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수필 - 기억 속 바다는

2019.01.02 10:33

서경 조회 수:82


 기억 속 바다는.jpg



라이너 쿤체의 시 <두 사람>을 다시 읽는다.  
 
두 사람이 노를 젓는다
한 척의 배로
한 사람은 별을 알고 
한 사람은 폭풍을 안다 
 
한 사람은 별을 통과해
배를 안내하고
한 사람은 폭풍을 통과해
배를 안내한다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기억 속 바다는
언제나 푸르렀으리라 

 
   이 시를 다시 가슴 열어 음미하는 것은 내년부터 맡게 될 <미주한국문인협회> 부회장직을 수락한 부담감 때문이다. 단체 활동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서로 다른 의견으로 상처를 주거나 받게 된다. 

   이 시와 같이, 같은 배를 타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감에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한 사람은 별을 보고 한 사람은 폭풍을 본다. 
   어찌 보면, 별을 보는 사람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폭풍을 보는 사람은 너무 현실적으로 보인다. 별을 보는 사람은 서정적으로 보이고, 폭풍을 보는 사람은 주지적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한 쪽을 드리머로 보거나 또 다른 쪽을 속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빨간 사과를 보고 “넌 왜 맨날 빨개?” 하고 나무랄 수 없는 것과 같이, 노란 바나나더러 “너는 왜 맨날 노래?”하고 혼낼 수 없는 이치다. 

   빨간 사과가 제 색을 못 내고 푸를 때에는 아직 설익었을 때이다. 노란 바나나 역시 푸르둥둥할 때는 노랗게 익어가는 중이다. 설익은 우리도 익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빨간 사과는 빨간 사과요, 노란 바나나는 노란 바나나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가진 고유의 색깔과 후천적 환경이 가미된 성향이 있다. 그것은 서로 이해받고 이해해줘야 할 사항이지 꾸짖음이나 비난을 받아야할 일은 아니다. 꾸짖기 전에, 이해하고 가슴으로 받아주는 미덕이 필요하다. 
   일을 하다 보면, 답답하고 화날 때가 있다. 엄밀히 내면을 보면, 선한 의지보다 자기애에 충실한 경우에 그런 반응이 나올 때가 많다. 
   어릴 때는 아버지로부터 천사라는 별칭도 들었건만, 후천적 환경 탓인지 엄마의 유전인자를 되물림한 탓인지 내 성격도 좀 까칠한 편이다. 불의나 부당한 것에 쉽게 발끈하고, 어지간하면 넘어갈 것도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호불호가 뚜렷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안 해 주면 잘 삐치는 성향도 있다. 왠지, 사랑을 덜 받고 있다는 서운한 느낌 때문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이런 내 약점에 대해 반성하고 조금 더 너그러워지려 애쓴다. 자신의 약점을 알면 인정하고 들면 된다. 우리 모두는 티가 있기 때문에 ‘진짜 옥’이 아니겠는가. 부족함이나 약함이 있기 때문에 스승이 필요하고 타인의 사랑이 필요한 거 아닌가. 

   나 역시 아직도 수양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인간 관계에서는 너그러운 편인데도, 공직자나 리더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엄한 잣대를 대고 본다. 제 모습은 보지 못한 채, 그들에 대한 기대치만 높기 때문이다.

   라이너 쿤체의 <두 사람> 시를 통해 새삼 서로의 다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 사람은 별을 알고, 한 사람은 폭풍을 안다. 나는 성격적으로 별을 아는 사람이다. 폭풍은 누군가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막아주리라 믿는다. 나는 그 사람을 위해 북극성의 도움을 받아 방향 제시를 해 줄 수 있을 게다. 
   때문에, 나는 늘 수필 분과 위원장을 보좌하는 간사 역할을 맡아 왔다. 이번에는 그조차 고사했으나, 일군을 구하기 어려워 하는 회장을 보다 못해 오지랖 넓게 부회장 역을 수락하고 말았다. 가끔은 피하려 해도 이렇듯 막다른 골목에 처할 때가 있다. 

   어쩌랴. 이번 회장은 내가 추천하고 찬조 연설까지 해 준 사람이 아닌가. 난 영원한 협조자로 뒤에서 도우미 역할만 해 주고 싶었으나 그것도 겸손이 아니라 나를 위한 자기애에 불과 했다. 회장 ‘유고시’에는 책임질 일이 생길지 모르나, 나보다 젊고 활기찬 회장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랴. 부회장은 별로 할 일이 없다고 하니, 무겁기만 한 걱정은 일단 내려 놓기로 한다. 
   당연히, 함께 탄 배가 ‘순풍에 돛 단듯이’ 순조롭게 가기를 바라지만, 2년이란 임기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또한, 우리 <미주한국문인협회>는 미 전국구로 회원수 400여 명에 60여 명의 이사님들이 있으며 일년 예산 6만불이 왔다갔다 하는 큰 단체다. 장르도 시, 시조, 수필, 소설, 아동문학 등 5개 분과로 나누어 각자 개성있는 모임으로 운영되고 있다. 협회지인 <미주문학>도 계간지로 연간 네 번 발행하고 매달 월보도 만들어 전국으로 발송해야 한다. 할 일은 많고 다들 시간은 쪼들린다.

   이 과정 속에, 얼마나 많은 말이 오고가고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맞을 정을 남 앞에 서다 보면 맞게 된다. 하지만, 정 맞지 않는 돌덩이가 어찌 다보탑이 되고 석가탑이 될 수 있을까 보냐. 석공은 돌에서 부처도 끄집어 내는 사람. 예술품이 되려면 즐겨 정도 맞을 일이다. 무슨 일을 하려면, 이런 긍정적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설거지를 하다 보면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뿐인가. 여기저기 물도 흘려 옷 젖는 일도 있으리라. 하지만, 설거지를 다 끝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반질반질 빛나는 그릇과 깨끗해진 부엌은 얼마나 흐뭇할 것인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커피잔 온기를 느끼며 향긋한 커피향에 취하고 싶지 않을까. 
   젖은 몸으로 어렵게 건너온 <기억 속 바다는> 푸르다 못해 깊은 에메랄드 빛으로 빛날지도 모른다. 그 푸르른 기억 속 바다를 위해 힘차게 노 저어 가는 거다. 열정적 사랑으로 하면, 힘든 노동도 즐거운 놀이로 환원되는 법.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으니, 즐겁게 노를 저어 가련다. 
   나는 별을 보고 그대는 폭풍을 보라. 그러나 먼 훗날, 우리 뇌리에 남는 건 지긋지긋했던 검은 폭풍이 아니라 윤동주와 알퐁스 도테가 노래한 푸른 별일 터. 아름다운 추억을 사랑하는 여인으로 돌아가는 거다.
   올해는 우리 미주문협이 시퍼런 고등어처럼 펄펄 살아 뛰는 문학 단체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2019년 새 출범을 위하여 오래 전에 마련해 둔 우리들을 위한 축시, 라이너 쿤체의 <두 사람> 마지막 연을 다시 한 번 되뇌이며 조용히 마음의 풍랑을 잠재운다.  
 
            .......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기억속 바다는 
                   언제나 푸르렀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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