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관계

2018.11.15 05:39

김학 조회 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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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관계


김 학







새벽마다 눈을 뜨면 새로운 하루가 열린다.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언제나 다를 바 없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같지만 실제로는 어제와는 완연히 다른 새로운 하루다.

오늘 나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사람의 전화를 받으며,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곳을 들르게 될까 생각해 본다. 또 오늘은 어떤 이의 저서가 배달되고, 어떤 기사를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만나게 되며,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상상해 본다. 확실한 것은 많지 않다. 예측이 가능한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일들로 짜여 진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지만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불러내면 약속이 없었어도 나가야 하고, 누군가의 부음(訃音)을 들으면 예기치 않은 일이지만 장례식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이것이 나 같은 보통사람들의 인생살이다.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려면 이렇게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가기 싫어도 가야하고,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며, 웃기 싫어도 웃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나를 움직일 수만은 없다. 참으로 인생이란 묘한 존재다.



벌은 꽃에서 꿀을 따지만 꽃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꽃을 도와준다. 사람들도 남으로부터 자기가 필요한 것을 취하면서 상처를 남기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것만 취하기 급급하여 남에게 상처를 내면 그 상처가 썩어 결국 내가 취할 근원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꽃과 벌 같은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엔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당신은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다.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당신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하다. 빗방울에라도 다쳐 행여 큰일이 없기를 기도한다. 당신이 살아 있어야 나도 살 수 있으니까.



언젠가 읽었던 이 글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 나도 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갖가지 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따고 그 꽃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꽃을 도와 중매를 서고 싶다. 나만의 이익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나 아닌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돌이켜 보면 나의 오늘이 있기까지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콩나물이 물로 샤워만 해도 무럭무럭 자라듯 나도 내 이웃들이 베풀어 준 크고 작은 도움으로 성장하여 오늘의 내가 된 것이다. 그러니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받았던 도움을 돌려주어야 하리라 믿는다.


나는 지금 수필을 쓴다. 반백년 전부터 시작한 일이다. 내가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부터는 여기저기서 수필 강의를 하고 있다. 다행히 수필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 보람을 느낀다. 그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쓴 수필을 나에게 메일로 보내주면 나는 그 수필을 읽고 첨삭(添削)하여 다시 돌려보내 준다. 그러면 본인은 자신이 쓴 원문(原文)과 내가 수정해준 첨삭문(添削文)을 비교하면서 어느 부문을 어떻게 손질했는지 비교하면서 꼼꼼히 읽어 보는 게 중요한 공부다. 그렇게 제대로 하는 이들의 수필은 날이 갈수록 발전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만 주면 자라는 콩나물처럼 글 솜씨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들은 오래오래 제자리걸음을 한다. 발전이 빠른 이들에게는 등단의 길까지도 안내를 해 준다. 그것이 꽃이 상처를 입지 않고 열매를 맺게 하는 꿀벌에게서 배운 지혜다.


지난 8월 하순 오키나와를 다녀오느라 나흘 동안 컴퓨터를 닫아 주었다가 귀국하여 열어보니 20여 편의 수필이 쌓여 있었다. 날마다 그 수필들을 첨삭하여 돌려주느라 몹시 고생을 한 일이 있다. 그때 성질이 급한 어떤 분은 세 번이나 같은 작품을 보내면서 왜 첨삭지도를 해 주지 않느냐고 항의를 했다. 외국여행을 간다고 미리 예고를 했는데도 그 말은 귀담아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첨삭한 원고를 보내주면 바로 감사하다며 메일을 보내주는 분들도 더러 있다. 사람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항의하는 사람이나 감사해하는 사람도 모두 수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니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다. 특히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1촌이라도 더 가깝게 아름다운 관계로 살아가고 싶다. 꿀벌은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무언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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