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발자취를 찾아서(1)

2018.10.22 06:26

김금례 조회 수:6

순교자의 발자취를 찾아서 (1)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수필창작반 김금례

 

 

 

 

  폭염도 가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금암성당에서는 올해 먼 곳으로 성지순례를 가지 않고 전라북도 내에 순교자를 모신 나바위, 여산, 천호성지, 초남이성지를 찾는다고 했다. 몇 번 다녀온 곳이지만 내가 언제 다시 네 군데 순교자 성지를 찾아볼 수 있을까 싶어서 길을 나섰다. 버스 4대로 출발했는데 우리 10구역은 4호차에 올랐다. 서로 환한 얼굴로 반겼다.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가 시작되었다. 어린 소녀가 소풍 가는 것처럼 마음이 설렜다.

  나바위성지에 도착하자마자. 김대건 신부님이 배를 타고 들어온 곳이 지금은 물이 빠져 십자가의 길로 조성이 되었다. 억새풀과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반겨주었다. 세월이 흘러갔음을 알 수 있었다. 산허리를 돌며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눈부신 햇살이 솔잎사이로 우리를 비추었다. 감격했다. 그곳에서 십자가의 길은 성모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고통을 더욱더 되새기게 해 주었다. 산골짜기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화산성당은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 주었다. 경치도 좋고 의미도 깊어 온갖 사색에 젖었다. 오솔길 역시 어머니 품처럼 따스했다.

 

  김대건 소나무 숲을 지나 땀을 훔치며 오르막길을 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유교적 전통 관습에 남녀 자리를 구분한 칸막이 기둥이 세월의 흔적을 알려주었다. 제대, 예수성심상, 촛대, 감실세례대 등이 옛 모습 그대로 있었다. 창문이 한지로 된 유리화여서 독특했다.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해 왠지 정감이 가고 편안했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나무들과 어우러져 은은하면서도 기품이 넘쳤다. 미사가 시작되고 김 신부님의 강론이 시작되었다.

  나바위 화산성당은 1845 (헌종11) 1012일 밤,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3대조선교구장)와 다불뤼(5대조선교구장 고종3년순교)11명의 신자들이 강경포구와 가까운 나바위 성지가 위치하고 있는 화산으로 입국할 때 풍랑을 만났다. 40일을 서해바다에서 표류하다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딘 곳이다.

 산이 아름답다고 해서 화산(華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단다. 나바위성지는 화산의 끝자락에 넓은 바위가 있어 나바위라고 불렀으며, 금강의 강변에 자리한 화산은 산 밑 서북쪽으로 물이 닿았고, 갈대숲이 우거졌다. 이곳에 나바위성당이 설립된 뒤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가 5.6월이면 연례피정을 나바위에서 가졌다. 아름답고 조용한 분위기에 감탄하며 피정을 하시는 주교님을 위해 베르모렐 (장약슬 요셉) 신부는 1915년 정자를 지어 드렸다. 드망즈 주교는 바랄 망, 아름다울 금을 붙여 망금정(望錦亭)이라 이름 붙였다. 김대건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 상해를 떠나 42일간 입국할 때 타고 온 라파엘호의 크기를 본떠 세운 것이다. 목선의 길이15자가 순교비의 높이가 되고, 넓이 6척이 순교비의 둘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6 헌종 4년에 체포된 뒤 26살의 꽃다운 나이에 서울 새남터 형상에서 참수형을 당한 뒤 서소문에 목이 매달리는 군문효수형에 처해졌다는 말씀에 가슴이 뭉클하며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나도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말로는 할 수 있어도 실천은 어려운 일이 아닌가? 나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주임신부님은, 어제는 하느님의 자비였고, 오늘은 하느님의 사랑이고, 내일은 하느님의 섭리임을 묵상하라고 했다.’ 김대건 신부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목숨을 바쳤다. 그 신앙이 번성하여 대대손손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강론은 나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꿀맛 같은 점심식사를 하고 오솔길을 따라 평화의 모후상 앞에 다가섰다. 비스듬히 하늘을 바라보고 계신 성모님 모습을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을 때, 잿빛하늘에서 갑자기 활짝 얼굴을 내밀고 눈을 맞추는 것이 있었다. 천상에서 범석규 신부님을 만난 듯 가슴이 뛰고 기쁨이 샘솟았다  환희에 넘쳤다.

 “신부님, 잘 계시지요?” 범 신부님과 함께했던 그리운 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직도 신부님의 생생한 목소리가 귓전에서 울렸다.

 범 신부님이 화산성당 주임 신부로 가시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신부님을 만나고자 물어물어 화산성당을 찾았다. 신부님은 성당 앞에서 웃으시며 반겨 맞아 주셨다. 그러나 쓸쓸하고 초라한 성당에서 신부님을 뵙자 눈물이 핑 돌았다. ‘한때는 교우가 3.200명이었으나 젊은 청년들이 농촌을 떠나면서 노인들만 남은 성당이 되었단다.      

 “신부님, 공기 좋은 곳에서 건강을 찾으시라고 하느님이 이곳으로 보내셨나 봐요.

하지만 신부님을 남겨두고 떠나려니 마음이 아팠다.

  얼마 뒤 신부님을 만나러 다시 왔을 때 범 신부님은 이곳이 성지이니까, 성 김대건 신부님의 정신을 본받아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곳에 피정의 집을 짓겠다고 하셨다.

“신부님, 건강도 안 좋으신데요?

신부님은 화산성당 구경도 할겸 산에 오르자고 했다. 넓은 바위에 앉아 김대건 신부님의 일대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벽돌 한 장 한 장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자 자주 이곳에 왔었다. 성지를 마음으로만 지을 수는 없다. 신의 노력으로 피정의 집이 지어질 때 참 기뻤다. 피와 땀으로 건립한 피정의 집에서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있어서 감사했다. 기쁨이 필요할 때 기쁨을 주셨고,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를 주셨으며, 믿음이 필요할 때 믿음을 주셨던 신부님의 빈자리가 그리우었다. 세월은 가도 추억은 남는다고 했던가? 신부님은 이 세상을 떠나셨어도 신부님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내가슴에서 숨쉬고 있었다.  

 

  덧없이 흘러간 세월 속에 피정의 집에서 본 가을하늘이 한없이 높고 푸르렀다.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여정에서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왔을까? 이제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워 하느님께 의탁할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이번 성지순례는 나에게 위로와 힘을 주었다.

                                                                 (201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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