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몹시 오는 어느 날 지성적인 한 젊은이가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책 읽고 글 쓰는 것밖에 모르던 그는 유산으로 상속받은 탄광을 개발하기 위해 섬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어디선가 야성적인 거친 사내가 다가오더니 탄광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며 동행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아무 경험이 없는 젊은이는 그를 광산 현장감독으로 고용하기로 하고 섬으로 같이 가 함께 생활한다. 
 이성적인 엘리트 보스와 달리 사내는 원초적 본능에 의해 거칠 것 없이 행동하는 기질의 소유자로 규범이나 도덕은 개의치 않는다. 또 세상의 위선과 종교의 타락도 조롱한다. 이 때문에 둘은 사사건건 충돌을 빚는다. 
 사내는 자신이 만났던 많은 여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준다. 그는 육체적 욕망을 외면하는 건 남자의 치욕으로 여긴다. 해서 "남자는 여자를 보면 갖고 싶다고 말해야 해. 여자도 그걸 원해. 또 여자란 돈만 보면 돌아 버리고 모든 걸 남자에게 주어 버리거든"이라고 거침없이 떠벌린다. 
 실제로 그는 섬에서 만난 카바레 출신 퇴물 가수를 '화냥년'이라고 욕하면서도 욕정을 쏟는다. 반면에 엘리트 보스는 마을 젊은 과부에게 육체적 욕망이 일면서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사내는 이죽거리며 끈질기게 부추긴다. 
 한편 섬 마을은 겉으로는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인다. 하지만 타락한 수도승들이 모여 사는 수도원이 있는가하면 젊은 과부에 은밀한 욕망을 품은 남자들의 집단적 광기가 꿈틀대는 가식과 허위로 가득한 마을이다. 결국 사내와 보스는 광산사업에 실패하고 빈털터리가 된다. 그러나 사내는 낙담하기는커녕 양고기를 굽고 포도주를 마시며 시르타키 춤을 춘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내의 모습에 보스도 함께 춤추면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 대문호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 이야기다. 
 한데 미국에서 때 아닌 조르바를 연상케 하는 거친 사내가 나타나 경천동지할 일을 연출해냈다. 즉흥적이고 걸러내지 않은 막말과 기행을 보인 것도 그렇지만 규범이나 도덕도 개의치 않는 유사한 면모도 보여 준 그가 대통령이 된 거다. 특히 여성 차별과 거침없는 비하 언행도 너무 닮았다. 
 '여자는 돈이면 사족을 못 쓰고 일류급이라도 쉽게 살 수 있다'는 등 음담패설도 마구 쏟아냈던 그다. 그것뿐 아니라 기성 정치의 엘리트 체제에도 맞서고 그들의 가식과 위선을 조롱하며 좌충우돌 휘젓기도 했다. 한데 이 일로 그는 소위 똑똑하다는 지식인들로 하여금 '이 나라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나?'하는 자성을 하게 하는 동시에 최소한 이 사회의 밑바탕에 깔려 있던 병든 현상을 대변하는 성과도 이루어냈다. 
 이제 그가 이 땅에 희망을 싹틔울지, 더 깊은 절망을 남길지 아직 모른다. 하나 곡괭이와 악기 둘 다 다룰 줄 아는 손을 가졌다는 조르바처럼 그가 암울한 삶에 조그만 희망의 불씨라도 지펴줄 수 있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망상일까?
 그렇다 해도 '그래도 내일은 해가 뜬다'는 말에 베팅하고 싶다. 조르바가 모든 걸 떨쳐버리고 춤을 추며 맡은 바람 내음 속에서 자유를 찾았듯 우리도 다음날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기 위해 어떤 시련도 견디고 이제까지 오지 않았던가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4
어제:
0
전체:
53,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