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살아요

2018.12.10 05:45

한성덕 조회 수:3

단순하게 살아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내 성격은 ‘단순’하다. 그 단순함이 금방 싫증나는 성격으로 고착화된 듯하다. 깔끔해야 하는데 군더더기가 붙든지, 어떤 것을 지체하거나 오래하면 싫증나고 짜증스럽다. 아내는 참을성이 없다고 구시렁거리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걸 어찌하랴? 그 단순함이 이미 굳어버린 내 성격이려니 싶다.  

  중학생 때, 교회 반주자가 되려고 동생과 함께 풍금을 배웠다. 교회 선생님을 졸라서 배우는데 기초부터 차근차근 한 게 아니다. 풍금의 발판 밟는 요령, 건반 누르는 법, 그리고 쉬운 찬송 한두 곡을 선정하더니 ‘부지런히 연습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곡의 흐름을 알고, 손가락이 건반에 익으면서 악보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겨울방학이 되면 화로에 숯불을 가득 담아서 교회로 가지고 갔다. 형이랍시고 먼저 풍금을 치기 시작했다. 지정해준 찬송가로 연습에 들어가지만 오래하지 못하는 습성이어서 한 시간 정도면 족했다. 동생은 점심도 거른 채 숯불이 온전히 사그라질 때까지 손을 호호 불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만족하지는 않았어도, 그때 쌓은 실력으로 꿈을 이루어 4성부로 된 찬송가 반주를 할 수 있었다. 군대에 가서도 사단 군인교회 반주자로 활동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끊임없이 연습에 몰두하던 동생은 음대에 들어가 고등학교 음악교사가 되었다. 복잡한 것을 헤쳐 나가는 동생의 성격이 퍽 좋아 보이고 부럽기도 했다.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 나의 품성과 대조되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잡스의 매력이자 큰 장점은 ‘단순성’이라고 한다. 회사의 비전도, 제품의 디자인도 심플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복잡한 것은 외면하면서 ‘복잡하게 생각하면 힘을 잃는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그 기조위에 ‘단순함이라는 날개를 달고 회사가 비상해야 한다.’는 신조로 일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멋진 창업자인가? 솔직히, 잡스가 좋고 부러운 면도 있으나 ‘단순함’에서 오는 그의 사상을 공감한다.

  은혜림교회서 시무하고 있을 때였다. 2009, 교도소 가까운 논 가운데에 유럽형의 예배당을 아름답게 지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문을 꼭꼭 잠그는 상황에서도 늘 열어놓았다. 교인들은 ‘도둑맞으면 어쩌느냐?’고 난리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인생길에서 절망과 실의에 빠진 자들이 의외로 많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한 사람들은 밤새도록 얘기할 상대를 찾는다.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 내고 싶거나, 어디론지 어슬렁어슬렁 다니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 곁에 있으면 덥석 안기고 싶은 충동이 일 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외로움과 시름을 어디서 달래며, 누구에게서 풀겠는가? 교회를 개방했던 것은 누구든지 들어와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껏 부르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사실, 내 마음이 복잡하고 여러 생각들이 겹치면 개방할 수 있겠는가?

 

  우리교회는 행정구역상 전주시내일 뿐 외딴섬이나 다름없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물건을 훔쳐 갈 수 있다. 그래도 걱정하는 교인들에게, ‘없어지면 다시 사다놓고, 훔쳐간 자가 있을 때는 기도하자’며 달랬다.  

  중학교 때 ‘빅토르 위고’의 소설(1862년 작) '장발장'을 감명깊게 읽었. ‘장발장’은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5년의 징역을 산다. 복역 중 네 차례나 탈옥을 시도하다가 19년의 징역을 살았다. 출소해서 ‘미리엘’ 주교의 사랑을 받지만, 은으로 된 값비싼 물건을 훔쳤다가 발각된다. 신부는 되레 고가의 은촛대마저 덤으로 준다. 그 훈훈한 인간미에 감동된 장발장은 ‘마들렌’으로 개명하고, 공장주인과 시장이 되어 선행을 베풀며 산다는 이야기다.

  장발장처럼, 교회에서 훔친 물건 때문에 죄책감으로 끙끙 앓다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그것을 노리고 예배당을 개방한 건 아니라 해도 ‘죄인 한 사람을 얻는 것이, 회개할 게 없는 의인 열 명보다 낫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다. 단순함에서 오는 순종이요, 주님이 내안에 계시듯 장발장도 내 속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쨌든, 단순함에 따른 나름의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좋다.  

  오늘도 여전히 복잡한 세상이다. 단순하게 말해도 될 것을 복잡하고 길게 말하는 사람들과, 무수한 기기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산다. 그래도 단순함과 친구가 되어 단순히 생각하고 말하며, 그저 단순하게 살고자 한다.

                                                 (2018.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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