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그 극한 직업

2019.02.21 05:59

정남숙 조회 수:4

부모, 그 극한 직업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설 명절을 맞아 큰아들 집으로 갔다. 큰며느리는 내가 오기를 기다려 영화 ‘말모이’를 보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엊그제 작은 아들네 집에서 큰손녀 생일을 맞느라 식구들과 미리 ‘말모이’를 보았기 때문에 큰며느리에게 조금 미안했다두 아들들은 한 가족이든, 두 가족 모두든 모이게 되면 한 번씩은 극장 나들이를 한다. 명절에 다 모일 경우에는 주로 심야영화를 보곤 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두 며느리는, 내가 서울에 올라오면 영화를 보려고 계획한 것이 공교롭게도 똑같이 내가 좋아할 ‘말모이’를 선택했나보다.

 

 큰아들은 아무 말 없이 노트북에 저장되어있던 외국영화를 대형 TV에 접속시켜 영화관 못지않은 영상과 사운드를 보여준다. 내 아들들은 나를 위한 문화생활에 신경을 써주며 가급적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이렇게 몇 편의 영화를 보게 한다. 아들이 영화를 접속시키는 동안 큰 며느리는 간식을 준비했다. 34일 머무는 동안 큰며느리는 같은 종류의 음식을 두 번 먹게 하지 않는다. 아침저녁 내가 입맛 없어 할까봐 끼니마다 다른 음식을 만들어준다. 아침은 부담 없이 드시라며 간단한 영양식 주먹밥, 고구마, 센드위치에 우유를 내놓는다. 저녁은 전복죽, 매생이 굴죽, 닭 가슴살 죽 등, 죽 퍼레이드를 펼친다. 점심은 소고기 보쌈에 오리훈제, 아보카드정식으로 대령한다. 음식뿐 아니라 예쁜 그릇도 요리에 따라 다양하다. 어느 고급 양식집에서도 접해보지 못할 최고급 VIP 느낌을 맛보게 한다.  

 

 설날 아침. 작은 며느리가 떡국을 끓였다. 지난 해, 두 아들이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시기에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거리가 멀고 서로 생활이 바쁜 탓에 피차 집들이를 못하고, 추석에는 큰아들네 집에서 지냈으니, 이번 설은 작은아들이 준비한다고 한다. 연년생 두 아들과 연년생 두 며느리의, 당기고 밀어주는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자타가 공인하듯 자식 복을 타고난 것 같다. 떡국상을 물리고 예배를 마친 뒤, 나는 지금까지와 같이 미국 유학 간 손자의 세뱃돈까지 챙겼다. 나는 며느리를 처음 맞았을 때는 아들은 제쳐놓고 며느리들에게만 세뱃돈을 주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아들들에게 빈손으로 대하기가 민망스러웠다. 주머니 돈이 쌈지 돈이니 상관없지만, 아들에게도 작은 금액이라도 각각 세뱃돈을 준비했다. 놀란 듯 웃으며 받아든 아들들은 곧장 자기마누라에게 갖다 바쳤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즐거움을 맛보는 나만의 방식이다.

 

  언제나처럼 예배까지 마쳤으니 이제 며느리들을 친정으로 보내는 시간이다. 요즈음엔 남녀평등이라 하여, 명절에 시댁먼저가 대세였던 것이 요즘엔 처가로 먼저 가도 흉이 되지 않는 풍조가 되었지만, 우리 집의 선택에 따라주는 며느리들이 고마워 서둘러 친정집으로 보낸다. 두 아들이 떠나면 나 홀로 남아 있을 것을 염려하는 아들들에게, 큰언니 집으로 갈 것을 미리 말해두었다. 먼저 출발하라 재촉해도 큰아들은 도리어 나를 채근한다. 빨리 나들이 차림을 서둘렀다. 40여 분을 돌아가야 할 다른 방향임에도, 큰이모 집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 갈 심산이다. 부지런히 챙기고 따라나섰다. 3년여 만에 가는 언니 집이다. 재작년 형부가 설암수술을 받아 병수발하느라 힘들었을 언니가 얼마나 더 늙었을까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언니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되었다. 아침상이 거하게 차려져 있다. 딸 셋에 아들하나를 둔 언니는, 외아들을 너무 조동으로 키우고 있었다. 맞벌이하는 아들내외를 위해 손자를 돌보고 있다. 전철을 갈아타며 한 시간여를 가야하는 먼 곳을, 주일날 저녁에 갔다가 금요일 밤에 집으로 오는, 입주 유모노릇을 4년 넘게 하고 있는 중이다. 결혼 후 처음으로 조카며느리의 얼굴을 보았다. 설날 아침 아닌 조금 전, 도착하여 시어미가 차려준 아침상을 대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한 뒤에도 30여 분동안 식사를 한 뒤, 이 며느리는 살짝 일어나 소파에 그대로 앉는다. 금년 80세가 되는, 허리가 90도로 굽은 시어미와 막내시누이가 상을 치워도 본체만체 TV만 시청하고 있다. 가끔 내 과일 상에 손을 내밀어 낼름 낼름 집어먹고만 있다. 이럴 수가! 내 속이 끓었다. 내가 눈총을 주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방 곁에 서 있기라도 하라'며 억지로 일어나게 했다. 내 아들 며느리와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내 언니는 잘 나가는 부잣집 맏딸이다.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귀하게 자란 사람이다. 우리 집이 어려워지자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결혼도 일찍 시킨 언니다. 그러나 결혼 후 농촌에서 살림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남편과, 5년여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속을 끓이다가 뒤늦게 아들딸 넷을 두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맨 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안 해본 일이 없다. 뒤늦게 구멍가게 같은 마트를 운영하며, 여섯 식구 생활과 아이들의 교육을 감당하며 힘겹게 살아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고생은 갑절로 늘었지만 아이들은 이런 엄마의 고통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이들 셋을 결혼시켰지만 아직도 막내딸은 미혼이다. 몇 년 전, 언니 집에 들렀다. 큰딸아이는 결혼하여 친정에서 같이 살며, 위로 아들하나에 딸 쌍둥이의 양육을 엄마와 친정동생들 손에 맡겨 자라게 했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제 살림을 하면서도 아이들의 하교를 외가로 하게 했다.

 

 굽은 허리로 가게와 집을 드나들며 손자들을 챙기는 언니가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손자손녀들만이라도 오지 않으면 일손을 덜 것 같았다. 큰조카딸에게 아이들을 친정에 보내지 말라고 당부 했더니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부모 아니냐?”고 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우리아이들은 내가 언니 집에 갈 때마다 아무런 참견을 하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나 그 집 며느리의 행동에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또 관여를 하고 말았다. 우리 아이들에게 하룻밤 자고 가겠다고 했지만 숨이 막혀 도저히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저녁식사 전. 둘째딸이 들어왔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식사 후 요즘 인기리에 상영되는 ‘극한직업’이란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문을 열었다. 딸들은 극장예매를 위해 시간과 상영관을 이리저리 한참 찾는데도, 아들 내외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네 살짜리 손자는 내가 머무는 7~8시간 동안에도 쉬지 않고 할머니한테 매달려 들볶고 있다. 아홉시 반 예매시간이 다가왔다. 아들에게 언제 가려느냐? 우리 극장까지 카플 하자하니 겉옷을 입고 일어선다. 그러나 마누라가 꿈쩍하지 않고 앉아있다. TV연속극 봐야 한단다. 이 아들은 제 마누라 연속극 보는 동안 우리를 데려다 주고 와도 좋을 텐데, 그대로 주저앉으며 잘 다녀오시라 한다. 극장 요금이나 간식조차 챙겨줄 생각도 않는다. 둘째 조카딸과 나는 언니를 양옆에 끼고 길에 나와 택시를 타고 극장엘 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속이 상했다. 왜 아이들에게 대접받는 부모가 되지 못하고 이렇게 키웠는지, 그러나 내가 속상해 하는 것을 언니도 알고 있을 것 같아 영화를 보면서 필요 이상으로 큰 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언니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어서다.

 

  언니 곁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은 언니와 같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동대문디지털프라자를 돌아볼 예정이었다. 도저히 언니와의 동행은 불가능했다. 계획을 포기한 나를 아들이 데리러 왔다. 영화 ‘극한직업’의 마약반 형사들처럼, 평생 동안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헌신한 내 언니의 실적도 바닥인 것 같다. 둘째딸과 막내딸이 가끔 거리구경도 시켜주고, 영화도 한 번 보았노라 좋아하던 내 언니다. 마약조직과 악전고투 끝에 승리를 얻고 진급하여 축하를 받으며, 무대에 당당히 서 있는 마약팀 형사들같이 언니도 엄마라는 ‘극한직업’을 완료했으니 이제부터는 대접받고 축하받는 존재로 살았으면 좋겠다.

                                                    (2019.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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