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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거짓말이 아름다울때

2018.10.13 13:02

라만섭 조회 수:25

거짓말이 아름다울 때

 

사실을 허위로 꾸며서 말하면 거짓말이 된다. 처음부터 남을 해칠 의도를 가진 악의적인 거짓말은 죄악이며 그 대가는 비싸다. 그 때문에 평생 그림자에 쫓기며 장래를 망친 사람의 경우도 본다. 악의 없는 가벼운 거짓말(White Lie)도 어쩌다 경험하게 되지만, 대부분의 거짓말은 본질상 정당화되지 못한다.

 

하지만 거짓말에도 예외(?)가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까. 진한 감동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거짓말도 있다. 옛날 한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쪼들리는 가난 속에서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행복한 노부부가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아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아내의 병세는 점점 더해 가기만 했다. 아내의 병을 고쳐 보려고 남편은 백방으로 애쓰며 뛰어다녔으나 백약이 무효 하였다. 하루는 남편이 산에서 캐온 산삼이라며 아내에게 건넸다. 그 것을 통째로 생으로 꼭꼭 씹어 넘기는 아내의 모습을 남편은 눈물로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 후로 아내의 병세는 점차로 호전되어 건강을 되찾게 됐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양심의 가책으로 고민하던 남편은 아내에게 이를 털어놓고 용서를 빌었다. “내가 당신에게 큰 죄를 지었소. 사실은 보통의 인삼 뿌리를 산삼이라고 속이고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오. 부디 용서해 주구려.” 남편의 이 말에 아내는 여보. 걱정 말아요. 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요. 내가 먹은 것은 인삼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 이었으니까요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애절한 마음이 담긴 갸룩한 거짓말이 사랑으로 승화하여 병을 이겨내는 기적을 낳은 것이다.

 

오래전 나에게는 현주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다. 그 애의 삶은 매우 짧았다. 애니의 뒤를 따라 속절없이 가고 말았으니 말이다. 애니는 현주의 인형 이름이다. 여기서 굳이 애니를 들먹이는 이유는 현주와의 관계 때문이다. 애니는 한낱 인형에 불과 하지만, 애지중지 현주의 사랑을 한 몸에 지닌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자나 깨나 둘은 한 마음 한 몸 이었으며, 애니 없는 현주의 삶이란 상상 할 수도 없었다. 그런 애니가 갑자기 현주 곁에서 사라진 것이다. 선천적 병약아로 태어난 현주는 수시로 병원에 들락거리며 살아야 했다. 그때마다 며칠씩 병원에 머무는 일이 다반사 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병원에서 애니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1962년 세 번째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갑자기 호흡 곤란으로 입원한 현주는 열흘 만에 생을 마감 하였다. 애니 대신 이불을 꼭 껴안은 자세로. 애니가 떠난지 넉 달 만의 일이다. 이 넉 달 동안에 현주와 나의 아내 사이에 오간 말이, 이 글의 화두가 될 줄은 생각치도 못한 일이다.

 

식음을 전폐하다 시피 한 현주는, 매일 엄마에게 애니의 행방을 추궁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엄마! 왜 애니가 사라졌지?” “애니는 어디로 가서 지금 누구하고 있지?” 대답을 못하고 궁지에 몰린 아내는 나와 상의 끝에 한 아이디어를 자아냈다. “애니는 사정이 있어 우리 곁을 떠나긴 하였으나, 하늘로 올라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밤마다 현주를 내려다 보고 있단다밤하늘을 쳐다보며 애니를 찾겠다는 현주의 기대와 희망은, 시간이 가면서 점차 실망으로 바뀌어 가는 듯하였다. 아내와 나는 이런 현주의 모습을, 고문을 이겨내는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주야! 애니의 별은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한 번의 거짓말은 또 다른 가짓말을 낳았다. 그리고 그 말은 나의 가슴속에 메아리를 일으켰다.

 

밤하늘을 수놓은 저 수많은 별들은 과연 어떤 연유로 생겨났을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몇몇 원소(수소,탄소,산소,질소,인등)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장기와 신경세포도 원소가 모여서 형성된 것이다. 사실인즉 원소는 우주 공간에서 별들이 생성 소멸과정을 반복하는 가운데 생기는 먼지(Stardust)에서 나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주 공간의 삼라만상(인간을 포함)은 모두가 별들의 분신으로, 죽고 나면 먼지의 형태를 거쳐 다시 별이 되는 대순환의 굴레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차가지로 별도 영원한 존재가 아니며, 수명이 다하면 죽는 운명을 타고났다. 죽음이 임박하면 별들은 엄청난 열과 압력아래 폭발하게 되는데, 이때 흐트러진 물질들이 먼지가 돼서 우주공간을 떠 돌아 다닌다는 것이다. 이렇듯 과학은 자연을 이루는 모든 물질의 기원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다. ‘인간은 별들의 아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언젠가는 종말을 맞을 태양과 같은 별도 수십억 년 후에는 지구를 포함한 모든 것을 흡수해 버린 다음 긴 세월에 걸쳐 별 먼지로 변하는 반복된 순환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다. 어떤 행성에는 지구처럼 생명체가 진화해 가는 극적인 일도 생겨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 자신의 존재가 바로 그 증거물이라 하겠다. 별에서 온 물질을 통해 생명을 얻어 살다가 죽고 나면 또 다른 생명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자칫 공상속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우주 공간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는 객관적 현상에 불과 하다.

누구나 삶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한번쯤은 해볼 것이다. 우리 자신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케 해주는 주체가 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새로운 존재 의미를 부여해 준다. 현대 과학은 이전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먼지에서 왔다가 먼지로 돌아갈 운명을 타고 난 우리에게 주어진 기간은, 서로 사랑하기에도 모자라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머지않아 나도 현주처럼 먼지에서 별이 되어 우주를 바라보게 되리라.

 

오래전에 현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려고 한 말이, 한낱 헛된 거짓말에 그치지이 않았다는 사실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거짓말도, 그것이 정녕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면, 아름다울 수 있게 마련인가 보다.

 

 

 

 

 

 

 

20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