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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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황금비

2018.10.20 13:11

라만섭 조회 수:24

황금비

 

내가 사는 동네 한가운데에 황금비 거리(Golden Rain Road)’라는 이름의 길이 있다. 정문 입구에서 똑바로 뚫린 이 길은 동네 중앙을 관통하는 큰길이다. 또 그곳을 관리하는 재단의 정식 명칭도 황금비 재단(Golden Rain Foundation)’이다. 주민들은 모두가 황금비 재단이 발행한 주식을 소유한 주주들이다. 그 곳에 들어가 사는지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과문의 탓인지 나에게는 좀 생소한 그 이름의 연유를 뒤늦게 알아보았다.

 

영어로 ‘Golden Rain tree’라고 하는 이름의 나무가 있다. 우리 한국말로 옮기면 황금비 나무가 될 것이다. 원산지는 동아시아(중국 또는 한국)로 알려져 있는데, 어쩌다가 미국에 와서 새 이름을 얻게 된 나무이다. 한참 때에는 노란색의 꽃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마치 하늘에서 황금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뉴 올리언즈(New Orleans)에서 처음 이 나무에 매료된 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1960년대 초반 씰 비치에 노인 은퇴마을(Leisure World)을 건설하면서 마을의 심볼로 삼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캘리포니아의 토양과 기후에 잘 적응해 나갈지 여부를 시험하고자, 그는 치노(Chino)지역의 한 너서리를 통해 무려 27백 개에 달하는 이 나무를 주문하여 사전 시험(Pilot Project)을 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그중에서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가는 나무는 고작 세 구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로부터 30년쯤 후에(1995) 20구루의 나무가 추가로 은퇴 마을로 반입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이 나무를 모감주나무라고 부른다. 주로 바닷가에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고 하는데, 완도나 태안의 모감주나무 군락은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압록강 변에도 모감주나무가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희귀종으로 꼽히는 이 나무의 꽃은 아름답고 열매는 한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그 씨앗은 돌처럼 단단하고 윤기가 나서 스님들이 쓰는 염주에 널리 애용되고 있어 속칭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주로 해안선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는데,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물고기 떼를 끌어 들이는데 도움을 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기념으로, 남쪽에서 가져간 모감주나무를 평양 백하원 앞뜰에 심었다는 후문이다. 황금빛 꽃이 피고 열매가 많이 열려, 번영을 상징한다는 이 나무가 탈 없이 잘 자라서 훗날 통일을 기념하는 황금비를 내려주기를 기원한다. 녹음이 짙어가는 7월경이면 줄줄이 매달린 화려한 노란 황금빛으로 장식한 모감주나무의 꽃은, 마치 왕관에 꽂힌 깃털처럼 우아한 모습이다. 예로부터 모감주나무는 귀한 식물로 여겨져 묘지 둘레에 많이 심어졌다고 한다. 꽃이 화려하고 피어있는 기간이 길어 가끔 공원 등에서도 눈에 뜨인다. 가을이 되면 노랗게 단풍으로 물든 열매를 자랑 한다.

 

무척이나 무더웠던 어느 여름 날 오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던 나는 어느덧 비몽사몽간을 헤매게 되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것은 말로만 듣던 황금비 이었다. 노란색갈의 비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무릉도원 같은 선경에 황금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의 온 천지가 황금으로 도배되는 가운데, 황금 빗물로 목욕을 하던 신선들이 온몸에 달라붙은 황금 때문에 석고처럼 꼼짝 달싹 못한 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하나 둘씩 땅위에 쓰러지기도 하였다. 덜컥 겁을 집어 먹은 탓인지 나는 숨 쉬기 조차 어려웠다. 몸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큰일이 났다 대재앙이 찾아 왔다고 소리치려 했으나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을 절망 속에서 절규하다 깨어나 보니 꿈이었다. 가슴팍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내면서 황금비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놓였다.


꿈에서 본 황금비 내리는 장면은 참으로 신비로운 것 이었다. 그 광경은, 동시에, 공포심을 심어 주기에 충분한 것이기도 하였다. 아마도 그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 현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는 생명의 움직임이 없었다. 땅위의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빗물로 내려와 대지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자연의 모습이 아니었다. 비록 꿈속의 일이었지만, 그것은 자연이 내려 주는 빗물만이 만물의 생명 줄임을 깨우쳐주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모감주나무의 꽃이 황금비를 연상케 해주고, 그 나무의 영어 이름이 황금비 나무라는 사실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상상속의 희소가치를 지닌 황금비는, 그자체로 시적 표현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황금비를 그려본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상상의 날개는, 무지개 너머 흰 구름 사이로 점점 멀어져 간다.

 

 

 

 

20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