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 전 마지막 이 가을에

 

 

 

 지금은 완연한 가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을을 비애적으로만 보지 않는 사조도 더러는 있지만, 대부분 서글프고 눈물 나고 쓸쓸하고 외롭고 잠 안오는 계절이 가을이라고 읊어 왔다. 무엇인가 몽땅 잃어버린 듯한 계절,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은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일지라도 믿는 자의 가을은 서글프고 눈물나는 계절이어서는 안 된다. 인본적 감상에만 젖어 있는 가을이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낭만주의 사조의 세기말적 증상, 퇴폐적 감상(Sentimentality)일 뿐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영혼 추수기이다. 봉사와 수고에 대한 보수와 축복, 그 상급을 받는 계절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가난한 자를 돕는 계절이다. 내일을 위하여 양식을 모으는 때이다. 믿는 자의 가을은 잠들지 않고 엎드려 기도하며 죄에 대한 형벌과 세상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계절인 동시에 눈물로 자신의 삶을 맑게 딖아내는 계절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가을은 믿음으로 영혼의 눈을 뜨는 깊은 은혜의 계절, 인생을 한층 더 깊고 넓게 사유하는 계절이다.이렇게 귀한 가을이 우리의 옷깃으로 스며들고 있다.

 따가운 햇살이 한풀 접히는가 싶더니 요즈음은 이채로운 가을빛과 함께 황홀한 모습으로 눈이 부시도록 우리들 시야에 다가와 준다.

창세 때부터 이글거리며 떠올라 만물을 생성케 하고 결실케 하며, 인생들의 삶을 비춰주는 태양에서 따스하신 하나님의 가슴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게 돤다.

  저렇게 거대한 태양이 중천에 머물기도 했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에는 빛을 잃어 온 땅에 어두움을내리기고 했으며, 이사야의 간구로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10 도나 물러가게 하였었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다.

 태양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위하여, 성도들이 누리게 될 영광을 위하여, 여호와의 율법과 증거로 이 땅 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비추고 있음에 우리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오늘의 햇볕 속에서 무한한 감사와 기쁨을 느끼게 된다. 날마다 떠올랐다가 지는 태양은 그저 떠올랐다가 지는 물체일 테지만 저토록 웅대한 섭리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 한 평생 햇볕을 받아 살면서도 하늘에 뜬 저 붉은 태양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태양을 통해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마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우리들이다.

 어느 장님 목사님은 "만약  내가 눈을 뜬다면 제일 먼저 보고 싶은 것은 서녁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태양과 저녁노을"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아내보다도 귀여운 자녀보다도 하늘에 뜬 태양과 저녁 노을이 먼저 보고 싶다는 그분의 눈 언저리로 눈물이 번져나오고 있었다.

 그렇다! 자기 자신의 얼굴모습이 먼저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영화나 소설책이 먼저 보고 싶은 것도 아니다. 저 하늘에 뜬 태양, 그 고운 빛으로 물든  하늘을 자녀들이나 아내보다 먼저 보고 싶은 것이 그분의 확실한 소원이다. 두 눈을 가지고 살면서도 비로 보아야 할 대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엉뚱한 것만 보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찾으면서도 비쁘다는 핑계로 자연의 모습과 식구들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살아오는 우리들이 아니었나.

 오늘 이토록 이채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니,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 그리고 내 자신의 쑥스러운 모습이 더욱 뚜렷해지는 느낌에 뜨거운 눈물이 돈다.

 요즈음 우리가 맞는 가을은 새 천년 전 마지막 가을이다. 이 가을이 가고 나면 겨울도 가고 새. 천년의 문과 함께 새 봄이 열린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향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43:18-19) 그러므로 과거의 아픔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서 맑게 씻기는 이 가을이어야 하고 역사의 지층마다 앙금져 깔려 있는 천추의 한 마져 새 천년의 마지막 이 가을에 말끔히 가셔져야 하리라. 주님의 연대는 무궁하며 우리에게 주시는 세월은 우리의 아픔도 억울함도 없었던 듯 씻어내는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나무가 그 잎을 땅에 떨구듯 아프고 쓰린 세월 모두 떨어버리고 새 천년 희망의 새 연대를 맞이하자. 지금 이 가을이야밀로 새 천년 첫날을 깨우는 꼭두새벽이 아닌가! (11. 7.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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