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의 변신

2018.12.16 09:05

김학 조회 수:11

배추의 변신
                                                    김학


우리나라 김치는 세계적인 식품이다. 아무리 일본인들이 우리의 김치를 흉내 내어 '기무치'를 만들어 팔더라도 우리의 김치를 따라올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김치에는 조상대대로 이어져온 오랜 역사와 전통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김치도 지역에 따라 재료와 담그는 방법이 다르다. 그러기에 그 맛 역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이렇게 다양한 김치의 맛을 일본의 '기무치'가 어떻게 따라올 수 있으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묵은김치는 점차 들어가고 겉절이가 입맛을 돋울 때다. 봄동이 겉절이로 버무려져 식탁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묵은김치는 묵은김치대로 김치찌개와 묵은김치 고등어조림 등 여러 가지로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묵은김치에 아이디어만 보탠다면 얼마든지 맛좋은 반찬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김치다.
겉절이는 싱싱한 배추를 쪼개어 소금으로 절이지 않고 양념에 버무려 식탁에 올린다. 묵은김치와는 달리 아삭아삭하여 맛깔스럽다. 이 겉절이 김치로 밥 한 그릇 먹기란 식은 죽 먹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가 없으면 숟가락 들기를 거북스러워한다. 비록 요즘 아이들은 김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어른들에겐 김치야말로 필수적인 반찬이다. 김치는 밥뿐만 아니라 라면이나 자장면 그리고 국수 등 면발음식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그만큼 김치의 쓰임새가 다양하다는 뜻이다.
지난해 한때 배추 한 포기에 단군 이래 가장 비싼 값인 '일만 오천 원'까지 오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배추'가 아니라 '금추'라 했고, '김치'가 아니라 '금치'라고도 했었다. 드디어 농민들도 부자가 되겠구나, 여겼더니 그건 중간상인들의 농간 탓이라고 했다. 농민들은 미리 밭떼기로 장사꾼들에게 팔아버린 뒤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서민들의 식탁에서는 아예 김치를 구경할 수도 없었다.
김치가 맛을 제대로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이나 죽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배추의 변신이자 배추의 운명이다. 배추밭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가 절반으로 갈라지면서 두 번째 죽는다. 쪼개진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면서 세 번째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버무려져 범벅이 되면서 네 번째로 죽는다.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져 땅속에 묻히면서 다섯 번째로 죽는다. 이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낸다.
사실 배추는 다섯 번만 죽는 게 아니다. 김치가 되더라도 식탁에 오르려면 칼로 썰어야 하니 그때도 한 번 죽고, 김치찌개가 되려면 잘게 썬 김치를 냄비에 넣고 물을 부은 뒤 불로 끓여야 하니 그때도 또 죽어야 한다. 죽을 때마다 변신을 거듭하여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는 배추의 변신은 참으로 놀랍다. 배추가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도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할 수만 있다면 배추는 죽기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어간 배추들에게 모름지기 경배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수필을 쓰는 수필가라면 모름지기 배추에게서 어떤 개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배추를 수필의 소재라고 생각해 보자. 그 배추는 배추 스스로 변신하는 게 아니라 한국 여인의 지혜와 손맛에 의하여 변신을 거듭한 것이다. 그 한국여인이 바로 수필가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수필가도 역시 같은 소재를 다양하게 변용시켜서 맛깔스런 수필을 빚어 독자의 식탁에 올려야 하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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