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에 부치는 편지

2019.01.15 22:26

정용진 조회 수:22

낙엽에 부치는 편지

정용진 시인

 

가을은 소리 없는 변화의 모습으로 인간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계절이다.

가슴 속살이 비칠 듯이 맑고 푸른 하늘에서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고, 밤마다 서릿발을 세우는 온화와 냉엄의 이중성을 제시해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봄이 꽃의 향기로 가득 찬 계절인가 하면, 여름은 건강의 미로 넘치는 계절이고, 가을은 성숙의 내음으로 출렁이는 계절이며, 겨울은 적막으로 가득 찬 혹한의 계절이다.

봄과 여름이 동적인 데 비하여 가을과 겨울은 정적인데 그 특징이 있기도 하다.

늦가을 찬비가 내리고 나면 들국화의 향기가 애절하듯 진하게 들녘에 번지고, 풍성하던 가을 벌판을 가슴 벅찬 듯 지키고 있던 허수아비의 형체가 외롭게 드러난다.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단 것이 다하면 쓴 것이 오듯’(興盡悲來 苦盡甘來)이 흐르는 세월의 바퀴는 세울 수가 없고 떠나가는 바람과 물길 그리고 늙음도 막을 길이 없다. 까닭 없는 슬픔이 마음속 깊이 고여 오면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얹어 놓고 벽난로에 불을 지펴도 마음의 꿈이 옛날로 향하기는 마찬가지다. 낙엽이 지는 소리는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소리요, ()와 공()에 도달하는 길이요, 나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일이다. 구차한 장식들을 모두 다 털어버린 자아, 온갖 잡 욕들을 다 쏟아버리고 마음이 가난해진 나, 비 본래적인 자아에서 본래적인 자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과 환희의 계절이 가을이다.

한 해의 주어진 삶을 마무리하는 자연의 세계는 질서가 정연하고 모습이 준엄하고 품행이 단아하다. 완숙을 증거 하는 사과 알의 빛깔은 자신을 키워 준 잎처럼 녹색이거나 서리를 맞아 황금 혹은 진홍색이다. 감 알들이 노을빛으로 타고 단풍잎들이 무지개빛의 아름다움으로 물들어가는 것은 창조주에게 영광을 돌리려는 진실한 마음이요, 정성의 표현 일 것 같다. 이는 또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의 신 앞에 홀로 서는 준엄한 실존임은 물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생명이요, 아름다운 것 또한 생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귀한얼굴을 만나면 기쁨이 솟아나고 반가운 눈물이 흐르고 축배의 노래가 울려 나온다. 생명은 신만이 줄 수 있는 특권이요, 능력이다. 신이 준 자신을 자학의 구렁텅이에 던져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학은 생의 학대요, 포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여행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평소 주위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만남으로 인하여 마음의 문이 열리고 사고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항상 무더위만 계속되는 상하(常夏)의 나라나, 눈만이 덮여 있는 설원의 세계보다는 춘하추동의 사계가 분명한 계절 속에 사는 이들이 시상이 풍부하고 사고와 행동에 절도가 분명한 것도 모두 이 때문일 것이다. 꽃과 잎 그리고 열매로 온몸을 감쌌던 나무들이 벗은 모습으로 찬바람 속에 섰지마는, 그 가슴속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연륜이 아로새겨져 있으며, 그들은 선 채로 엄동설한을 견디면서 다시 한 해의 삶을 약속받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가을은 과즙에 단물이 고이듯 그리운 정과 옛 임의 모습이 떠오르고 벗들이 보고 싶은 계절이다. 단풍이 노을빛으로 물들고 나목가지 위에 걸린 달빛에 우수가 엉겨오면 하던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고 편지통을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보고 싶어진다. 이는 가을이 우수(憂愁)의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고 생각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그 삶이 풍성해진다. 제 나름대로 한 해를 조용히 마무리하는 낙엽들이 뜨락에 가득히 쌓이고 있다. 우리의 삶을 향해 뿌려지는 온갖 사연들의 엽신 인지도 모르겠다. 봄이 육신과 행동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영혼과 사색의 계절이다. 우리들이 이웃과 창조주의 눈길을 두려워하는 것은 가을을 맞이한 나무들이 온갖 물욕의 옷을 모두 벗어 던져버리고 실체를 드러내듯,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나타낼 때의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알알이 벗은 자라야 자신의 살결을 스치는 바람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고,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영혼의 모음(母音)을 분명하게 들을 수 가 있다.

자연이 순수의 모습으로 실존을 드러내듯 우리 인간들도 안일과 무사를 찾아서 방황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세속의 때가 묻은 허영과 가식의 의상과 위선의 탈을 벗어 던지자. 이 순간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묵묵부답하는 저산은 우리들의 모습을 멀리서서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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