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과 검은 발톱

2018.10.21 06:12

전선숙 조회 수:8

한라산과 검은 발톱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육지논에는 벼가 노랗게 익어가고, 서귀포 밭에는 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며칠 전 홈플러스에서 올해 수확한 쌀 한 포를 샀다. 밥을 지으니 쫀득함이 찰밥처럼 맛이 좋아 금방 한 그릇을 비웠다. 지금 서귀포에는 귤 수확이 시작되었다. 어제 향토 오일장에서 사 온 귤이 새콤달콤 입맛을 돋웠다. 가을이라 입맛이 살아난 것일까? 건강을 위해 아침저녁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와 발을 씻을 때 보이는 여섯 개의 검정 발톱, 이것은 10월 초 한라산 등반 기념이다. 지난 1월 서귀포로 이사 올 때 따뜻한 남쪽 나라답지 않게 폭설이 내려 도로변 제설 작업을  한 눈이 1m 높이로 도열해 있고, 한라산 등산객은 멋진 상고대를 감상하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5.16 도로인 숲 터널을 지날 때 나무에 살포시 내려앉은 상고대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세계 어느 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울까. 그때 나는 결심했다. 힘을 길러 나도 한라산을 올라가 보리라고….

  9월 말 육지에서 제주로 가족이 여행을 왔다한라산을 간다는 것이 목표였다. 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어,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관절염약을 수년간 먹어오고 나이도 있어서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나만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갈 때까지 가보다 못 가면 쉬었다가 내려올 셈이었다. 사람이 붐비는 개천절을 피해 2일 새벽에 출발하여, 성판악에서 6시 반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영실 쪽은 거리가 짧은 편이나 통제되고있었다. 성판악은 길이 완만하지만 거리가 멀다. 산행길이 좁은 곳은 비켜서서 걸어야 할 정도다. 그러한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또 걸었다. 길목마다 표지판에 현재 위치 표지가 있어서 남은 거리를 계산하며 오르니 괜찮았다. 진달래 밭까지 12시 반까지 도착해야 정상을 오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통제를 하니 부지런히 가야 하는데, 가도 가도 진달래 밭은 멀고도 험했다. 마음속으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힘든데 오지 말 것을…. 입속에서 단내가 펄펄 났다. 기진맥진해서 겨우 진달래 밭에 도착하여 준비한 김밥과 오이를 먹고 기운을 차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온 것만큼 걸어야 한다니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열 살 아래 동생부부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형부와 언니, 그리고 내가 함께 걸었다. 오르기 전에 언니한테 걱정을 했더니 가다가 힘들면 내려오기로 했는데, 언니가 앞서서 계속 오르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제발 그만 갔으면 하면서 뒤를 따랐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계속 앞질러 가니 뒤처져 이를 악물었다. ‘태산이 높다해도 하늘 아래 뫼이로다.’ 숨을 헐떡거리며 가다 쉬다 1,900m까지 왔다. 1800m쯤에는 구상목이 많이 죽어 있었다. 지리산이나 덕유산에도 구상목이 많이 죽었다는 것을 TV에서 보았는데, 이곳 한라산도 마찬가지였다. 숲은 자연치유로, 연구 결과 혈액과 타액에서 모두 스트레스 생리적 지표인 코르티솔 호르몬이 줄어들고, 산소포화도가 증가하여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 등이 감소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래서 등산은 우리를 더욱 젊게 만드나 보다. 그러기에 힘들어도 등산은 인기가 많은 것 같다. 또한 자신의 건강을 확인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도로에서 100m는 눈앞에 바로이지만 산에서 100m는 안간힘을 다하여 걸어도 쉽지 않다. 내 바로 앞에서 47m가 정상이지만 마음을 다잡고 걸어야 한다. 장식으로 꾸며진 곳에 등산객들이 백록담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언니를 찾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전화 하니 어지럽고 걸을 수 없어 포기한다고 했다.

  “언니! 60m 남겨놓고 포기한다면 올라온 것이 너무나 억울할 것 아니오? 고지가 눈앞이니 제발 힘을 내어 올라 오시오!  

언니는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 같았다. 속이 좋지 않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올라와서 더 힘든 것 같았다. 언니는 잠시 쉬면서 간식을 좀 먹고 나니 힘이 나서 올라오는 중이라고 전화가 왔다. 마치 전쟁터 용사처럼 느껴졌다. 젖먹던 힘까지 내서 가까스로 힘들게 5명의 가족 모두 백록담 비췻빛 물을 보았다. 솜사탕 같은 구름이 손에 잡힐 듯하고, 내 앞에서 뭉실뭉실 떠간다. 제주 시내가 눈 아래 펼쳐져 있다. 남녘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1947.269m)에 올라온 것이다.

 한라산은 1970324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라산 이름은 산이 높아 산정에 서면 은하수를 당을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니 힘들었던 산행은 잊고 영웅이 된 것처럼 모두 자신을 대견스러워 했다. 나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한라산을 가족과 함께 등반한 것이니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기념촬영을 하고 ‘내가 널 보려고 새벽부터 서둘러 왔노라!’ 나는 입속으로 읊조려봤다.

 정상에서 오후 2시에는 하산을 해야 한다며 관리원의 호루라기 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사진을 찍는 무리도 해산되었다. 150여 명쯤 되어 보이는 등산객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앞에 가는 사람은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반신반의하며 올라와서 백록담까지 보고 내려가니 꿈만 같다.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보다 더 쉬우리라 생각하고 미끄러지듯 내려가리라 생각하니 신바람이 났다. 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았다. 900m쯤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1,000m를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아득했다. 관리원이 올라오면서 해지기 전에 빨리 내려가라 했다. 난들 어찌 빨리 내려가고 싶지 않겠는가?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내려올 때는 발톱이 등산화 앞부리에 닿을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파 걸을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니 고라니 가족들이 산죽을 뜯고 있었다. 걷다 보니 어느덧 해는 지고 달도 별도 숨어버렸다. 말 그대로 칠흑 같은 밤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동생 손 전화에 불빛을 의지하여 한 발 한 발 걷는데, 길옆 간판에 멧돼지 출몰지역이라고 씌어 있었다. 덩그러니 우리 가족만 남았고, 만약에 멧돼지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마디씩 하는데 겁이 덜컥 났다. 나는 오늘 밤 영락없는 멧돼지 밥이 될 것 같고, 가족들한테 많이 미안했다. 형부는 무릎에 주사를 맞고 오셨는데 앞서가시더니 끝내 만날 수 없었다.

 

  “언니, 왜 형부가 보이지 않아요?” 

  “앞서 간 등산객이 손전등을 가지고 내려갔으니 함께 잘 내려가셨을 것이니 너나 잘 내려와.”

 어느덧 손전화 건전지가 소멸하고 다시 건전지를 교체하여 세월아 네월아 걸어오니 아득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다 내려온 모양이다. 무엇보다 다리도 성치 않고 고희를 넘기신 형부가 먼저 반겨 주셨다.

 “형부, 깜깜해서 어떻게 내려오셨어요?

 “손전등을 가진 사람들은 앞서서 내려가고 혼자서 울퉁불퉁한 길을 걷노라 시각장애인 훈련을 톡톡히 했지.”

 많이 미안했지만, 더듬거리며 내려오셨을 형부를 상상하니 자다가도 웃음보가 터진다. 빽빽하게 들어섰던 주차장에는 승용차 2대만이 덩그렇게 남아있었다. 저녁 7시에 내려왔으니 꼬박 12시간 반이 걸린 셈이다. 하산은 비록 꼴등으로 했지만, 그래도 한라산을 다녀 온 것이 어디냐고 주변 사람들한테 당당하게 말한다.

 정상에서 백록담을 찍은 사진을 가지고 아래 사무실에 가면 정상등반인증서를 주는데 우리는 너무 늦어서 받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발톱만 보면 힘들게 올라간 백록담 비췻빛이 눈에 선하고, 어둠속에서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체험하며, 달빛과 별빛의 소중함을 느꼈다산모가 해산의 고통이 심하여 다시는 아이를 놓지 않겠다고 하지만, 아이재롱에 고통을 잊어버리듯, 내 발톱이 하얗게 되는 날 댜시 한라산에 가고 싶지 않을까? 

                                            (2018.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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