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준비 끝

2018.09.22 16:56

이진숙 조회 수:6

가을맞이 준비 끝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드디어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야 마음이 한가하여 주변을 돌아 볼 여유가 생겼다. 가을맞이로 우리 부부는 화단 정리부터 시작했다. 지난여름 무더위를 핑계로 손발을 놓아 버린 탓에 가을맞이를 위하려니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했다.

 동쪽화단에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많은 풀들이 판을 치고 있다. 화단이 아니라 잡초 농사를 잘 지어 놓은 밭이 되고 말았다. 우리 둘이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는 등 완전무장을 한 상태로 용감하게 화단으로 들어갔다. 모기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맛있는 음식이 들어왔으니 배불리 먹을 생각으로 이리저리 무차별 공격을 시작했다. 우리는 그냥 헌혈하는 셈 치고 눈을 질끈 감고 잡초를 뽑았다. 봄부터 여름까지 온갖 영양분을 다 빨아들인 녀석들이 쉽게 뽑힐 리 없었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다음에야 화단은 시원하게 정리가 되었다.

 이번에는 남쪽화단으로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그곳은 우리 집 터줏대감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20여 년은 됨직한 동백나무가 제일 오래된 우두머리이고, 그 뒤를 석류나무, 불두화, 수국, 영산홍, 장미, 작약, 쥐똥나무, 남경화 등 주로 나무들이 많이 심어졌다. 그러니 그 나무 아래 심어 놓은 구절초가 제대로 자랄 수 있었을까? 저희들도 살아 보겠다고 모두 화단 밖의 길로 도망을 나왔다. 그러니 오가는 발길에 밟힐 수밖에…. 구철초가 있던 자리에는 억센 쇠무릎지기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 억센 것들을 뽑으려니 똑똑 가지만 부러질 뿐 뽑히질 않았다. 이 쇠무릎지기는 관절에 좋다면서 어른들이 단방약으로 많이 쓰는 식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갓 귀찮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새 쇠무릎지기는 자손을 남기려고 씨를 맺어 우리의 옷과 장갑에 찰싹 달라붙어서 그것들을 떼어 내느라 한차례 씨름을 했다.

 이제부터는 멋대로 가지를 뻗은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해 줄 차례가 되었다. 둥근 모양을 해 주어야 하는 나무들, 층층이 모양을 내 줘야 하는 것들, 나무 아랫부분을 시원스레 잘라 주어야 하는 것들, 크기가 너무 자라서 윗부분을 쳐 내야 하는 나무들, 모두들 그들의 특징에 맞게 섬세한 손길로 다듬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일이 그들에게 맞는 가위와 톱을 써 가며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마치 미인대회에 나가는 미인들 마냥 오래오래 섬세하게 다듬어 주었다. 제법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멋진 몸매를 갖게 되었다. 그들도 우리의 솜씨에 고마워하고 있겠지!

울도 담도 없는 우리 집의 든든한 담장 역할을 맡은 것들도 예쁘게 손질해 줄 차례가 되었다.

 먼저 가시해당화의 이발을 시작했다. 사실 이 녀석들은 나의 무지로 인해 우리 집에 오게 된 것들이다. 오래 전 친구들과 ‘태안반도’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빨갛게 예쁜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그 나무가 해당화라는 것을 알고 어느 해 봄, 나무시장에 가서 특별히 부탁을 하여 사다 심은 것들이었다. 마치 비온 뒤 죽순이 자라는 것처럼 무럭무럭 자라서 예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꽃이 다 지도록 도무지 열매를 볼 수가 없었다. 여기 저기 알아보고 찾아 본 결과 해당화는 종류가 3가지나 된다고 했다.

 

 열매를 빨갛게 맺는 것은 ‘민 해당화’, 우리 집 울타리에 심은 것처럼 꽃만 피는 것은 ‘가시 해당화’, 또 나무 ‘해당화’ 이런 종류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와 인연이 닿아서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니 버릴 수는 없어서 해마다 크기를 잘라서 깔끔하게 다듬어 주고 있다. 그 뒤쪽으로 차나무가 해당화와 더불어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있다.

 굵기가 철사처럼 가늘고 크기가 한 뼘 정도 되는 묘목을 ‘화개장터’에 가서 사다 심었다. 처음에는 과연 살 수 있을까 걱정되었는데 어언 10년 세월을 훌쩍 넘기다 보니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을 뿐 아니라, 11월부터 하얀 꽃을 피워서 꽃이 귀한 계절에 우리를 향기에 취하게 해 준다. 이렇게 울타리에 심은 것들을 높이를 맞춰 가지치기를 하고 나면, 나무 전지와 화단 정리가 얼추 끝났다.

 해마다 이 맘 때면 조상의 묘소를 찾아 벌초도 하고 성묘도 하는 것이 우리네 추석의 모습이다. 우리 집도 가족묘의 벌초를 끝내고 곱게 단장을 했다. 이렇게 묘소의 벌초를 하듯이 우리 집 마당도 일 년에 두 번은 벌초를 해 주어야 한다. 너른 마당의 잔디를 깎기 위해서 우리내외는 며칠 전부터 채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드디어 잔디를 깎는 날, 그가 꼭 챙기는 필수품이 하나 있다. HAIR BAND! 다른 사람 몇 배의 땀을 흘리는 그에게 제일 중요한 물건이다. 그리고 긴 장화와 장갑과 모자를 챙긴다. 창고에서 일 년에 두 차례 햇볕을 보는 잔디 깎는 기계를 내놓고 붕~소리를 내며 잔디를 깎기 시작한다. 나는 잔디 깎는 기계가 닿을 수 없는 곳은 가위로 마치 기다란 머리카락을 자르듯이 잔디를 잘라 준다. 점심은 간단히 빵과 물로 때우고 쉴 틈 없이 깎다 보면 어느 새 마당 끝자락에 도착한다. 나는 재빨리 마당에 널려 있는 깎인 잔디를 긁어모은다. 군데군데 모아 놓으면 깎는 일을 마친 그가 와서 봉투에 담아 감나무 밭 한쪽 귀퉁이에 내다 버린다. 그렇게 마당 잔디 깎기가 끝나고 단풍나무 밑에 있는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 한 잔으로 목마름을 달래고 곱게 다듬어진 마당을 바라보면서, 때맞춰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에 그 동안 흘린 땀이 말끔히 씻겨버리고 나면 상쾌해진다. 그러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거의 끝난다.

 한 숨 돌리고 잔디 깎느라 피곤하고 지친 몸을 달래 주는 데는 한 잔 술이 최고다.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집을 나선다. 그가 좋아하는 ‘양고기’를 파는 음식점으로 가서 숯불에 양갈비를 구워 먹으며 기분 좋게 술잔을 연거푸 비운다. 믿음직한 대리운전기사를 대동한 그는 마음 놓고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술에 젖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당신이 대신 운전을 해주니 내가 마음 놓고 술을 마실 수 있어서 오늘은 참 기분이 좋다.‘고 연신 싱글 벙글한다.

 마지막 남은 집안 대 청소를 깔끔하게 끝냈다. 유리창 너머 거미줄까지 깨끗하게 걷어 냈다. 내가 큰 소리로 “야, 끝났다. 만세!” 하고 큰 소리를 치니 그가 “그렇게 좋아?” 한다.

 추석에 일가친척들이 와서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다녀오면, 우리 집 마당에도 가을은 더 깊어지겠지 싶다. 

                                                   (2018.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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