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여야 할 운명

2018.11.20 05:06

김현준 조회 수:4

 받아들여야 할 운명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마지막 이별은 자신의 죽음인데,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피할 수 없을 바에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죽음이 무엇일까?’ 보다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에 관심이 크다. 올 한 해 동안 내가 한 일 중에 잘한 것은 두 가지다. 전주 효자추모관 프레미엄실에 부부 유택()을 장만한 것과 사전 연명의료중단 의향서의 등록이다. 원래 대학병원에 시신을 기증하려 했는데, 아내의 반대가 완강하여 포기했다. 이젠 숙제를 끝낸 학동처럼 실컷 놀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다. 가끔 나의 장례식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한결 여유롭다.

  얼마 전 10여 년 넘게 다니던 교회를 옮기고 성도들이 모여 목사님과 함께 구역예배를 드렸다. 소망이 무엇이냐 묻기에 ‘건강하게 살다가 부르시는 날 평안히 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평범하지만 간절한 기원이며, 꼭 그러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불만은 없다. 너무 일찍 죽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다. 어떻게든 사고사(事故死)는 피하고싶은 심정이며, 평안한 임종을 바랄 뿐이다.

 

  일전에 어느 컬럼니스트의 글을 읽었다. 아흔한 살 된 할머니가 입원했는데, 병이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고 자녀와 손자손녀들이 모였다. 그녀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듯했다. 신부인 아들이 함께 기도하자고 하여 마지막 미사를 올렸다.

  할머니는 눈을 번쩍 뜨고서 “나를 위해 기도해주어서 고맙다. 마지막으로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놀라면서도 마지막이라 생각하여 위스키를 드렸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얼음을 넣어달라고 하였다. 한 시간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어머니가 얼음까지 요구하니 모두 놀랐다. 할머니는 맛있다면서 담배를 피우고 싶다 하였다. 아들이 안 된다고 하니, “죽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바로 나다. 담배 한 개비만 다오.” 하며 간청했다. 그녀는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더니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 뒤 “얘들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안녕!” 이라 말하고 숨을 거두었다.

  가족들은 죽음의 순간 그녀가 보여주었던 밝은 행동을 생각하고, 얼마나 어머니다운지 서로 이야기하며 웃었다. 할머니는 평생 위스키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었다. 참으로 위대한 할머니다. 누가 감히 흉내 낼 수 있으리.

             

  나는 지금까지 육친의 여러 죽음을 통하여 비통하고 애절한 경험을 했다. 대개는 준비 되지 않은 채 마주친 불행의 실체였고, 어찌해 볼 수 없었던 무력감에 치를 떨었을 뿐이다.  마음 편히 고인을 보내드린 적이 없다. 나의 경우에도 그러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발길 가볍게 떠나고 남은 가족에게도 슬픔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아름다운 사연을 가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남쪽 지방에 살던 어느 할머니가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면서 유족에게 유서를 썼다.

  ‘너희들이 내 자식이었음이 고마웠고 그동안 나를 돌보아주어 고맙다. 너희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릴 때 나를 바라보던 눈길에 행복했다. 병들어 하느님 부르실 때 곱게 갈 수 있도록 곁에 있어줘서 참말로 고맙다. 지아비를 잃고 세상 무너지는 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줌도 너희들이었다. 너희가 있어서 열심히 살았다.’ 자녀들은 유서의 내용에 감동했고, 그녀와의 이별을 잘 견뎠다.

  내가 자녀에게 평소 하고 싶은 얘기는 이미 수필 속에 녹아있지만, 짧은 고별사는 준비해야 될 것 같다. 말로 전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여 몇 마디 적으면, “모두 고맙다. 가족이 있어 살맛이 났고 행복했다. 서로 사랑하며 잘 살아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삶을 마감할 때 도움을 받은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한다. 생명을 주신 신과 부모에게 감사하는 게 마땅할 것이며, 노년을 외롭지 않게 돌보아준 자녀에게도 고마워해야 한다.  

  티베트에서는 임종의 순간에 사자(死者)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가 중요하다는데, 이때 내세가 결정되기 때문이라 한다. 티베트의 지성 소걀 린포체는 죽음의 순간 망자를 돕는 일은 희망을 주는 것과 용서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가 생전에 잘한 것을 상기하게 하고 자신의 삶이 건설적이었으며 행복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종을 앞둔 사람은 볼 수는 없어도 들을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사람은 죽는 순간에 업()을 정화하기 위한 강력한 기회가 주어지므로,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업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는 순간에 가급적 좋은 생각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견해다. 불교와 일부 동양사상에서 발견된다.

  사람들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궁금해 하지만, 죽음 이후의 삶도 우리가 지금 사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믿음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는 무조건적 기독신앙으로 천국에 간다는 복음에 대해선 2% 부족함을 느낀다. 죽음에 대해 개인이 해야 할 미션이 없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게 아닌가.

  ‘죽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죽음 이후를 어찌 생각할 것인가?’ 이것이 노년에게 주어진 마지막 화두(話頭)이자, 숙제일 것이다.

                                                           (2018. 11. 11.)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7 웃지 않는 사람들 한성덕 2018.11.23 7
306 농부, 빵모자를 쓰다 윤근택 2018.11.23 4
305 가치있는 노년의 삶 백남인 2018.11.23 5
304 김밥, 그 하루살이 홍성조 2018.11.22 7
303 전북노래자랑과 어머니 김윤배 2018.11.21 2
302 어머니를 그리며 백남인 2018.11.20 8
» 받아들여야 할 운명 김현준 2018.11.20 4
300 YS, 그 대도무문의 추억 김정남 2018.11.20 6
299 글로 그린 가을 모악산 정석곤 2018.11.19 5
298 태극기와 애국가 김학 2018.11.18 10
297 왜가리 이연 2018.11.18 8
296 신뢰의 그림자 한성덕 2018.11.18 6
295 숲을 거닐다 이연 2018.11.17 9
294 새벽닭이 나를 깨워 윤근택 2018.11.16 5
293 초롱석란 이희석 2018.11.16 2
292 태극기와 애국가 김학 2018.11.15 3
291 아름다운 관계 김학 2018.11.15 3
290 가을 나들이 김효순 2018.11.13 5
289 분홍색 목소리 김성은 2018.11.13 9
288 털머위꽃 백승훈 2018.11.1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