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편지

2018.10.11 07:21

김삼남 조회 수:49

빛 바랜 편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 삼 남

 

 

 

 

 퇴직한지 20년이 지났다. 근무지따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닌 이삿짐이 그대로 쌓여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별하여 버릴 것이 많지만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애지중지 아껴온 물품들은 고스란히 옛날을 추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섭섭하지만 마음먹고 버리면 추억과 함께 내 곁을 영원히 떠나야 한다. 특히 입었던 정복과 계급장 등 부착물, 제모사진과 편지첩, 업무노트, 일기장, 훈포장 등 각급 표창장은 옛날을 더욱 그리웁게 한다. 편지첩 중에서 숨어있는 봉투 없는 편지를 발견했다. 봉투가 왜 없는지 여러 추측을 해도 명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노트 3페이지 분량의 편지는 볼펜으로 꼭꼭 눌러 쓴 정성드린 편지였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뒤 편지첩을 펼쳐보지 못해 노랗게 퇴색했지만 내용은 변함없었다. 그 시절에는 오늘날처럼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다용도로 활용되지 않았을 때이고. 손수 쓴 편지가 정겨운 통신수단이었다.

 

 편지는 “교수님께” 로 시작하여 오랫동안 망설이고 일상 업무에 쫒겨 뒤늦게 편지 올립니다. 주간에 직장근무로 바쁜생활중에도 배움의 의욕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강의하신 교수님 모습이 생각납니다. 퇴직 후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시간활용을 못하면 초라하고 빨리 늙고 건강에 해롭습니다. 긍정적이고 평안한 마음으로 활기찬 여생을 보내십시오.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보시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19981111일 제자 올림

 

 편지 받을 때는 정년퇴임 대기중이었으므로 노후 건강을 염원하는 내용이었다. p양은 군산에 거주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국가공무원이며 아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학생이다. 경찰학과 야간부 3학년이지만 결석 없이 강의실 맨 앞줄 가운데 앉아 흐트러짐 없이 강의를 들었다. 항상 1교시가 끝나면 추운 겨울에도 집에서 가져온 정성들인 보온병 쌓화차를 따라주곤 했었다. 피로를 풀어 줄 뿐만 아니라 천만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정성의 쌍화차여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차의 향과 아름다운 정성이 모락모락 풍겨온다.

 

 처음 강단에 서게 된 것은 경찰청 경과무장 근무때 군산 H대학교의 간청에 의해서였다. 첫 강의가 법 경찰학과 3.4학년 주.야간부였다. 그후 전주 J대학교까지 15년간이나 이어졌다. 야간부 학생은 거의 직장인들로서 주경야독 특수환경의 학생들이며 직장 동료들도 많았다. 마치 옛날 선비들이 초롱불 밑에서 밤새워 쩌렁쩌렁 글 읽는 모습이 연상된다.

 사람은 평생 배우며 모두가 스승이라 한다. 나는 초중고 12년, 대학과 대학원 10년 일생중 22년간을 정규 교육만 받았으니 학생으로 반평생을 살아 온 셈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P양처럼 사제지간의 따뜻한 정을 베풀었던 적이 있는지 곰곰히 헤아려보면 아쉬움이 많다. 오늘날 스승을 하늘처럼 알고 공경하기는커녕 심지어 초등생부터 사도가 패륜으로 변화된 험악한 현실을 통탄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교권을 경시하고 학생의 인권만을 챙기는 것이 마땅한지 의아스럽다. 물질만능 출세만능 나만 잘살면 된다는 개인본위 도덕불감증 세상이 개탄스럽다. 이러한 현상은 생태적 부도덕한 개인보다 국가의 책임이자 교육의 책임이다. 올바른 교육의 지표와 가치를 설정치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위정자의 책임이 크다. 교육 백년대계(百年大計)는 지도자와 정책이 일관되어야 한다. 조령모개(朝令暮改)로 바뀌면 국가의 장래는 희망이 없다. 바른 국가관 국민의 존경 받는 품위와 능력을 갖춘자를 교육 총수로 임명하여 오래도록 교육에 공헌해야 한다. 임기응변식 무책임한 무능력 정치인이 교육 총사령관이 될 수는 없다. () () () 일체의 인성 교육으로 이성과 인성을 고루 갖추고 세계경쟁에 앞서가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강의중 치안비상시는 정복 입은 채로 강단에 섰다. 출동을 대비하여 무전 청취를 해가며 강의를 했으니 경찰학과 학생들이므로 교수의 모습을 남다르게 느꼈을 것이다. 퇴색된 편지를 읽으면서 강단 생활이 제2의 보람된 삶으로 행복을 느낀다. 그래도 때로는 퇴직 후 바로 특수한 삶을 누리지 못한 것에 후회도 한다. 귀촌하여 자연인 생활을 누리며 좋은 나무를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지 못하여 서운하다. 요즘처럼 수필공부를 일찍 했으면 좋은 글도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며 행복한 후회도 한다.

 

 P양 편지에 대한 답장도 상면기회도 없었다. 주소와 전화번호도 모르지만 이제라도 안부를 전하고 싶다. 남북이산가족도 상봉하는데 가까운 군산은 이웃이 아닌가!  편지의 염원처럼 지금 건강한 것을 감사히 생각하며 P양도 지금쯤 정년퇴직을 하여 장성한 자녀들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누리리라 생각한다. 편지에서 퇴직후 교수의 건강을 염려했던 것처럼 나도 P양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2018.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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