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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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칼럼
2017.08.10 16:33

무식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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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로패셔널 포토그래퍼 BUSAN


이산해의 東 / 西 여로(旅路)


여로(旅路)에는 늘 긴장과 흥분이 따른다.

특히 그 여정이 어떤 목적을 지닌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금요일.


간편하게 행장을 꾸리고 미주 한국문인협회가 주최한 “여름 문학 캠프”를 향해 떠났다.

8월 12일(토:2017년), LA 코리아 타운에 위치한 용궁 식당에서 펼치는 행사에 참석키 위해서다.


인터넷 앱으로 사전 예약한 버스표를 필라델피아 그레이 하운드 버스 터미널에서 발급 받은 후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탑승한 시각은 오후 7시 30분.


여정의 거리는 모두 도합 2천8백4마일.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4천5백12.601킬로미터다.


좀 더 디테일하게 표기하면 이렇다.


필라델피아에서 내쉬빌까지=803,3마일 / 내쉬빌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2004,4마일. 


예정 스케쥴 시간이라면 10분 후 버스가 출발한다.

허나, 시동이 걸린 버스는 엔진의 요란한 굉음만 토해낼 뿐 도무지 떠날 생각이 없다.

버스 티켓에는 분명코 출발 시각이 오후 7시40분으로 뚜렷하게 표기돼 있었다.

하지만, 30여 분을 훌쩍 넘긴 버스는 요지부동이다.


출발 시간이 지나치게 경과하자 52개의 좌석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승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팔과 얼굴 전체에 문신을 한 백인 청년이 소리쳤다.

“도대체 버스 운전사는 어디로 사라진거지? 혹시 이 가이(운전사)가 화장실에서 딸치는거 아냐?”

순간 좌석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는 웃음보가 터졌다.


문신의 선견지명인가? 50대 후반의 흑인 버스 기사가 다급한 걸음으로 버스로 다가와 주변을 살핀 다음 운전석에 앉았다.


10분 후.


흑인 버스기사가 운전석에 장치된 마이크로 폰을 손에 쥐고 말했다.

“승객 여러분. 이 버스는 메릴랜드 볼티모어를 경유해 워싱턴 DC와 버지니아를 거쳐 내쉬빌 테네시까지 운행합니다. 소요시간은 대략 19시간이며 도로 사정에 따라 다소 시간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버스 기사가 여기까지 말한 순간이었다.


승객 가운데 젊은 여성이 스마트 폰을 귀에대고 요란스레 통화를 하자 버스 기사가 까칠한 표정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며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지금 이시각부터 승객 여러분들은 가급적 스마트 폰 사용을 자제해 주십시오.부득이 전화를 사용할 시 목소리는 귀에 속삭이듯 하시고 전화벨 소리는 완전히 끄십시오. 만약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연방법에 의거, 주행도중이라도 당해 승객을 하이웨이 선상에 내려 놓을 수 있다는 점을 각별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연방법 운운하며 승객들에게 겁을 준 흑인 버스 기사가 거드름을 피우며 승객들의 반응을 살폈다.


자칫하면 야생동물들이 출몰하는 하이웨이에 내쳐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주눅이 둔 승객들이 저마다 상체를 고추 세우고 긴장된 표정으로 스마트 폰을 움켜쥔 채 버스 기사의 눈치만 살폈다.


득의 양양한 흑인 버스 기사가 마이크로 폰에 대고 헛기침을 서너차례 거칠게 한 뒤 중단했던 말을 이었다.


버스기사는, 화장실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울 수 없으며, 남녀가 함께 들어가 야시꾸레한 짓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버스  기사는 또 버스 안에서는 절대 신발을 벗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유는, 머리가 빠질 정도로 고약스런 발 냄새로 인해 승객들이 고통을 겪을 뿐만 아니라, 안전 운전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다며, 승객 가운데 신발을 벗고 태연자약하게 군다면 이 역시 버스에서 강제 퇴치감이 될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렇듯 대략 10여 분에 걸쳐 장황하게 버스운행 안전수칙을 강조한 흑인 버스 기사는 1시간여 가까이 지체한 버스를 움직여 터미널을 빠져 나갔다.


주간고속도로(interstate)I-95에 올라 선 그레이하운드 버스가 워싱턴 DC를 향해 질주했다.

그러자 방금 전 흑인 버스 기사가 일목요연하게 내 뱉은 안전수칙 따위는 까맣게 잊은 듯 승객들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고요속에 침전된 버스 안은 스마트 폰에서 발광(發光)하는 빛과 소음으로 순식간에 침묵이 파괴됐다.


페이스 북을 들여다보며 쉴사이 없이 댓글을 다는 젊은 여성 /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디론가 메시지를 날리는 남자 / 젊은 여자와 화상채팅을 하며 비속어를 남발하는 중년 백인 사내 / 손짓과 발짓을 동원해가며 큰소리로 통화에 열중인 라티노 사내 등의 소음이 범벅이 돼 버스 안은 시골 장터를 방불케 했다.


승객들의 이같은 소요(騷擾)를 곁눈질 하며, 한편으로는 은근한 걱정이 따랐다.


다혈질의 흑인 버스운전 기사가 과연 언제까지 인내심을 발할까 하는 예단이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여코 사단이 났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버스 기사가 느닷없이 마이크로 폰을 손에 쥐고 짜증을 부렸다.


“승객여러분. 지금 여러분께서는 본인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며 즐기고 계십니다.허나, 인내심의 한계가 임계(臨界)점에 도달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지요?”


버스 기사의 엄숙한 어조였다.


그래서일까?


버스 기사의 의도를 순식간에 파악한 승객들 저마다 손에 쥔 스마트 폰을 황급히 가리며 자신들의 동작을 일시에 멈췄다.

그 누구 한사람도 스마트 폰에 시선을 주거나 자판을 두드리는 이가 없었다.


버스 안은 다시 고요속으로 침전됐다.


흑인 버스 기사는 만족한 듯 이렇게 시부렸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하운드는 이같은 해프닝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냥 내달릴 뿐이었다.


버스에서 보듯 인종의 도가니인 멜팅팟 미국이 그나마 순조롭게 굴러가는 이유는 다름아닌 엄격한 법질서 때문이다.

아무리 절대 파워라 할 지언정 그가 버스 승객이라면, 버스 기사가 요구하는 지시에 따라야한다.

만약 불응할 경우 망신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미국인들의 이같은 바른 법질서 준수행위는 코리안들도 수입해 차용해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시속 65마일의 속도를 유지한 버스는 무념(無念)의 구도자 마냥 묵묵히 앞으로 나갔다.


한편으론 차장으로 다가왔다 사라지는 도로 변의 각가지 풍경들이 여로의 긴 서막(序幕)을 알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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