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애의 시세계

2014.03.12 10:32

백남규 조회 수:242 추천:6

구자애의 시세계-이민자의 정체성 찿기




                                                                        백 남규




근래에 많은 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의 풍년속에 시다운 시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신선한 감동과 충격을 주는 시를 만나기 힘든 것은 시인들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식이나 깨달음에 새로움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를 전달수단의 하나라고 본다면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시인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깨달음일 것이다.




1964년 충청도에서 태어난 구자애 시인은 2003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2002년,<문학산책>신인상을 수상했고 이주하던 해에 미주한국일보문예공모전에 ‘하모니카’로 당선 미주문단에 데뷔했다. 여기서는 미주문단의 초기시를 중심으로 그녀의 시의 내용을 분석해보겠다.




L.A 모라토리움 콘서트장

트로트와 팝케스트라가 만났다.

영어가 서툰 트로트 가수와

한국어가 서툰 팝케스트라의 젊은 가수

공연을 지켜보는 내내

나는 오리무중이다.




가락과 음률 사이

장구와 드럼 사이

거문고와 바이얼린 사이

한복과 푹 파인 드레스 사이

어디에도 스며들지 못하고

나는 떠돌고 있는 중이다.




오색찬란한 조명 지나

잠깐 막을 내리는 사이

참다못한 포유류 한 마리

어둠 타고

푸드덕,뛰쳐 나온다.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 지금

빛과 어둠이 뭉쳐진 시간 속에서

천장에 매달리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이방인 하나

뒤뚱뒤뚱 횡단보도를 날고 있다.

                              <박쥐> 전문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와 마음을 통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믿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가장 먼 사람이었음을 발견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인가? 나 자신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내속의 내가 너무 많아서 어느 것이 진정한 자신인지 안개속인 사람이 많다. 나의 나됨 찿기의 방법 하나가 글쓰기이다. 정체모를 세상과 마주 선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바뀌며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의 삶을 꾸려 나가야 하는 사람(시의 화자)은 필연적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작가들은 이런 자기 운명을 포함하여 자아을 둘러싸고 있는 남과 세계를 유심히 살피는 사람이다. 그들이 남과 세상을 살피는 이유는 기실 처절하다. 진정한 자아가 누구인지를 그들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이 시의 화자 ‘나’는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다.  콘서트에 가보니 영어도 한국어도 서투른 한국인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 동일시되는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이쪽과 저쪽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나’는 박쥐가 되어 거리를 헤맨다. 박쥐가 진정한 자아가 아님은 불문가지. 나는 이제 할머니가 되어 올림픽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




올림픽 사거리

10시 15분 방향으로

할머니 한 분 절름절름 걸어가신다.

힘겨운 시간들이 한 쪽 다리를 갉아 먹었는지

관절 어느 부분이 어긋난 것인지

하얀 고무신이 바닥에 닿을때마다

길이 출렁 휘어진다.

부러지지 않으려 맘껏 휘어져 온 生

남은 나날 지팡이 하나로 거뜬한 듯

계속해서 활 시위를 다잡는 할머니

미처 쏘아 올리지 못한 활

이역만리까지 가지고 온 이유를

아직도 구부러질 허리춤에 매달고

아슬아슬,한 발씩 디디며 과녁을 겨누고 있다.




올림픽 행길이 짱짱하게 휘어진다.

            

                              -나의 화살은 아직도 살아 있다.-전문




범상히 보아 넘길 수 있는 할머니의 걷는 모습이 시인의 눈으로 보면 고달픈 인생살이에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충격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시는 일상언어를 재료로 하며 일상언어가 사용하는 문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시의 언어와 일상언어는 근본적으로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시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다의적인 언어이며 표면적인 의미와 시적 의미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신비평,러시아 형식주의) 시는 의미론적으로 간접적인 전달방식을 가진다. 이것을 통해 저것을 전달한다. 그러나 시의 모든 언어가 애매하거나 비유적으로 쓰인 것은 아니다. 일차적으로 표면적인 의미를 해석하고 축어적으로 해석이 안 되는 시어의 의미를 판독해야한다. 위 시는 형식상으로 2연으로 볼 수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전3연의 시이다. 7행(길이 출렁 휘어진다.)까지는 지시적 의미 이상의 숨겨진 시적 의미를 가진 단어는 ‘하얀 고무신’하나이다. 실제로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할머니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에서 일부러 가죽구두 대신 고무신,그것도 하얀 고무신을 동원한 것은 한국적인 것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간신히 걸음을 떼는 할머니가 궁사로 변신하는10행은 비유적인 의미를 찿아야 할 것이다. 주몽으로 대표되는 활 잘 쏘는 사람의 후예인 한국인이 이역만리 미국땅에서 개척한 코리아 타운을 가로지는 길이 올림픽대로이다. 할머니는 꼭 할머니가 아니라도 좋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이라 해도 좋고, 늙고 지친 재미동포라 해도 좋다. 그들이 겨누는 과녁은 무엇인가? 아메리칸 드림일 수도 있고, 자식 교육일 수도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의 꿈의 내용은? 12행-이역만리 떨어진 고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힘겨운 타국살이에서도 도저히 버릴 수 없고 간직해야할 것은 ‘하얀 고무신’이 상징하는 무엇일 것이다.할머니는 분명히 한복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이 시의 공간을 코리아 타운으로 국한해 본다면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우리의 문화,관습이 과녁의 의미일 것이다. 이런 뜻을 작가는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같다. <코리아 타운>이란 시에서 시인의 의도가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정월 대보름

달에 홀린 삐에로처럼

넋 놓고 가다 중심을 잃고 휘청인다.

돌아보니 보도블럭이 솟아있다.

저 아득한 곳으로부터

뿌리가 블록을 밀쳐내고 있었던 것

의지와 상관없이 심겨진 가로수

미처 자라지 못한 자신의 근거를

어둠에만 둘 수 없었던 것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을 깨보고 싶었던 것

가끔은 막힌 길도 일부러 뚫어야 할 때가 있어

돌아보지 않고 솟구쳐 올라와 보고 싶었던 것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경계를 넘어서 보고 싶었던 것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내 생애만은 아니었던 것




계통없이 떨어져 나온 잔뿌리들

소신 같은 질긴 이념 하나 들고

태평양 건너 벽을 뚫고 언어를 넘어왔던 것

이 거대한 도시에

뿌리의 계보를 늘리고 있었던 것.

                                 <코리아 타운> 전문




이민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터전을 모두 버리고 낯선 나라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민자들이다. 어금니 물고 두 손 불끈 쥐고 태평양을 건너 왔을 것이다. 위 시의 처음부분은(1-3행) 유학이나 취업,결혼등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어릿광대처럼 넋을 놓고, 중심을 잃고 허둥거리며 살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시의 화자는 보도블록을 제치고 솟아난 가로수의 뿌리에 채어 휘청거린다. 나무 뿌리가 두고온 고향과 조국을 떠오르게 한 것이다. 일상언어에서는 비교,대조될 수 없는 것을 시에서는 서로 비교-대조되고 있으며 그러므로 일상언어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많은 것을 함축하게한다. 이 시에서 드러나는 비교와 대조관계를 보면 가로수와 이민자, 뿌리와 자신의 근거가 대비되고 있다. 보도 블록은 틀과 벽과 대응되어 뿌리의 자람을 방해하고 막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뿌리는 혈통과 민족을 의미한다.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를  태평양 건너 낯선 도시에 이식시키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 뿌듯하다. 민족정기를 지키면서 미국땅에 굳건히 뿌리내리는 것이 진정한 자아의 모습임을 보이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는 법이다.




(끝)

7/4/2013






구자애의 시세계-이민자의 정체성 찿기




                                                                        백 남규




근래에 많은 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의 풍년속에 시다운 시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신선한 감동과 충격을 주는 시를 만나기 힘든 것은 시인들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식이나 깨달음에 새로움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를 전달수단의 하나라고 본다면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시인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깨달음일 것이다.




1964년 충청도에서 태어난 구자애 시인은 2003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2002년,<문학산책>신인상을 수상했고 이주하던 해에 미주한국일보문예공모전에 ‘하모니카’로 당선 미주문단에 데뷔했다. 여기서는 미주문단의 초기시를 중심으로 그녀의 시의 내용을 분석해보겠다.




L.A 모라토리움 콘서트장

트로트와 팝케스트라가 만났다.

영어가 서툰 트로트 가수와

한국어가 서툰 팝케스트라의 젊은 가수

공연을 지켜보는 내내

나는 오리무중이다.




가락과 음률 사이

장구와 드럼 사이

거문고와 바이얼린 사이

한복과 푹 파인 드레스 사이

어디에도 스며들지 못하고

나는 떠돌고 있는 중이다.




오색찬란한 조명 지나

잠깐 막을 내리는 사이

참다못한 포유류 한 마리

어둠 타고

푸드덕,뛰쳐 나온다.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 지금

빛과 어둠이 뭉쳐진 시간 속에서

천장에 매달리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이방인 하나

뒤뚱뒤뚱 횡단보도를 날고 있다.

                              <박쥐> 전문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와 마음을 통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믿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가장 먼 사람이었음을 발견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인가? 나 자신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내속의 내가 너무 많아서 어느 것이 진정한 자신인지 안개속인 사람이 많다. 나의 나됨 찿기의 방법 하나가 글쓰기이다. 정체모를 세상과 마주 선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바뀌며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의 삶을 꾸려 나가야 하는 사람(시의 화자)은 필연적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작가들은 이런 자기 운명을 포함하여 자아을 둘러싸고 있는 남과 세계를 유심히 살피는 사람이다. 그들이 남과 세상을 살피는 이유는 기실 처절하다. 진정한 자아가 누구인지를 그들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이 시의 화자 ‘나’는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다.  콘서트에 가보니 영어도 한국어도 서투른 한국인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 동일시되는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이쪽과 저쪽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나’는 박쥐가 되어 거리를 헤맨다. 박쥐가 진정한 자아가 아님은 불문가지. 나는 이제 할머니가 되어 올림픽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




올림픽 사거리

10시 15분 방향으로

할머니 한 분 절름절름 걸어가신다.

힘겨운 시간들이 한 쪽 다리를 갉아 먹었는지

관절 어느 부분이 어긋난 것인지

하얀 고무신이 바닥에 닿을때마다

길이 출렁 휘어진다.

부러지지 않으려 맘껏 휘어져 온 生

남은 나날 지팡이 하나로 거뜬한 듯

계속해서 활 시위를 다잡는 할머니

미처 쏘아 올리지 못한 활

이역만리까지 가지고 온 이유를

아직도 구부러질 허리춤에 매달고

아슬아슬,한 발씩 디디며 과녁을 겨누고 있다.




올림픽 행길이 짱짱하게 휘어진다.

            

                              -나의 화살은 아직도 살아 있다.-전문




범상히 보아 넘길 수 있는 할머니의 걷는 모습이 시인의 눈으로 보면 고달픈 인생살이에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충격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시는 일상언어를 재료로 하며 일상언어가 사용하는 문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시의 언어와 일상언어는 근본적으로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시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다의적인 언어이며 표면적인 의미와 시적 의미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신비평,러시아 형식주의) 시는 의미론적으로 간접적인 전달방식을 가진다. 이것을 통해 저것을 전달한다. 그러나 시의 모든 언어가 애매하거나 비유적으로 쓰인 것은 아니다. 일차적으로 표면적인 의미를 해석하고 축어적으로 해석이 안 되는 시어의 의미를 판독해야한다. 위 시는 형식상으로 2연으로 볼 수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전3연의 시이다. 7행(길이 출렁 휘어진다.)까지는 지시적 의미 이상의 숨겨진 시적 의미를 가진 단어는 ‘하얀 고무신’하나이다. 실제로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할머니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에서 일부러 가죽구두 대신 고무신,그것도 하얀 고무신을 동원한 것은 한국적인 것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간신히 걸음을 떼는 할머니가 궁사로 변신하는10행은 비유적인 의미를 찿아야 할 것이다. 주몽으로 대표되는 활 잘 쏘는 사람의 후예인 한국인이 이역만리 미국땅에서 개척한 코리아 타운을 가로지는 길이 올림픽대로이다. 할머니는 꼭 할머니가 아니라도 좋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이라 해도 좋고, 늙고 지친 재미동포라 해도 좋다. 그들이 겨누는 과녁은 무엇인가? 아메리칸 드림일 수도 있고, 자식 교육일 수도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의 꿈의 내용은? 12행-이역만리 떨어진 고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힘겨운 타국살이에서도 도저히 버릴 수 없고 간직해야할 것은 ‘하얀 고무신’이 상징하는 무엇일 것이다.할머니는 분명히 한복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이 시의 공간을 코리아 타운으로 국한해 본다면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우리의 문화,관습이 과녁의 의미일 것이다. 이런 뜻을 작가는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같다. <코리아 타운>이란 시에서 시인의 의도가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정월 대보름

달에 홀린 삐에로처럼

넋 놓고 가다 중심을 잃고 휘청인다.

돌아보니 보도블럭이 솟아있다.

저 아득한 곳으로부터

뿌리가 블록을 밀쳐내고 있었던 것

의지와 상관없이 심겨진 가로수

미처 자라지 못한 자신의 근거를

어둠에만 둘 수 없었던 것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을 깨보고 싶었던 것

가끔은 막힌 길도 일부러 뚫어야 할 때가 있어

돌아보지 않고 솟구쳐 올라와 보고 싶었던 것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경계를 넘어서 보고 싶었던 것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내 생애만은 아니었던 것




계통없이 떨어져 나온 잔뿌리들

소신 같은 질긴 이념 하나 들고

태평양 건너 벽을 뚫고 언어를 넘어왔던 것

이 거대한 도시에

뿌리의 계보를 늘리고 있었던 것.

                                 <코리아 타운> 전문




이민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터전을 모두 버리고 낯선 나라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민자들이다. 어금니 물고 두 손 불끈 쥐고 태평양을 건너 왔을 것이다. 위 시의 처음부분은(1-3행) 유학이나 취업,결혼등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어릿광대처럼 넋을 놓고, 중심을 잃고 허둥거리며 살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시의 화자는 보도블록을 제치고 솟아난 가로수의 뿌리에 채어 휘청거린다. 나무 뿌리가 두고온 고향과 조국을 떠오르게 한 것이다. 일상언어에서는 비교,대조될 수 없는 것을 시에서는 서로 비교-대조되고 있으며 그러므로 일상언어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많은 것을 함축하게한다. 이 시에서 드러나는 비교와 대조관계를 보면 가로수와 이민자, 뿌리와 자신의 근거가 대비되고 있다. 보도 블록은 틀과 벽과 대응되어 뿌리의 자람을 방해하고 막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뿌리는 혈통과 민족을 의미한다.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를  태평양 건너 낯선 도시에 이식시키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 뿌듯하다. 민족정기를 지키면서 미국땅에 굳건히 뿌리내리는 것이 진정한 자아의 모습임을 보이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는 법이다.




(끝)

7/4/2013








구자애의 시세계-이민자의 정체성 찿기




                                                                        백 남규




근래에 많은 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의 풍년속에 시다운 시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신선한 감동과 충격을 주는 시를 만나기 힘든 것은 시인들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식이나 깨달음에 새로움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를 전달수단의 하나라고 본다면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시인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깨달음일 것이다.




1964년 충청도에서 태어난 구자애 시인은 2003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2002년,<문학산책>신인상을 수상했고 이주하던 해에 미주한국일보문예공모전에 ‘하모니카’로 당선 미주문단에 데뷔했다. 여기서는 미주문단의 초기시를 중심으로 그녀의 시의 내용을 분석해보겠다.




L.A 모라토리움 콘서트장

트로트와 팝케스트라가 만났다.

영어가 서툰 트로트 가수와

한국어가 서툰 팝케스트라의 젊은 가수

공연을 지켜보는 내내

나는 오리무중이다.




가락과 음률 사이

장구와 드럼 사이

거문고와 바이얼린 사이

한복과 푹 파인 드레스 사이

어디에도 스며들지 못하고

나는 떠돌고 있는 중이다.




오색찬란한 조명 지나

잠깐 막을 내리는 사이

참다못한 포유류 한 마리

어둠 타고

푸드덕,뛰쳐 나온다.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 지금

빛과 어둠이 뭉쳐진 시간 속에서

천장에 매달리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이방인 하나

뒤뚱뒤뚱 횡단보도를 날고 있다.

                              <박쥐> 전문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와 마음을 통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믿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가장 먼 사람이었음을 발견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인가? 나 자신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내속의 내가 너무 많아서 어느 것이 진정한 자신인지 안개속인 사람이 많다. 나의 나됨 찿기의 방법 하나가 글쓰기이다. 정체모를 세상과 마주 선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바뀌며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의 삶을 꾸려 나가야 하는 사람(시의 화자)은 필연적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작가들은 이런 자기 운명을 포함하여 자아을 둘러싸고 있는 남과 세계를 유심히 살피는 사람이다. 그들이 남과 세상을 살피는 이유는 기실 처절하다. 진정한 자아가 누구인지를 그들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이 시의 화자 ‘나’는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다.  콘서트에 가보니 영어도 한국어도 서투른 한국인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 동일시되는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이쪽과 저쪽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나’는 박쥐가 되어 거리를 헤맨다. 박쥐가 진정한 자아가 아님은 불문가지. 나는 이제 할머니가 되어 올림픽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




올림픽 사거리

10시 15분 방향으로

할머니 한 분 절름절름 걸어가신다.

힘겨운 시간들이 한 쪽 다리를 갉아 먹었는지

관절 어느 부분이 어긋난 것인지

하얀 고무신이 바닥에 닿을때마다

길이 출렁 휘어진다.

부러지지 않으려 맘껏 휘어져 온 生

남은 나날 지팡이 하나로 거뜬한 듯

계속해서 활 시위를 다잡는 할머니

미처 쏘아 올리지 못한 활

이역만리까지 가지고 온 이유를

아직도 구부러질 허리춤에 매달고

아슬아슬,한 발씩 디디며 과녁을 겨누고 있다.




올림픽 행길이 짱짱하게 휘어진다.

            

                              -나의 화살은 아직도 살아 있다.-전문




범상히 보아 넘길 수 있는 할머니의 걷는 모습이 시인의 눈으로 보면 고달픈 인생살이에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충격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시는 일상언어를 재료로 하며 일상언어가 사용하는 문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시의 언어와 일상언어는 근본적으로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시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다의적인 언어이며 표면적인 의미와 시적 의미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신비평,러시아 형식주의) 시는 의미론적으로 간접적인 전달방식을 가진다. 이것을 통해 저것을 전달한다. 그러나 시의 모든 언어가 애매하거나 비유적으로 쓰인 것은 아니다. 일차적으로 표면적인 의미를 해석하고 축어적으로 해석이 안 되는 시어의 의미를 판독해야한다. 위 시는 형식상으로 2연으로 볼 수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전3연의 시이다. 7행(길이 출렁 휘어진다.)까지는 지시적 의미 이상의 숨겨진 시적 의미를 가진 단어는 ‘하얀 고무신’하나이다. 실제로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할머니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에서 일부러 가죽구두 대신 고무신,그것도 하얀 고무신을 동원한 것은 한국적인 것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간신히 걸음을 떼는 할머니가 궁사로 변신하는10행은 비유적인 의미를 찿아야 할 것이다. 주몽으로 대표되는 활 잘 쏘는 사람의 후예인 한국인이 이역만리 미국땅에서 개척한 코리아 타운을 가로지는 길이 올림픽대로이다. 할머니는 꼭 할머니가 아니라도 좋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이라 해도 좋고, 늙고 지친 재미동포라 해도 좋다. 그들이 겨누는 과녁은 무엇인가? 아메리칸 드림일 수도 있고, 자식 교육일 수도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의 꿈의 내용은? 12행-이역만리 떨어진 고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힘겨운 타국살이에서도 도저히 버릴 수 없고 간직해야할 것은 ‘하얀 고무신’이 상징하는 무엇일 것이다.할머니는 분명히 한복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이 시의 공간을 코리아 타운으로 국한해 본다면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우리의 문화,관습이 과녁의 의미일 것이다. 이런 뜻을 작가는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같다. <코리아 타운>이란 시에서 시인의 의도가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정월 대보름

달에 홀린 삐에로처럼

넋 놓고 가다 중심을 잃고 휘청인다.

돌아보니 보도블럭이 솟아있다.

저 아득한 곳으로부터

뿌리가 블록을 밀쳐내고 있었던 것

의지와 상관없이 심겨진 가로수

미처 자라지 못한 자신의 근거를

어둠에만 둘 수 없었던 것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을 깨보고 싶었던 것

가끔은 막힌 길도 일부러 뚫어야 할 때가 있어

돌아보지 않고 솟구쳐 올라와 보고 싶었던 것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경계를 넘어서 보고 싶었던 것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내 생애만은 아니었던 것




계통없이 떨어져 나온 잔뿌리들

소신 같은 질긴 이념 하나 들고

태평양 건너 벽을 뚫고 언어를 넘어왔던 것

이 거대한 도시에

뿌리의 계보를 늘리고 있었던 것.

                                 <코리아 타운> 전문




이민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터전을 모두 버리고 낯선 나라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민자들이다. 어금니 물고 두 손 불끈 쥐고 태평양을 건너 왔을 것이다. 위 시의 처음부분은(1-3행) 유학이나 취업,결혼등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어릿광대처럼 넋을 놓고, 중심을 잃고 허둥거리며 살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시의 화자는 보도블록을 제치고 솟아난 가로수의 뿌리에 채어 휘청거린다. 나무 뿌리가 두고온 고향과 조국을 떠오르게 한 것이다. 일상언어에서는 비교,대조될 수 없는 것을 시에서는 서로 비교-대조되고 있으며 그러므로 일상언어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많은 것을 함축하게한다. 이 시에서 드러나는 비교와 대조관계를 보면 가로수와 이민자, 뿌리와 자신의 근거가 대비되고 있다. 보도 블록은 틀과 벽과 대응되어 뿌리의 자람을 방해하고 막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뿌리는 혈통과 민족을 의미한다.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를  태평양 건너 낯선 도시에 이식시키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 뿌듯하다. 민족정기를 지키면서 미국땅에 굳건히 뿌리내리는 것이 진정한 자아의 모습임을 보이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는 법이다.




(끝)

7/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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