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바나나 나무로 살다

2016.03.30 03:34

박봉진 조회 수: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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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나나 나무로 살다 / 박 봉진   benpk@hanmail.net

 

   의아했다. 바나나가 파초 과(科)의 풀 품종(品種)이라 해서다. 허나 바나나 둥치는 미인 허리처럼 호리낭창하나 굵고, 키는 단층집꼭지 높이로 자란다. 등뼈물고기도 연골류가 있듯, 풀도 제 나름 일렀다. 그래 바나나는 초목(草木)형 바나나 나무일 수밖에 없겠다. 바나나 나무는 사철 길쭉 넙적한 부챗살 잎을 흔들며 제 대로 산다. 꽃을 피워 열매를 익힌다. 비록 사막성 건조지역에 뿌리내렸지만 연중 영상기온이기로 물만 주면 잘 산다. 동남아가 원산지라지만. 얼지 않는 다습지역이면 어디서나 쑥쑥 자란다.
   바 나나의 야생 원종은 무화과 열매처럼 자잘한 씨가 있었다는데. 거대 식품기업들이 씨 없는 수박 같은 개량종으로 남게 했다고 하니. 지금은 왕성한 뿌리활동으로 돋아나는 새순들을 떼 내서 이식하는 방법을 쓴다. 현재 알려진 바나나 품종은 400여종, 우리가 먹는 시장유통 바나나 대부분은 남미 에콰도르 산 카벤디쉬 종이다. 동남아 필리핀 산도 이와 같단다. 저비용 다수확과 상품성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집 것은 양끝이 뭉텅, 짧다. 껍질은 얇고 질겨서 신선도 기간이 길며 과질이 단단하고 단 품종이다.
   바나나 나무는 참 특이하다. 한 뿌리에서 번져나간 나무별로 단 한번 홍, 자색 묵직한 꽃을 피운다. 위로부터 차례로 넓적한 꽃잎을 떨어내며 그 한 송이에 백 개가 넘는 바나나 열매를 책꽂이의 책처럼 가지런히 장착한다. 그러면서도 꽃의 줄기는 계속 자라 내려가려한다. 미숙아 같은 새끼 열매가 달릴 때쯤 탯줄인양 잘라준다. 그래야  맺은 열매들을 양육한도만큼 제대로 키운다. 다 자란 열매 하중은 보통이 아니다. 둥치가 강성이면 뿌려졌겠지만 여유롭게 휘어지며 SOS신호다. 행여 다칠세라 버팀목을 고인다.

   확 때 바나나 한 송이는 한 아름이 된다. 내 힘만으론 버거워 핸들하기 쉽지 않다. 버팀목에 줄을 매고 바나나송이 줄기 양끝을 매서 고정시킨다. 위 줄기를 자를 때 풀썩 떨어짐의 방지다. 양손으로 무거운 바나나송이 줄기의 양끝을 들고 살짝 줄을 푼다. 어느 쪽 열매도 뭉개지지 않게 종잇장 감각으로 내려놓기가 더 어렵다. 아, 여태 그걸 몰랐네. 들어 올리려고만 온 정성을 쏟고 살아온 내 삶의 허무가 화인처럼 아리다. 들어올리기보다 내림이 이젠 내일일 것 같은데 마음 같지 않을 타성을 어찌 제어할거나.
   우리 집 뒤뜰엔 30여주 유실수(有實樹)가 있다. 사람들은 “스몰 팜”이라 부른다. 내겐 단지 즐기며 공생하는 절친 관상목(觀賞木)인 것을.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아도 이들과 함께 절기체험을 하니 얼마나 좋은가. 잔정은 베풀수록 친밀해진다고 했나. 들락거릴 때마다 필요를 알아내 손써준다. 기우린 관심이상 되돌리는 답례를 나도 되돌린다. 키 크고 희멀건 이웃친구들에겐 ‘은근과 끈기’ 우리 바나나를 안긴다. “와우 딜리서스” 껌벅한다. 침상을 털고 일어난 분 말씀을 듣고 문병 땐 꼭 챙기는 지참품 목록이다.
   나도 바나나는 잊을 수가 없다. 70년도 벽두, 업소분쟁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관리 총책은 동네북이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력이 소진됐고 눈엔 황달이 왔다. 의사는 급성간염이라 했다. 몇 차례 식염수 주사를 놔줬다. 당장 급한 것은 기력회복이니 꼭 바나나를 먹으라고 했다. 너나없이 어려웠던 그 시절, 바나나는 고관 갑부라면 몰라도 서민에겐 그림 떡이었다. 어찌어찌 암매장을 수소문해 찾아가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 금값 회소 품이 담방 약효를 줬을까. 그런 사정 사람들에겐 아낌없이 나눠줄게다.
   어느새 이민연조 40년이 다됐다. 이 사회의 회자(膾炙)어 Banana란 말이 야릇하다. 황색인 아세안을 일컫는 속어다. 바나나 같이 겉은 누러면서 속은 희다는. 이를테면 문화적 정신적으로도 서양화된 우리의 1.5세대 또는 2세대 이후가 해당이다. 이민1세대 나는 그냥 그대로 바나나 나무일 수밖에. 맞는 말이다. 연전 문하 1.5세대 작가 H님이 ‘바나나도 씨가 있다’ 수필집을 냈다. 당찬 젊은 작가의 배달 혼과 개성의 표현을 어찌 모르랴. 그 책에 ‘수필세계 서평을 썼던 사람도 바나나 나무임이 에둘러 확인됐으니.
   요즘은 어디에서나 시장성 위주다. 진위(眞僞) 혼돈에다 편중(偏重)이 대세(大勢)다. 사람 사는 세상. 누가  무엇을 보고 닮는가. 바나나는 사과처럼 단단하지 않다. 선도도 오래 못 간다. 그래도 업주 주머니는 불려야하니. 시퍼렇게 설익은 바나나수확이다. 이동과정에서 좀 짓눌려도 쉽게 상하지 않으니까. 나무에서 제대로 익어야 제 맛이련만. 그 기간 겉말라 익는 시간활용도 이재(理財)라니. 누가 그걸 마다하겠는가. 바나나 열매는 나무에서 노란색을 뛸 때가 제 맛이다. 숙성보다 미성이 더 전성기를 구가하니 어쩌랴.
   바나나를 한입 베어 문다. 역시 그 맛. 개구쟁이 시절로 리피트 영상. 할아버지의 쩌렁쩌렁 호통. “이눔아 봉황은 왕대밭 죽실(竹實)만 먹고, 날개를 펴면 구만리장천을 난다. 우째 니는-.” 당신 태몽이라 봉황새 봉(鳳)자를 손자이름에 달은 큰 기대감의 역정이다. 아무도 먹어보지 못한 죽실! 대나무도, 바나나도 뿌리 순(槆) 이식에다 가지를 달지 않는 외 둥치 나무. 비유어래도 초록은 동색. 어허, 그러네. 죽실 바나나는 자재로 먹는다. 구만리장천도 때때로 난다. 작금이 여일이듯, 바나나 나무로 살다 유유자적 길들려나.

 

박봉진 미주 중앙일보신춘문예 수상. 한국정부 재외동포재단 및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일보본사 공동주관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경희대학교, 한국문학평론가협회 공동주관 해외동포문학상 최우수상 수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이사장 역임.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수필집: ‘언제나 내 마음 바다에 살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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