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새가슴이라 하나?

2019.01.17 09:24

조형숙 조회 수:30

     아들네서 모이면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4명의 손자들 커가는 이야기, 학교 이야기, 아이들 친구 이야기, 뒷마당에 자라는 포도나무 이야기들이다. 오늘은 새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매일 새를 보면서 자연 공부를 하고 있단다.

     새는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뒷마당으로 나있는 지붕 처마 밑에 둥우리를 만든다. 어디선가 마른 풀과 여린 가지를 구해 와서 한나절이 되기 전에 집을 만들고 조용히 새끼를 품는다. 그리고 얼마 후 새끼가 알에서 나오면 재재거리는 소리가 분주하게 시작된다. 얼마나 시끄럽게 재재거리는지 둥우리를 없애버리고 싶기까지 하다. 그러나 마음이 짠해서 없애지도 못하고 그냥 지켜보기로 한다. 4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아들네는 새의 부모 마음이 남의 일 같지가 않은가 보다. 그런데 새가 영악하다. 사람이 없는 듯 하면 울기 시작한다. 저녁에 마루 불을 끄면 새 울음 소리가 시끄럽다. 다시 불을 켜면 조용해 진다. 새소리를 녹음하려고 불을 끄고 아주 살살 가까이로 가면 울음을 뚝 그치고 잠잠하다. 새는 인기척이나 위협에 민감하다. 겁을 내는 것인가? 아들이 말한다. 그래서 새가슴이라고 하나보다.

    새가슴은 새처럼 복장뼈가 불거진 사람의 가슴을 말한다. 대부분의 정상인은 앞 가슴이 평평한데 가슴 밑 부분이 과도하게 돌출된 것을 말한다. 또 겁이 많거나 도량이 좁은 사람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겁이 날 때 새가슴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돌발적인 일에 긴장하고 무섭고 부들부들 떨릴 때 새가슴처럼 파닥거렸다고 말한다. 중요한 경기나 실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를 비유하기도 한다. 새처럼 겁이 많다는 소리다. 비숍의 NORTH LAKE를 보려면 흙으로 된 외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왼쪽은 산에 붙어 있고 오른쪽은 아주 깊은 낭떠러지다. 그 길을 운전하여 오를 때 혹시 굴러 떨어지면 어쩌나 무섭고 조마조마하던 나는 바로 새가슴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이웃이 있다. 좌회전을 하는데 느닷없이 어떤 차가 달려들어 오른쪽 차문을 들이 받았다.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한 동안 운전을 못하고 다녔다. 그 후로는 차 옆으로 자전거가 지나가거나, 다른 차가 가까이만 와도 놀라서 서 버린다. "당신 완전히 새가슴 되었나봐.." 하면 그 때 너무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새 가슴을 가진 환자를 진료 하는 동안은 나도 새 가슴이다" 라고 하던 어느 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새끼에게 먹이를 넣어주는 어미새는 그냥 물어다만 주는 것이 아니다. 먹을 것을 자신의 입에 넣고 씹어서 새끼들의 주둥이에 골고루 넣어준다. 엄마새가 다 먹이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아빠새가 나타나 똑같이 씹어서 새끼의 주둥이에 골고루 나누어 준다. 그 사이에 엄마새는 또 다른 먹이를 구하러 간다. 새끼들을 먹이고 나면 엄마와 아빠새는 몸이 훌쩍 마르고 기운이 없어져 간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날이 지나면 아기새는 몰라보게 커져있고, 식구들이 다함께 어디론가 가버린다. 날개짓을 가르치려 가는 것일까?  넓은 하늘을 날아가 좀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교대하며 새끼를 키워가는 새의 사랑을 보면서 사람 보다 낫다는 생각을 해본다. 새들이 떠나고 난 빈 둥지를 보며 아들네는 마음이 허전하다. 

    샌디에이고 바닷가 언덕 위에는 줄이라도 맞춘 듯 옆으로 나란히 새들이 앉아 있다. 가까이 가보니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은 새 들의 아파트 단지였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어진 아주 훌륭한 둥지였다. 둥지 안에는 놀랍게도 힘을 다해 주둥이를 벌리고 짹짹이는 새끼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미새는 먹이를 주고 잠시 앉았다가 다시 날아가기를 반복했다. 둥지를 떠나는 갈매기의 뾰족한 부리와 먹이를 향해 부릅 뜬 눈을 보았다. 바다는 먹을 것이 많다. 충혈된 눈과 먹이가 만나 평행이 되면 갈매기는 먹이를 향해 빙빙 돈다. 석양의 빛을 받은 갈매기의 깃털이 들뜨고 바람이 그 사이를 후비고 지나간다. 바람을 거스르며 한 순간에 먹이를 낚아 채어 다시 둥지로 돌아와서 아기들의  주둥이 안으로 조금씩 나누어 먹인다. 그리고는 조용히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품고 앉는다. 새를 바라보며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아들네서 돌아오는 밤하늘에는 별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고속도로를 헤엄치듯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밤은 행복으로 가득하다. 
 ( 월간 한국 수필 2019년 1월호에 실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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