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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카나리아의 패자부활전

2020.08.08 12:47

라만섭 조회 수:6

카나리아의 패자 부활전

 

핀랜드의 헬싱키에 10월이 오면 이색적인 행사가 열린다. 매년 1013일에 개최되는 실패의 날기념행사가 그것이다. 타인의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이에서 얻은 교훈을 발판삼아 성공을 모색해 나가자는 취지이다. 낙오로 이어지는 실패를 거부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실패의 경험에서 재기를 위한 공동의 가치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실패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등장할 만큼 실패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례도 숱하게 많다. 실패의 경험으로 부터 학문적 가치를 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패자 부활의 사회적 당위성을 보게 된다.

 

패자가 화려하게 부활하는 모습을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서 발견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카나리아(Canary)로 우리에게 알려진 새(조류)에 관한 이야기 이다. 옛날 중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적이 있는 카나리아에 관한 노래가사가 떠오른다. ‘노래를 잊어 버린 카나리아는 뒷동산 언덕위에 내다 버릴까....아서라! 그것은 안 될 말이다. 노래를 잊어 버린 카나리아는 상아로 지은 배에 은()노를 저어, 달 밝은 밤 바다위에 띄어 놓으면 잊어버린 노래가 떠오르리라....’

 

선황색의 예쁜 모습을 한 카나리아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소유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흔히 암컷일 것으로 추정되기 쉽지만, 카나리아의 세계에서는 반대로 수컷의 전유물이라고 한다. 높은 옥타브의 목소리 때문에 소프라노가수라는 별명도 얻고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암수가 다 모인 자리에서 노래자랑 대회가 열리는데, 이 자리는 바로 노래 잘 부르는 수컷들이, 암컷의 환심을 얻고 짝짓기에 성공하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 터가 된다는 사실이 조류 학자들의 관찰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노래자랑 연례행사가 끝난 후에,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은 경쟁에서 석패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패자들의 행태에 있었다. 1978년 새들의 노래 경연을 관람한 일단의 조류학자들이 고배를 마신 한 수컷을 추적한 결과 다음과 같은 시실을 발견하였다. 그가 자기보다 먼저 결혼에 성공한 선배를 찾아 사사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재수 삼수를 거치는 실패한 수컷이, 믿거나 말거나,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이듬해 봄에 열리는 대회에 재도전할 목표를 세우고 맹연습에 열중하는 것이다. 성공의 첩경은 동물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음을 본다.

 

얼마 전의 일이다. 아프리카 대륙에 가까운 대서양상에 섬 6개로 형성된 카나리 제도(Canary Islands, Spain)가 있는데, 카나리아()와 같은 이름이어서 필자는 둘 사이에 인연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자료 수집에 나선 일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체불명의 무책임한 정보와 추측에 근거한 기사는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우연의 일치로 이름만 같을 뿐임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섬의 이름인 카나리도 원래 라틴어의 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카나리아의 문화에서 패자 부활의 사회성을 본다. 실패가 낙오로 이어지는 것은 한낱 개인의 슬픈 일에 그치는 것일 뿐 아니라, 거기에서 파생되는 손실이 결국 사회에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실패의 개연성을 줄이고 그 후유증을 완화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안전망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실패의 날 기념행사가 시사하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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