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의 녹두장군휴게소

2018.12.15 05:39

김삼남 조회 수:9

정읍의 綠豆將軍휴게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삼남

 

 

 

 

 오색단풍이 마지막 멋을 부린 11월 첫주, 수필반 문우들은 장성백양사로 단풍구경을 갔다. 설악산 단풍을 시작으로 내장사와 백양사가 끝맺음을 하는 단풍이다. 백양사는 내장사와 오누이처럼 색동옷 단풍을 서로 뽐내며 자랑한다. 모처럼의 관광을 시샘하는 양 가랑비가 내려 고운 단풍잎들의 제 갈 길을 재촉하는 듯했다.

 백양사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휴게소를 거쳐야 ㅜ갈 수 있다. 절 입구까지 단풍터널을 구경하고 백양사로 들어가 경내를 돌아보고 내장산과 담벽을 이루는 뒷산 백양산 단풍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백양사휴게소를 지나면서 지난주에 서울 손주들과 함께 찾았던 정읍내장산 단풍구경이 생각났다. 녹두장군휴게소에서 큰 손주는

 “할아버지, 단풍으로 유명한 정읍내장사입구 휴게소를 왜 녹두장군휴게소라고 이름지었대요? 녹두장군은 누구에요?

 손주의 궁금증에 깜짝놀랐다. 그간 무심코 지나쳤던 휴게소 명칭이 여러 가지로 새롭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녹두장군은 동학농민 전쟁을 선두 지휘한 全琫準(號 海夢)장군의 별명이다. 어릴 때 녹두알처럼 키가 작고 다부져. 녹두라는 별명이 생겼다 한다. 갑오동학농민전쟁은 124년 전 (1894.갑오년) 전봉준이 정읍 고부군수 趙秉甲의 학정과 아버지 全彰赫이 매 맞아 죽은데 항거하여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관군과 싸워 관청을 점령하고 무기를 빼앗고 죄수를 석방한 적이 있었지. 전세는 우세하여 전라도와 충청도를 위시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나 관군과 .일군의 진압으로 동학군이 대패하여 전봉준은 붙잡혀 사형이 된 것을 갑오동학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단다. 이 운동을 지지하는 농민들은 길조인 파랑새(녹두새) 노래를 불러 녹두장군과 농민군을 응원했었지. 녹두장군휴게소는 동학농민 운동을 상기시키고 정읍이 그 발상지임을 관광객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려니 싶구나.

 "그래도 휴게소이름이 장군휴계소면 무섭지 않아요? 내장산은 단풍으로 유명해 단풍구경하러 정읍을 찾지 않나요? '내장산단풍휴계소'라 부르는 것이 좋겠어요."

 나는 때늦게 어린 손주의 의견에 공감하며 놀랐다.

 

 오늘날은 편리한 고속도로 관광레저시대다. 전국적인 교통망은 생활거점과 관광명소를 연계하여 고속화되고 휴게소도 경쟁적으로 관광객의 편의와 휴식처로 제공되어 휴식하면서 맛도 즐기고 그곳의 인심과 정서를 느끼는 곳이다. 호남고속도로 전북 구간은 입구 여산과 정읍 두 곳에 휴게소가 있다. 사람의 혈맥과 같은 고속도로 휴게소 명칭은 그 지명과 인연이 있는 명칭을 휴게소 이름으로 짓는다. 경부 호남고속도로 휴게소 명칭도 망향 천안삼거리, 신탄진, 계룡, 여산, 백양사, 등 지명과 연계되어 있다. 아산에 충무공이나 천안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를 명칭으로 하는 휴게소는 없다. 정읍(井邑)은 샘골이고 내장사와 내장산단풍은 정읍의 대명사다. 처음 고속도로 개소때 사용했던 내장산단풍휴게소라는 명칭이 언제 어떤 사유로 녹두장군휴게소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역사는 후손들의 긍정과 부정 평가에 의하여 부단히 발전해 간다. 사학자들의 평가도 주관에 따라 각기 다르다. 갑오동학농민 운동도 농민봉기 . 전쟁 . 운동 . 혁명 등 주장이 다르지만 정부는 때늦게 지난 119일 동학농민군의 황토현 최대 전승일인 511일을 동학농민혁명 국가 법정기념일로 제정했다니 다행스럽다. 이제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희생 농민군의 넋은 지하에서라도 반가워하리라.

 

  지금부터는 기념일논쟁과 성격을 재론치 않았으면 좋겠다. 전봉준 장군은 반 봉건 반 외세의 기치아래 보국안민 척양척왜(保國安民 斥洋斥倭)의 애국애족정신으로 봉기했으니 그 정신이 더우 계승 발전하기를 빈다. 전봉준 장군은 공주 우금치작전에서 대패하고 최후 재기를 노린 태인전에서도 패한 뒤 순창 쌍암리(피노리 마을)에 피신중 옛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검거되어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근대 민족민중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그 넋은 영원히 국민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전해오는 사형장의 마지막 외침은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피를 뿌려 죽은 것이 옳거늘 어찌 컴컴한 적굴 속에서 암연히 죽이느냐?”

 우국충정의 뜻을 보여쥰디. 장군의 유해를 찾기 위해 정읍 산외 묘소를 발굴하였으나 찾지 못했다, 더욱이 장군의 유일한 혈손 장녀 全玉禮(당시 15)가 동학군이 패하자 정읍 산외에서 산으로 산으로 도망하여 진안 마이산 금당사에서 金玉禮 개명하여 공양주로 피신하여 살다가 그 곳 이씨와 결혼하여 손주 李嬉鐘  남기고 91세에 별세했음을 늦게 알았다. 경찰선배 이희종과 진안 근무시 가까이 지냈음에도 고인이 된 뒤 이제야 그 사정을 알게 되어 감회가 깊다.

 

 오늘날 동학농민운동 발상지라고 자부하는 정읍 고창의 농민들은 농민운동의 역사적 뜻을 외면하고 불이익 불만족한 국가 시책에 반대하는 게 농민운동인 양 폭력으로 변질하여 동학농민운동 정신을 흐리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동학농민운동 정신이 부정을 위한 부정으로 인식되어 발상지역의 발전에 직간접으로 불이익을 준다.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건전한 농민운동정신을 심어주었으면 좋겠다.

 

 녹두장군휴게소라는 명칭은 전국적인 관광객에게 친밀감보다는 이질감을 주는 것 같다. 장군은 적과 싸워 퇴치하는 임무를 진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란 장승이 그 지역 출입을 통제하는 경계의 상징인 것처럼 '장군휴게소'란 명칭은 내장산단풍객을 어서 오라 어서 오라 손짓하지 못하고 어서가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 아쉽다. 단풍의 관광명소 '내장산단풍휴계소'란 명칭을 재생하여 휴게소명칭으로 삼고 녹두장군을 상징하는 각종 심벌이나 기념품 녹두관련 상품과 식품을 개발하여 녹두장군을 기리며 다시 찾고 싶은 휴계소가 되어 명실공히 녹두장군이 함께하는 관광객들의 사랑받는 휴게소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201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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