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2019.02.06 09:43

김학 조회 수:53

제비

김 학



제비를 본 게 언제던가? 하도 오래 되어서 제비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제비는 어디로 가서 이렇게 오랜 동안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제비가 보고 싶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다 부지런히 집을 짓는 제비가 보고 싶다. 지지배배 노래를 부르며 튼튼하게 행복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그 제비가 보고 싶다. 빨랫줄에 앉아서 새끼들의 비행훈련을 시키는 부모제비의 모습이 보고 싶다.

내 고향 박사고을 삼계에서 살 때, 따사로운 봄이 오면 제비 부부가 찾아와 집을 짓고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했었다. 마당의 빨랫줄은 그들의 놀이터이자 교육장이요, 마당은 그들의 비행훈련장이었다. 또 아이들은 빨랫줄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제비들의 숫자를 세며 수학공부를 할 수 있었다. 같은 날짐승이지만 참새보다 제비가 더 정다운 식구처럼 가까이 느껴졌었다.

제비는 수의사가 돌봐주지 않아도 새끼를 잘 까고 잘 길렀다. 부모제비에게 새끼의 독립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부모제비는 새끼를 부화시킨 뒤 25일 동안에 새끼를 키우고 독립시켜야 한다. 부모제비는 지혜롭게 새끼들을 조련시켰다. 무작정 얼른 날아가라며 새끼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학교 가기 전 한글을 가르치며 빨리 익히지 못한다고 머리를 쥐어박던 사람과는 달랐다.

부모제비는 일단 둥지가까이에 있는 전깃줄이나 빨랫줄에 앉아서 먹이를 보여주며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끌어냈다. 그때 첫 날갯짓에 실패하여 땅으로 떨어지는 새끼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그 새끼가 다시 날갯짓으로 날아오를 때까지 부모제비는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어린이가 뒤뚱뒤뚱 걷다 가 자빠지면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주는 엄마처럼.

새끼들이 전깃줄까지 날아오르면, 그 다음에는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연습을 시킨다. 부모제비는 먹이를 물고 날다가 새끼들이 보란 듯이 공중에서 잠시 멈춘다. 그 모습을 본 새끼들이 먹이를 받아먹으려고 공중으로 날아가려고 애를 쓴다. 새끼들이 배고파 우는 모습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겠지만, 마음을 모질게 먹고 꾸준히 훈련을 시킨다. 한 사람의 조종사를 양성하는 공군의 훈련 과정도 이와 비슷할 것 같다.

그렇게 며칠 동안 날갯짓 연습을 시키면 새끼들은 한두 마리씩 하늘을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새끼들의 입장에서 볼 때 둥지를 떠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세상으로 나가는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처럼 홀로 살아갈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 부모제비의 임무다. 새끼를 무조건 독립시키려고만 하지 않고, 차분하고 끈질기게 날 때까지 반복훈련을 시킨다.

부모제비는 새끼제비 훈련법을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배운 것일까? 나는 제비가 공군사관학교나 비행학교 출신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부모제비가 자식들을 학원에 보내면서 사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부모제비는 직접 조교가 되어 새끼들을 가르친다. 사람이 부모제비에게 배울 게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농촌에 가도 제비를 만날 수 없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주거문제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농촌의 주택이 기와집이나 초가집이 아니라 슬라브로 바뀌고, 마루에는 창문까지 달아 놓으니 제비는 처마 밑에 집을 지을 수도 없고, 자유로이 드나들 수도 없다. 그리고 둘째로는 먹이 구하기가 어렵다. 농약을 많이 살포하니 아무 곡식이나 자유롭게 먹을 수 없고, 벌레나 곤충들도 귀하기 마련이다. 목숨을 걸고 먹이를 구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러니 그들이 우리의 농촌을 떠난 게 아닐까 싶다.

우리네 농촌이 모두 옛날처럼 목조건물로 집을 짓고, 친환경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야 제비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런데 영악한 사람들이 과연 제비들을 불러들이려고 그렇게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비다리를 고쳐 준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어서 부자가 되게 했다는 흥부전도 믿지 않는 세상이 아니던가?

(2019.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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