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

2018.11.01 06:27

오창록 조회 수:55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오창록

 

 

 

 

  아침이 되면 활기차게 출근하는 사람들로 거리는 생기가 넘치고, 학생들은 책가방을 등에 메고 학교에 가느라고 종종걸음을 친다. 그런데 나는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목욕탕으로 간다. 아내는 젊을 때부터 30여 년이나 수영장을 다닌 덕으로 비교적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오래 앓았던 지병과 나이의 문턱을 어찌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치료를 맡았던 의사의 권유로 물속에서의 운동이 몸에 무리가 되지 않아 좋다고 해서 3년 전부터는 근처 목욕탕으로 출근한다.

 

 내가 다니는 목욕탕은 800평이나 되는 규모가 큰 목욕탕으로 운동하기 좋은 편의시설들이 고루 갖추어진 곳이다. 집에서 다니기에 적당한 거리여서 처음에는 운동 삼아 걸어 다녔다. 그동안은 아내 혼자서 다녔는데 올해부터는 혼자 걸어서 다니는 것이 불안하여 나와 같이 다닌다. 아들과 딸들이 그동안 아내의 회비를 1년에 한 번씩 내주었는데 이제는 내 몫까지 같이 내게 되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나도 두어 시간씩 매일 목욕과 운동을 하기 위해서 출퇴근을 같이 한다.

 

 목욕탕 안에 들어서면 무엇보다 천정 중앙이 유리로 되어있어 낮에는 밝은 햇살이 탕 안을 비춰준다. 우리나라 일부 온천에도 있지만, 특히 일본의 온천은 거의 탕 안에서 옆에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하늘과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야외온천이 있다. 아마 야외온천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고 5층 건물의 옥상에 유리창을 만든 것 같다. 따뜻한 물속에서 하늘의 밝은 햇살을 볼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지난 109일 한글날이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손님이 탕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발을 물에 담근 채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으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목욕탕까지 책을 가지고 와서 읽다니…. 평소에는 얼마나 많은 글을 읽을까?

 

 목욕탕에는 온도에 따라 세 곳의 탕이 있고, 두 군데의 사우나 시설과 냉 · 온탕이 있으며 규모는 작아도 수영을 할 수 있는 수영장이 있다. 아래층에는 헬스클럽이 있어 더 많은 운동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문 운동기구가 비치되어있다. 찜질방과 수면실 그리고 식당까지 있어서 하루 종일 이곳에서 운동하고 밥도 먹을 수가 있다. 옆 건물에는 영화관이 있어 좋은 영화를 골라서 볼 수도 있다. 지난여름처럼 무더울 때는 아침부터 늦도록 이곳에서 시원하게 지내다가 늦게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내는 서너 시간은 목욕탕에서 지내야만 평소 자기가 하던 운동을 모두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한 시간 정도면 목욕이 끝난다.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최근 20분 물속에서 걷는 운동이 건강에 좋다기에 걷는다. 그냥 걷기에는 무료해서 수영장에서 제자리 걸음으로 천오백 보를 뛰는데 30분이 걸린다. 물속에서 뛰지만 운동이 상당히 되는지 종아리가 뻐근하다.

 

  수영장이 평소에는 한가하지만 주말에는 시끌벅적 어린이들의 천국이 된다. 목욕은 뒷전으로 가고 물장구를 치고 헤엄을 치면서 물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초롱초롱한 어린이들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내면 내게도 하트를 그려서 보내준다.

 

  이곳에서 언제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아들이,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정성껏 등을 밀어드린다. 나는 열일곱에 아버지를 여의어서 항상 풍수지탄 (風水之歎)을 평생가슴에 안고 산다. 그뿐 아니라 일주일이나 열흘정도에 한 번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온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안내 한다. 탕 안으로 안내를 해주고 편안한 자세로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눈이 없는 사람을 대신해주면서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젊을 때 어느 교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자성(自省)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나도 늦게 문학을 시작했지만 수필을 통해서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아내는 나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23녀의 자녀를 두었다. 아들과 딸이 모두 가정을 이루어서 제 몫을 다하면서 살아간다. 젊은 시절에는 사업에 몰두하느라고 앞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가는 나에게 청춘을 바쳐서 뒷바라지를 해왔다.

 

  어느 날 자신을 돌아보니 백년가약을 맺었던 시절은 아득한 꿈속인 듯하고 이제는 인생의 황혼길에 접어들었다. 아내는 10여 년 전부터 병마가 찾아와 주기적으로 서울아산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예수병원과 개인병원에서도 치료를 받고 있다. 나이가 있어 건강이 전과 같지는 않겠지만 운동이라도 열심히 해야 그 정도라도 유지할 것 같다. 삶의 노을이 다가오면 옆에 있는 사람은 부부밖에 없다. 평소에 쓰던 글도 잠시 멈춘 채 아내를 보살펴 주는 나를 아내는 젖은 눈으로 바라본다.

 

 속담에 ‘먼 곳에 있는 단 장이 앞에 있는 쓴 장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자식들이 모두 열심히 도와주고 옆에 살고 있는 큰딸은 일주일에 몇 번씩 찾아와서 냉장고에 무엇이 없는지 들여다본다. 집안일은 내가 살펴야 할 일이 더 많아졌다. 때늦게 자성의 길을 찾은 나에게 문학은 고마운 스승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아내의 운전사가 되어 목욕탕으로 출근한다.

                                                          (1918.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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