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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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졸음

2019.01.14 16:50

전희진 조회 수:49

졸음

희진

 

감기다 만 실타래처럼 잠은

혀의 뿌리부터 풀어진다

입의 모양이 풀어지고

탁상시계의 굳은 표정도 풀어진다

낮시간 동안 끼리끼리 몰려다니던 얼굴의 근육들이

길어진 밤의 한 모퉁이로 모두 쏟아지는데

늘어나는 오른쪽 뺨이 더욱 길게 늘어나 봄밤의 감촉에 닿고 싶다

땅속으로 꺼져만 가는 눈꺼풀은 어느 잠의 옆구리를 자꾸 찌르고

 

책 안팎으로 너저분하게  엎질러졌던 활자들이

노트와 컵과 모니터 너머 기웃기웃하던 활자들이

두서없이 하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풀어져도

다시 감겨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

토막토막 끊겼던 잠들을 하나로 길게 잇는 것과

두 다리 길게 뻗어 단잠 자는 것

새벽 세시

새벽이 팽팽하게 다시 감긴다

 



-외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