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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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왜 진짜 슬플 땐 멀뚱멀뚱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거니?/전희진

 

감자껍질을 벗기다

엄지 손마디 살점까지 벗겼다

반창고를 가지러 가는 사이

부엌에서 거실을 지나 방 둘을 건너 화장실

비상약통에서 반창고 사이즈를 눈어림으로 맞추는 사이

그제서야 피가 흘러내렸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난 듯이

 

엄마가 돌아가셨다는데 울음은 나오지 않고

백화점에 가서 처음으로 맘에 드는 검은색 장례복 정장을 샀다

아프진 않은데 뚝뚝 숨을 끊으며

엄마가 비에 떠내려갈 것 같아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 쭈그려 앉은 엄마가

비에 둥둥 떠내려갈 것 같아

 

계단들의 귀가 아프도록

울음과 울음 사이는 무엇이 있길래

생각나면 우는 어린아이처럼

긴 생각 끝에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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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세계,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