석을 기다렸다. 추석날이면 조상님들에게 푸짐한 음식을 마련하여 차례를 모신 뒤 식구들끼리 배불리 나누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석이 지나면 배탈이 나서 고생하는 일이 잦았다. 추석날 아침엔 차례를 모신 뒤 성묘를 가곤 했었다. 성묘를 가면 미리 벌초를 해서 조상님들의 묘소는 금방 이발을 한 것처럼 깔끔해 보였다.

추석이 오면 멀리 떨어져 살던 일가친척들이 고향에서 만나 정을 나누게 된다. 타향에서 살던 사람들이 손에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으로 향하곤 한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자매 일가친척들이 밀린 정담을 나누며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요즘에도 추석이 되면 고속도로는 귀성차량이 몰려 주차장으로 탈바꿈하곤 한다. 그런데도 승용차들은 고향으로 고향으로 달려간다. 그런가 하면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불어 인천국제공항이 크게 붐빈다. 요즘의 새로운 풍속도다. 부유한 사람들은 해외 유명 관광지로 나가 그곳에서 차례를 모시기도 한다. 생전에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조상님들까지도 똑똑한 후손들 덕에 비행기를 타고 후손들을 따라가 추석명절을 쇠는 것일까? 사실 요즘 조상님들은 추석이면 후손들의 아파트를 찾아가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농경시대에 살다 돌아가신 조상님들은 냧선 후손들의 아파트를 어떻게 찾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추석 연휴의 역사 되짚어보기

추석이 법정공휴일로 제정된 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 이듬해인 1949년의 일이다. 이후 1986년에는 추석 다음날, 1989년에는 추석 전날이 휴일로 지정되면서 지금과 같은 ‘3일 연휴’ 체제가 완성되었다. 하루만 쉬던 추석이 2일 이상 쉬는 ‘연휴’가 된 것은 추석 다음날 일요일이 붙은 1951년이 처음이었다. 이후 연휴가 법제화된 1986년에 이르기까지 일요일을 앞뒤로 낀 추석연휴는 1951년, 1954년, 1958년, 1967년, 1974년, 1975년, 1981년, 1984년 등 모두 8번이 있었다. 10월 3일 개천절과 이어진 이틀짜리 연휴는 1963년 한 차례였다.

4일 이상의 연휴가 흔해진 것은 2004년부터였다. 토요일을 쉬는 ‘주5일제’가 시행된 이후부터니까.

2014년 대체휴일제가 도입되면서 추석은 어지간하면 4일을 쉬는 ‘가을 휴가’가 되었다. 이때부터 주변 휴일과 공휴일 사이로 개인 휴가를 끼워 1주일 안팎의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인천국제공항이 더 붐비기 시작했다.

2018년 올해는 22일 토요일부터 26일까지 엿새를 쉬게 된다. 거기에다 27일과 28일 이틀만 휴가를 얻으면 30일까지 열흘이나 쉴 수 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그러니 경제적 여유도 있겠다 식구들도 좋아하니 외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나 추석연휴를 즐기고 온다. 외국에 나가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우리나라 명산대천의 콘도나 펜션에서 추석 차례를 모시기도 한다.

*추석 귀성 열차표 예매에서 역 귀향까지

옛날엔 추석이 다가오면 고향으로 추석 쇠러 가려는 사람들이 밤새워 기차표를 예매하기도 했었다. 그러자 공장에서는 사원들의 편의를 위해 관광버스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자가용으로 고향을 찾아가니 차가 밀려서 고속도로가 주차장처럼 변해버리곤 한다. 그러니 고향을 찾는 사람들도 고향에서 자녀들을 기다리는 부모들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의 승용차들이 밀리다 보니 크고 작은 교통사고도 잇따른다. 그러니 시골에 사는 부모들은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도착할 때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녀들의 귀성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요즘엔 추석 때 자녀들이 고향으로 오지 않고 자녀들이 사는 도시로 시골의 부모들이 찾아가는 역 귀향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역시 역 귀향을 하고 있다. 벌써 6년이 지났다. 내가 고희(古稀)가 되던 해부터 큰아들에게 명절 차례를 모시도록 물려주었다. 그리하여 내가 큰아들 집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처음엔 편안해서 좋았다. 서울행 차를 타기도 쉬웠고, 추석날의 서울이 얼마나 쓸쓸한 도시인지도 알게 되었다.

어쩌다 추석 때 역 귀향을 하지 못하면 큰아들은 차례 상과 차례 모시는 모습을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준다. 나는 전주에 있으면서도 서울 큰아들 집에서 추석차례 모시는 것을 훤히 알 수가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설날 아침이면 카톡으로 세배를 하는 손자손녀들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벌초와 성묘

나는 올봄에 고향 선산에 모셨던 조상님들을 모악추모공원으로 옮겼다. 나는 그 동안 고향 친지의 도움으로 해마다 벌초를 했었다. 그러나 2남1녀를 둔 나로서는 그게 늘 걱정이었다. 산소가 있는 임실군 삼계면은 나의 고향이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타향이나 다를 바 없다. 일가친척들도 거의 도시로 떠났으니 아는 이들도 없다. 나의 아이들은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니 동창들도 없다. 나중에 산소관리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생전에 그 문제를 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추모공원으로 옮긴 것이다. 자녀들도 좋아했다. 그 추모공원이 전주 근교이니 성묘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또 선산에 모시고 있을 때는 멧돼지의 묘지 훼손이나 태풍과 장마철의 산사태가 걱정이었고, 추석만 다가오면 벌초 때문에 걱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농경시대에는 일가친척들이 같은 동네나 이웃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기에 편리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산업시대를 거쳐 정보화시대이다 보니 직장이나 직업 따라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산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농경시대의 유풍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추석날이면 으레 성묘를 가곤 했었다. 승용차가 없을 때는 버스를 타고 갔지만, 승용차를 마련한 뒤부터는 승용차를 타고 갔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너도나도 승용차를 부리니 추석날 성묘 가는 차량들 때문에 도로가 막혀서 어려움이 커졌다. 어느 해에는 집에서 출발하여 1km쯤 가는데 1시간도 더 걸렸다. 도로가 주차장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 뒤부터는 추석날 성묘 가는 것도 그만두고 추석 전이나 추석 뒤애 날을 받아 성묘를 다녀오곤 했었다. 추석 풍습도 세월 따라 변하고 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카메라 기자들은 추석날이면 거리를 누비며 한복차림의 가족나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었다. 그러나 요즘엔 추석날 한복차림의 나들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풍습도 세월 따라 그렇게 달라지게 되었다.

*추석의 유래를 되새겨 보니

추석은 원래 신라의 유습이라고 배웠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는 추석의 유래가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신라 3대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나누어 7월 16일부터 날마다 길쌈을 하도록 했다. 그러다 8월 15일에 이르러 승패를 가려, 지는 편이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이것을 가배(嘉俳)라 했는데, 진편의 여자가 춤을 추면서 회소곡(會蘇曲)을 불렀다고도 한다. 구경거리가 드물었을 그때에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추석을 가배라고도 하고 한가위라고도 한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속담도 있다. 가난하던 시절을 살아온 선인들은추석 명절 때 차례를 지내려고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배부르게 먹으니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그래서 그런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추석 명절에는 먹거리도 다양했다. 대표적인 게 송편이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추석이면 만들어 먹는다. 그밖에도 토란국, 화양적, 누름적, 닭찜 등이 있다. 이런 추석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가을걷이로 심신이 피로해진 농민들이 충분한 영양보충도 가능하리라 믿는다. 또 추석이면 가족끼리, 동ㄴ사람들끼리 즐기는 놀이도 다양했다. 여성들이 손에 손을 잡고 원무를 추는 강강술래도 있고, 줄다리기, 기마싸움, 소놀이, 닭싸움 등이 있어서 축제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음식도 새로워지고, 놀이도 시대에 맞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추석이면 주고 받는 명절 선물

예나 지금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선물을 주고 받는다. 값비싼 것보다는 성의가 담긴 것이 선물로는 잘 어울린다. 스승이나 직장의 상사, 또는 존경하는 아르신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게 예사였다. 추석이나 설 명절이면 나는 80대인 옛날 직장의 상사 한 분과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선물을 보내드리는 게 큰 기쁨이었다. 그런데 직장의 상사에게는 보내드렸지만 94세이신 담임선생님께는 보내드릴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 몇 해 전 상처를 하신 선생님이 올해 건강이 나빠져서 큰딸네 집으로 이사를 하셨다면서 주소를 가르쳐 주지 않아 추석이 돌아와도 선물조차 보내드릴 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까지 살아계시는 유일한 선생님이신데 말이다.

추석이면 나에게도 선물을 보내주는 이들이 있다. 옛날에는 직접 선물을 들고 찾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주소만 알면 택배회사들이 잘 배달해 주어서 편리하다. 이번 추석 때는 두 사람이나 사광와 포도를 보내면서 보내는 이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 찜찜하다. 수취인인 내 이름과 주소는 분명한데 보내는 이의 이름이 없어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있다. 그게 겸손인지는 모르지만 고맙다는 인사는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제자 K씨는 해마다 이 무렵이면 동기생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대추를 따가라고 하기도 한다. 이번주 금요일에도 대추를 따러 가기로 했다. 그 대추는 크고 맛도 좋아서 추석 차례상에 올리면 조상님들도 좋아하실 것 같다. 대추를 따러 가는 날이면 동네 맛집에 부탁하여 푸짐한 점심까지 대접하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시인이자 수필가요 사진작가인 K씨는 베풀기를 좋아해서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인기가 높다. 추석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올 추석도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다. 서울에 사는 큰아들 내외와 손자손녀, 딸 내외와 외손자 형제를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렌다. 역시 추석은 고마운 명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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