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의 교훈

2018.10.22 06:59

이우철 조회 수:8

구절초의 교훈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우철

 

 

 

 

 구절초는 우리나라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다. 음력 99일에 꺾는 풀이라 하여 구절초라 부른다. 소박하고, 토속적이며, 정감이 넘치는 야생화 구절초, 그 구절초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향기를 뿜으며 앞서 간 식물들이 못다한 의무를 다하려 한다. 구절초는 혼기를 놓친 여인이 하얀 소복차림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처럼 애절해 보인다.

 

 해마다 시월이면 정읍 산내에서 구절초축제가 열린다. 옥정호에서 피어나는 물안개와 솔숲사이로 펼쳐진 연보라빛 꽃동산은 깊어가는 가을의 서정을 정감있게 보여준다. 섬진강의 최상류, 호남정맥의 회문산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6.25때 빨치산들이 숨어살던 으슥한 지역이었다. 옥정호를 개발하면서 관광명소로 바뀌게 되었고, 고산지 청정지역에서만 자생하는 구절초군락지를 찾아낸 것이다.

 

 요즘 군산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종종 오식도공원을 찾아 나선다. 초입길목에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발길을 머물게 한다. 누군가 이곳에 꽃씨를 뿌려놓았을 것이다. 진한 향내를 뿜어내며 찬 서리 바닷바람을 어떻게 견디어왔을까? 숲속에서 꽃 몇 송이가 벌나비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저 하나 감당하기도 어려우련만 미물들에게 먹이를 나누어주고 있으니 천사임이 분명하다.  

 

 얼마 전 경기도 가평에 사는 H장로를 만났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아온 분이 은퇴하기 6개월 전부터 이발기술을 배우더니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어디든 이발도구만 가지고 가면 봉사를 하며 어른들과 대화의 광장이 마련된다. 가는 곳마다 간증을 하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숨겨진 기량을 발휘하고 있으니 많은 사람을 울고 웃기는 재능을 소유한 분이다. 틈이 나면 글을 쓰고 그림도 그려주며 노년에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라고 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요 수확의 계절이다. 일하지 않고 어찌 수확을 기다리며 결과를 기약할 수 있을까? 농민들이 땀흘려 지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듯 누구나 지나온 뒤안길을 더듬으며 성적표를 작성해야 하는 엄숙한 계절이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지난날을 아름답게 살아온 사람은 그 얼굴에서 삶의 궤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막강한 권좌를 누리며 나는 새를 떨어뜨릴 힘이 있었을 지라도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면 추해 보인다. 뒤끝이 좋지않아 불행한 사람을 많이 보지 않았던가?

 

 한여름 왕성하던 나무들도 찬바람, 서리가 내리니 시들어가고 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내 마음도 스산해진다.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서일까? 사계절이 그렇듯 모든 생물에게도 생로병사가 있기 마련이다. 세상 좁은 줄 모르고 온산을 휘감던 나무넝쿨도 잠시후면 앙상한 몰골로 변할 것이다. 무섭게 맹위를 떨치던 그 기개는 어디로 갔을까?

 

  버릴 것이 없는 구절초, 늦가을까지 남아 미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약용식물이다. 달인 차를 마시면 온몸을 따뜻하게 하며 혈압을 낮춰주고 항산화, 염증해소, 비만, 항암에 효험이 있는 식물이다. 특히 갱년기 여성들의 소화불량과 월경불순, 자궁냉증에도 효과가 탁월하단다. 향이 좋아 꽃차로 마시지만 뿌리까지 말려서 베개 속에 넣어 사용하면 숙면을 할 수 있으며, 두통이나 탈모는 물론 머리칼이 희게 되는 것을 방지해 준단다.

 

 ‘배고픈 자여, 다 오라!’ 가슴을 열고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는 구절초, 등산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소재를 만난 샘이다. 은퇴이후 나는 우연히 수필을 배우고 있다. 그간의 여정을 정리할 수 있어 행복하다. 아직은 미치지 못하지만 주변사람들에게 ‘그래 맞아. 나도 그랬어.’ 하며 긍정해주는 글이 되어준다면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구절초의 교훈을 거울삼아 아내와 상의하여 장기기증을 서약해 볼 요량이다.

                                                                   (2018,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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