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은진의 ‘타협의 여왕’

2014.04.18 11:07

백남규 조회 수:480 추천:9



추은진의 ‘타협의 여왕’



세상과 타협을 하며 살았지

썩은 물이 있다고 세상을 향해

목청 높여 외쳐대봤자


나만 손해라는 얄팍한 생각을

언제부턴가 하게 된 순간

타협의 여왕이 되고 말았지



누구는 학교옥상에서 정의를 외치다

저승길가고

또 누구는 노동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목숨을 잃었을 때

나도 두 주먹 불끈 쥐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둘렀었지

그땐 정의가 용암처럼 가슴을 녹였었는데



세월의 외줄을 타다보니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지게되더군.

타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다가

눈빛이 강한 사람과 만나면 슬그머니 피해버리고


나이 먹는다는 핑계를 무기로 세워

타협의 강을 수없이 건너고 말았어.



하,

나이 먹는다는 건 결코

벼슬이 아닌데 말일세.











 진정한 시인이라면 강자들의 악행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용기가 있어야한다. 그러나 세상은 반대로 무수한 기자들과 교수,학자,예술가들이 있지만 기득권을 가진 강자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알아도 모른체하며 살고있다. 그 이유는 위 시에 의하면 ‘목청 높여 외쳐봤자 나만 손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시란 무엇인가? 세상을 둘러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이란  무엇인가? 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나뭇잎을 밟고 지나가는 젊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세상인가? 세상은 아비와 어미가 만든 가족이 있다. 나라가 만든 온갖 법규와 제도, 마을마다 다른 관습과 전통과 통념들이 있다. 이것을 제대로 지키고 사는지 지켜보는 이웃의 눈들이 있고 스스로를 지켜보는 자기의 감시하는 눈길도 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을 세상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모든 존재는 누구나 내가 누구인지를 찿아 나선 삶의 나그네이다.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 보일것인가? 조선시대 양반남자라면 벼슬살이를 통해 남 위에 섬으로써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다 나의 나됨찿기의 목표를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양반은 아니었기에 시대가 같아도 가는 길이 다른 사람도 있기마련이다. 모든 인간들은 당시대의 관념에 복종,순응하며 산다. 그 시대의 질서를 잡기 위해 지배자들이 만든 온갖 법규와 제도,도덕율 따위는 당대 삶의 모습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동시에 사람들을 억압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기에 시대정신은 긍정적인 동시에 부정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조선 중기의 황진이란 기생이 있다. 그녀가 간 길은 무엇일까? 남자도 아니고 양반도 아닌 그녀가 갈 길은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남의 첩이 되거나 종이 되거나 겨우 기생이 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기생이 되기로 했다. 황진이가 선택한 길은 참기 어렵고 힘겨운 자기선택의 길이었다. 물론 신분제도를 없애는 치열한 저항의 길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은 누구나 아는 법. 몇 가지 에피소드가 전해주는 것을 해석해보면 그녀는 사대부나 당시 지배계층의 남자들을 비웃는 것으로 자신을 세우려고 했던 것 같다. 당시 황진이와 관계를 맺은 사대부 양반들은 황진이를 첩으로 삼아 독점하고 싶어했지만 황진이는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복종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심으로는 멸시와 모욕을 주었던 것이다. 





  위 시에서 두 사람이 나온다. 세상이 썩은 것을 알고 저항하다 죽은 사람과 한 때 저항하다 죽지 않고 변절(?)한 사람의 이야기.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이다. 생존의 문제가 달린 경우 나의 나됨찿기의 길 앞에서 망연자실,선택의 고민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정의 로운 길을 외면하고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 복지부동과 눈치보기에 급급하는 초라한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많은 사람들이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것조차 무디어지고 그렇게 사는 것이 훌륭한 처세술로 착각하는 사람으로 변하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타협의 강을 건넌 후. 뒤돌아보니. ‘하’ 자조적인 탄식이 터져나왔다. 결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는데 하고 반성하는 화자가 있다. 겉으로는 타협하는 척하고 살아왔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저항하는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의 갈등이 보인다. 그 갈등이 비록 얼마나 치열한지는 모르겠지만 타협의 왕이 저항의 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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