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레돈도 비치를

2017.05.15 23:50

서경 조회 수:160


딸이 있으니,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좋다.
쇼핑도 같이 하고, 패션 쇼도 같이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정서 교감도 가지고...
딸이 하나 뿐이라, 각별히 더 친한 듯하다. 
미국으로 이민 올 때 내 나이가 서른 둘이었는데, 그때 세 살이던 딸애가 벌써 서른 일곱 살이 되었다.
크게 이룬 건 없어도, 제 앞길 제가 챙겨 잘 가 주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오늘은 어머니 날. 
한 달 전부터 뭐 하고 싶으냐고 졸라대듯 물었다.
나는 그리피스 팍 Greek theater 에서 주관하는 야외 영화를 보며 밤하늘 별도 보고 싶다고 했다.
이름하여, Steet Cinema.
딸아이가 알아보더니, 그 날은 없다고. 
야무진 꿈 하나 접고 딸아이 처분을 바라기로 했다. 
결국, 레돈도 비치에 가서 게도 먹고 바다 풍경도 보고 시간 남으면 영화도 한 프로 떼기로 했다. 
시푸드에 바다 구경이라. 
둘 다 좋아하는 터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날이 날인만치, 레돈도 비치는 엄청 북적댔다.
파킹랏을 찾지 못해, 도로 나와서 스트릿 파킹을 찾았으나 다 미터기가 달려 있었다.
한 두 시간에 일어설 상황도 아니라, 다시 차를 돌려 파킹랏으로 들어서 이번엔 오른 쪽으로 돌렸다.
그때, 딱!
한 차가 나갈 준비를 하는 게 내 눈에 들어 왔다!
"야! 저기 나간다! 빨리!"
"와- 엄마! 나보다 눈 좋네 ?"
명당 자리에 차를 대고 보니, 로토 당첨이나 된 듯 기분이 좋다. 
딸도 나도 하하거리며 바닷가로 나섰다.
시원한 파도소리가 귀를 씻어주고 가없는 수평선은 한없는 동경 속으로 나를 끌어간다. 
"잠깐! 여기서 사진 한 장 찍고!"
딸이 나를 세운다. 
"너무 가까이서 찍지 말거래이. 엄마 주름살 다 나온데이..."
환갑 진갑 다 지났지만, 아직도 여자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나의 간절한 부탁이다.
칠, 팔십쯤 되면 거울도 멀리하고 여자이기를 포기하게 될까?
그것도 아닌 것같다.
어머니도 팔십 넘어서까지 외출할 때면 이 옷 저 옷 걸쳐보고 어느 게 더 맵시가 나는지 패션 쇼를 하시곤 했다. 
그리고 꼭 확인하시고 싶어 물으시던 말씀.
"이거 됐나?"
"예! 엄마, 아주 멋져요!"
"그래? 야야, 내가 이리 늙었는데도 보건 센터에 가면 '예쁜 할머니'로 통한다 아이가?  내가 진짜 예뿌나?"
"그럼요! 우리 엄마가 고성 삼대 미인 중에 한 명 아입니꺼!"
"하하! 맞다, 맞다! 그때 너거 엄마가 날렸니라-"
"네. 알고 있심더!"
엄마도 웃고 나도 웃었다. 
이젠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엄마의 함박 웃음 소리가 파도소리에 실려와 귓전을 때린다. 
언젠가 레돈도 비치에 함께 와서 게를 사 드린 날, 그 맛과 즐거웠던 기분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이제 한 세대가 끝나고 내 세대가 되었다. 
세월은 가고 오고 파도처럼 출렁이며 추억을 싣고 온다.
그렇게 즐거워 하시던 일을 왜 그리 자주 못해 드렸을까. 
자식은 모두 너나없이 청개구리던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개굴개굴대니.
뭐니뭐니해도 제일 후회스러운 것은 '함께 시간을 많이 못 보내 드린 것'이다. 
어머니 날에 추억의 장소에 오니, 새삼 오년 전에 여윈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어쩌랴. 
어제는 어제의 바람이 휩쓸어 갔으니.
오늘은 오늘의 바람이 불고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 간다. 
해변 횟집 앞에 줄을 섰다. 
안 가본 곳에서 먹어보고 싶다는 딸의 의견이다. 
줄이 길어, 기다리는 중에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이 바람개비 앞에서 비누방울을 날리며 즐거워 한다. 
저만치 해변 모랫가에서는 아이들이 발목을 적신 채 파도놀이를 하고 있다.
파도도 장난스레 달려와 발목을 적시는가 하면 느닷없이 허리춤까지 철썩 때리고 도망을 간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유쾌하다.
이것 저것 구경하는 사이, 줄에 밀려 주문대로 들어섰다. 
한국 사람이 주인이다. 
대형 어항 안에는 가재와 게가 꿈틀거린다.
묵직한 놈으로 게 두 마리를 주문했다.
저울에 달더니 96불이란다. 
으잉? 
한 마리에 46불. 
2,3인분 식사값이다. 
한 마리에 25불일 때 먹어 보고 모처럼 와서 그런지 크기 차이는 있겠지만 올라도 너무 올랐다. 
하지만, 딸은 먹고 싶은 거 다 주문하라며 메뉴판을 내민다. 
사시미와 매운탕을 두고 갈등하다, 매운탕으로 결정했다. 
멍게는 입가심으로, 찐 옥수수는 필수 불가결한 짝으로 추가 주문했다.
푸짐하다. 
그럴 수밖에. 거의 200불 상당의 양이다. 
밖에선 파도소리, 안에선 나무 망치로 게 두드리는 소리.
삼삼오오 짝 지어 온 가족들의 흐뭇하고 행복한 모습이다. 
전쟁 없는 나라에서 안정된 소시민의 평화를 누리며 사는 이 곳. 
하늘은 푸르고 바닷물은 에메랄드빛. 
캘리포니아의 선샤인 날씨까지 받쳐주니 이 아니 기쁘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실컷 포식했으니, 산책을 하며 슬슬 소화를 시켜주어야 한다. 
바다 위 산책 길은 낭만적이다.
이곳 저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 쪽에선 진주가 든 조개를 주문하여 누구 진주가 더 큰가 겨루어 본다. 
아이스크림샵 앞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디저트로 꼭 들렸다 가는 코스다. 
나도 바닐라 콘 하나를 주문하여 조금씩 핥아 먹으며 유유자적했다. 
모처럼, 딸과의 바닷가 나들이.
즐겁고 유쾌한 하루였다. 
푸른 바다를 눈과 가슴에 가득 담고 가는 길,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게 영 구색에 맞지 않을 것같아 다음으로 미루었다. 
중천에 떴던 태양이 설핏 서산마루에 얹히었다. 
또 하루,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로 그려진 '그 날'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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