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흉보기

2019.02.22 05:48

김창임 조회 수:4

칭찬과 흉보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우리 친정 부모님은 평소 말씀이 없고, 잔일은 모른 체하며 항상 겸손하고 성실하게 사셨다. 그리고 우리 시어머니는 아이를 두지 못하는 집에 시집을 오시어 아이를 잘 낳고 건강하며 용모가 괜찮은 편이셨다. 머리가 영리하고 인정이 많으며 음악성이 좋아 흥이 많으셨다. 그러나 성질이 아주 급하고 참을성이 너무 없어 어디서 들은 말은 하나도 남김없이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듣는 사람의 기분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마구 말씀하셨다. 그분이 오시면 나는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고 그것으로 인해 불면증과 소화불량이 생겼다. 말로는 건강해라건강해라 하셨다. 병을 주면서 건강하라니, 이해가 안 되었다. 내가 한 말이 어떻게 어느 곳으로 가는지 아무 생각 없이 사셨다. 그러니 그분은 건강이 나쁠 리 없다. 할 말만 하고 안할 말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된다고 친정에서는 배웠는데…. 그래서 나는 무슨 말을 들어도 안 들은 척 안 본 척 살았다. 어디서 들은 말은 듣고 말아버린다. 그래서 나로 인해서 싸울 일이 없었다. 그야말로 벙어리 3년 봉사 3년 귀머거리 3년을 살았다. 친정에서 이미 몸에 배어 있어서 그렇게 살았다.

결혼하여 처음 겨울방학이 돌아왔다. 신혼이어서 두 부부가 오붓하게 살고 싶은데 겨울방학을 시작하자마자 그 멀리서 우리부부와 아들을 데리러 왔다. ‘조금만이라도 지내다 갈 테니 먼저 가시면 좋겠어요.’라고 말을 해야 되는데 남편이 그 말 한마디를 못한 채 무서운 시어머니를 따라갔다. 그 집에는 작은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가서 보니까 그 두 고부간은 한 부엌에서 살면서 따로따로 밥을 해먹는 눈치였다. 참 민망한 모습이었다. 저녁이 되니까 아침 식사를 준비할 솔가지 한 웅큼을 부엌에 갖다 놓으셨다.

시어머니는 방에 앉으시더니 이야기보따리를 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작은며느리 뒷담화와 당신 큰딸 자랑을 하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자랑과 뒷담화를 실컷 하고서 당신도 겸연쩍어 하시면서

“네가 나를 입에 파리 붙을 새 없겠다.”고 할 것 같다. 당신이 말하고 당신이 자기 흠을 말해도 나는 그런 말씀을 하면 듣기만 했다.

나는 너무 오랜 동안 작은며느리 뒷담화를 하는 시어머니에게 듣기 싫다고 했더니

“듣기 싫으냐?”

“예!”

그랬더니 그때서야 흉보는 소리가 그쳤다. 나는 원래 남의 뒷담화를 매우 듣기 싫어한다. 분명히 내가 없는 데서는 큰며느리인 나의 흉을 보고도 남을 것 같아서다. 그러자 나는 동서가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막내시동생의 학비를 주고 있다고 나는 말한 적이 없었는데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형님, 그러면 저희는 학용품값이라도 보태야죠.”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그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아침이 되자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 아궁이의 재를 담아서 잿간에다 버리고, 가마솥에 물을 붓고 솔가지로 불을 지피고 있으면 연기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때서야 동서가 나왔다.

우리 동서는 처음에 내가 초등학교 교사라고 하니까 약간 부담을 갖는 눈치였다. 그런데 일찍 일어나 재를 담고 불을 지피고 있는 내가 달리 보였는지 나를 매우 따랐다. 그 고마운 동서가 얼마 못가서 난치병으로 고생만 하다가 37세인 젊은 나이에 어린 3남매를 남기고 고인이 되었다. 동서가 마음에 들었는데 너무 너무 슬펐다. 그러자 미운 며느리가 죽으니까 동네가 떠나가라고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우는 시어머니가 이해가 안 되었다. 그토록 다른 모습을 보고 ‘인간 속에는 감추어진 선과 악이 가득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어느 날이었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는 큰 시누이 편지가 왔다. 우리부부더러 자기 남동생과 여동생을 자기와 힘을 합쳐 서울에서 대학교까지 보내자는 것이었다. 나보다 일곱 살이나 적은 시누이가 그런 말을 하니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여동생이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가르치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고등학교까지는 가르쳐야지 하고 납부금을 기일 내에 드렸다. 때로는 내가 먹을 약값도 없이 다 드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임신 중에 입덧이 없어서 음식을 잘 먹으니 건강이 오히려 좋았다. 그러나 산후에는 음식은 그런대로 먹는데 아이가 노루잠을 자니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쉽게 회복이 안 된다. 핏기가 없는 모습으로 생활하자니 많이 힘들었다. 어느 날 나는 산후라서 얼굴이 창백한 모습으로 채소가게에 갔었다. 그 집 주인의 성姓이 고 씨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나더러 “선생님! 그 창백한 얼굴로 어떻게 학교 나가려고 하십니까?” 하고 걱정을 해주셨다. “시어머니께서 시동생 납부금을 낸다고 하니 돈을 모두 드려버렸어요.” 그랬더니 “우리가 빌려 줄 테니 어서 한약을 한 제 지어먹고 직장에 가세요.” 집에 있는 식구들은 아무 걱정도 안하는데 이웃집 가게 주인이 걱정을 해주시니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힘들게 시동생 대학까지 가르치고 나니까 이제는 자기와 함께 돈을 내어 어머니 일본여행을 보내드리자고 했다. 당연히 내가 맡아서 여행을 보내드려야 하지만, 교육비로 그렇게나 많이 썼는데 무슨 여행까지 보내자고 하는가? 교육비를 보태지 않은 다른 자녀들이 보내드리면 되는데, 항상 돈을 다른 K교사에게서 빌려 쓰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 힘들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여행을 보내드렸다. 몇 달이 지나니 어머니 수의를 자기와 돈을 합쳐 고급 국산 삼베로 해놓자고 하니 기분이 또 언짢았다. 그래서 우리는 또 울며 겨자먹기로 수의를 해놓고 30년이나 보관해야 했었다.

시어머니는 일요일에는 자기 영감님 술만 사오라고 하시니 2주일마다 장성에서 정읍시 입암면 접지마을까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주인댁 아주머니가 우리 빨래를 해주시니 창피하여 낯을 들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생활하는데 시아버지는 분가를 시키지 못하게 했는데 당신이 분가를 하게 했다면서 생색을 내곤 했다. 분가라고 해야 내가 살던 자취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는데…. 막내 서방님을 제외하고 두 형제는 어머니를 닮아 어디서 들은 말만 듣고서 그것으로만 사람을 판단해버린다. 방안에서 하는 시어머니 말과 부엌에서 일하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듣고서 중심을 가지고 말을 해야 되는데, 두 아들은 자기 어머니 말만 듣고 언짢은 이야기만 하니 기가 막혔다. 마음이 여린 나도 한 번은 따져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큰소리로 “양쪽 말을 들어보고 말을 해야지 그렇게 어머니 말씀만 듣고서 이야기하면 어찌합니까?”

그러면서 사나이는 몸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바른말을 의롭게 해야 한다고 했다. 평소에 순하던 형수가 이렇게 크게 말하니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40년을 살았지만 쓴 소리를 하면 화목이 깨질까봐 참다가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쓴 소리를 해버렸다. 그 다음 날은 마음이 편치 않아서 시동생에게

시동생이 지금 새로 만나고 있는 여자 있다고 형님이 말을 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분 데리고 장성 레저가든에 가서 물고기 탕을 먹고 장성댐에서 놀다가 옵시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너무 얌전치 못해서 벌써 헤어졌단다. 그러면서 다음에 날씨가 따뜻해지고 꽃이 만발해지면 그 때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동서를 챙기려는 나를 고마워하는 듯했다.


자기가 본 사실을 있는 그대로 흉보거나 떠벌리는 행위는 사실행위이며, 똑같은 사실을 알고서도 상대방의 흉, 허물, 실수 등을 덮어주거나 감싸주는 일은 진실행위에 속한다. 즉 진실은 사실에다가 사랑을 보탠 것이라고 J목사가 말했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서 노아의 둘째아들 함이 아버지의 나체를 보고 다른 형제들에게 흉을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안 노아는 저주를 내렸다. ‘둘째아들, 너는 큰아들과 셋째아들의 가장 천한 종이 되라.’ 고 하고 그 대신 자기 허물을 덮어준 두 아들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내려준다. (창세: 9장 18절- 29절)

남의 허물일랑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은 물론 남의 잘한 일 좋은 일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자세와 습관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이다.

(2019. 2. 3.)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7 개 물림 피해 이윤상 2019.02.26 4
486 황금인간의 당, 카자흐스탄 정남숙 2019.02.26 5
485 조개나물 꽃 백승훈 2019.02.26 6
484 꿈을 크게 꾸며 살자 김창임 2019.02.25 6
483 고로쇠야유회 곽창선 2019.02.24 6
482 좋은 관계 이우철 2019.02.24 5
481 한반도는 한반도인끼리 이종희 2019.02.24 5
480 고추장 담그던 날 이진숙 2019.02.23 8
479 잃어버린 고향, 안골 김학철 2019.02.23 4
478 루앙프라방 김효순 2019.02.23 2
477 휴대폰을 든 아내 이종희 2019.02.22 3
» 칭찬과 흉보기 김창임 2019.02.22 4
475 자화상 이진숙 2019.02.22 5
474 부모, 그 극한 직업 정남숙 2019.02.21 4
473 왜 헬 조선인가 [1] 김길남 2019.02.20 7
472 비엔티엔 김효순 2019.02.20 3
471 나 어"떡해 이진숙 2019.02.20 5
470 움직이는 미술관 한성덕 2019.02.20 3
469 제17회 대한민국 환경문화(문학)대상 및 19년 국제 가이아(문학) 대상 작품 공모 두루미 2019.02.19 9
468 프리지어 백승훈 2019.02.1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