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

2018.11.18 09:29

이연 조회 수:8

왜가리                                   

 

                                                                   蓮 이형숙

 

 

 

 

 

   승사교를 지날 때마다 지금도 눈이 가는 곳이 있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면 물이 얕게 흐르는 곳에 부조처럼 왜가리가 서 있었다. 그 곳이 먹이를 낚아채기에 좋은 장소였는지 그림처럼 서 있었다. 고수부지 가꾸기 사업이 한창인 때라 그것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리 난간에 서서 진위여부를 놓고 남편과 말씨름을 했었는데, 다음날 산책길에 왜가리 한 마리가 보란 듯이 나지막하게 한바탕 날더니 그 자리에 돌아와 서는 게 아닌가.  

  이른 아침 강가에 왜가리 한 마리가 강 하류 어디쯤에 둥지를 틀었는지 강을 따라 오르내린다. 잿빛 등 뒤로 검은색 댕기를 드리우고 앞쪽에 검은색 두 줄 무늬로 치장을 했다. 어깨 깃도 검은 색이다. 아침거리를 찾으러 온 듯 뚫어져라 물속을 응시하다가 긴 목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기도 한다. 둥지에서 기다릴 새끼들 생각에 조바심이 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속에 자꾸만 머리를 쳐 박는 모습이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센 물살에도 한 발로 선 가느다란 다리가 흔들림이 없다. 먹잇감이 다가오는 순간을 기다리며 낚아챌 기회를 노리고 있다. 기다림에 익숙한 그들은 때가 오면 날카로운 부리로 먹잇감을 낚아채는 타고난 낚시꾼이다.

  왜가리는 아침마다 홀로 강가에 내려앉아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마음도 담근다. 투명한 물속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건져낸 것들이 배를 채우는 것들만이 아닐 터. 내면에 남아있는 찌꺼기도 스스로 걸러내고 삶의 무게도 덜어내리라.    

  주로 모여 사는 곳은 넓은 습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간다. 섬진강 줄기 요천수 늪에 둥지를 틀어 먹이가 넉넉하니 새끼 키우는데 최적의 주거지역을 선택한 셈이다.  

  백로처럼 우아한 옷을 입지 못했지만 건강해 보이는 회색 몸통에 매년 3-4월이면 습지에 날아들어 둥지를 튼다. 짝을 만나고 새끼를 낳아 키우며 바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오면 따뜻한 나라를 찾아가는 철새다.

  초등학교 시절 좁은 교실에 60여 명이 넘는 꼬맹이들이 교실에서 엎치락 뒤치락 뛰고 떠들어 대던 때가 생각난다.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대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왜가리가 울어대듯 한다.’ 는 말씀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가리가 다른 새처럼 고운소리로 노래하지 않고 울기만 하는 새라는 의미를 담은 말씀이었다. 슬픔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것은 아니다. 기쁨이 넘쳐도 소리 내어 울고 사랑에 빠져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운다. 미움과 노여움에 몸을 떨면서 울고 즐거움이 극에 달해도 눈물이 난다. 끝없는 욕망을 이루지 못해 좌절감에 몸부림치면서 통곡한다. 맺힌 감정을 확 풀어버리는 데는 왜가리처럼 소리 지르고 우는 것보다 더 좋은 치료법은 없을 듯하다.      

  울음소리인지 노래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쩌다가 왜가리는 꾀꼬리 같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못한다. ‘왝 왝’ 하는 소리가 그의 식성만큼이나 거칠고 사납다. 듣는 사람에 따라 ‘왁 왁’우는 새라고도 한다는데 지역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우리말글의 다양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연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깨우친다는 말은 왜가리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건강을 지키는데도 특별한 비법을 가진 새이다. 긴 부리로 물을 머금은 다음 스스로 항문 속에 뿜어 넣어 대장에 남은 썩은 찌꺼기를 씻어 낸다고 한다. 왜가리가 머리 좋은 새라고 한다는데 장이 가장 깨끗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장이 깨끗하면 소화과정에서 생긴 독소가 뇌로 올라갈 일이 없을 터이다. 당연히 머리가 맑아져 뇌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고 더불어 지능이 높다는 이야기가 수긍이 간다. 주먹만 한 머리속에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담고 있으니 배우고 깨달은 바를 실천하고 행함에 머리 큰 인간이 새보다 나을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짝사랑’ 이란 노래의 주인공인 ‘으악새’가 왜가리인 것을 알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노랫말을 작사하신 분의 이야기로는 뒷동산에서 왜가리가 ‘으악, 으악’ 하고 우는 소리처럼 들려 으악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다시 들어보니 가슴 저 밑바닥을 훑어내는 비명소리 같은 그 소리가 ‘으악 으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새인 줄 알았던 으악새가 여름 내내 아침 강가에서 만나는 왜가리라면, 짝사랑의 애절한 사연이 없어도 가을이 오는 길목에 설 때마다 눈물짓게 될 것만 같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어미 왜가리가 갓 태어난 새끼를 지키는 감동적인 영상이 화제다. 날개를 펴고 그늘 막을 만들어 새끼를 보호하는 왜가리의 모성본능이 눈물겹다. 태양을 등 뒤로 하고 방향 따라서 그늘을 만드는 게 왜가리의 힘겨운 여름나기다. 하루를 보내고 해가 설핏해지면 비로소 새끼들의 저녁거리를 찾아 나선다고 한다.

  요천수 습지에 가뭄 속에서도 갈대가 어른 키를 훌쩍 넘어 작은 바람에도 일렁인다. 제 몸 상하는 줄 모르는 어미사랑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의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피 같은 사랑이다. 신은 자신의 손길이 미치지 못할 곳에 어미를 존재하게 했다지 않던가?  요천수 위를 나르는 왜가리의 눈길 끝자락에 어느새 가을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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