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를 보며

2017.09.02 12:48

조형숙 조회 수:9233

    아침 6시 글렌데일 코스코옆 넓은 장소에는 자동차가 한대 두대 모이기 시작했다. 교회 상량감사예배가 있는 아침이다. 4년 6개월의 긴 여정을 통해 수많은 여려움을 극복하고  교회 건축의 기초를 완성하기에 이르렀고, 이제 대들보를 올리는 역사적인 순간의 감동을 함께 하기위해 많은 교인들이 모였다. 도착한 순서대로 각자의 기도 제목을 철근빔에 기록했다. 성도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25자 이내의 글로 자신의 기도문을 작성하여 써 넣었다. 빈자리 없이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써 넣었다. 나도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족이 되기를 기도했다. 교회를 완성하고 입당하기까지는 앞으로도 힘든 과정이 남아있지만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여기 까지 우리를 도우셨고, 또 앞으로도 도우실 것을 믿으며 가슴이 벅차 올랐다. 두 개의 철근이 하나씩 밧줄에 매달려 올라가 벽 한쪽에 고정되었다. 말없이 바라보며 새 성전을 기다리는 교인들의 마음과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조화를 이루었다. 이른 아침 어린 손자들도 함께 상량감사예배에 참석했다. 멀리 이사해서 올 수 있으려나 생각 했는데 아이들을 다 데려온 아들네가 고마웠다. 오늘 아침의 감동이 오래도록 어린 아이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오후에는 아들네서  모였다. 뒷마당의  포도알들은 커지고 빽빽하고 빈틈없이 달려 있었다. 탱글탱글했다.
이육사의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아니더라도 포도송이는 풍요롭고 신선하고 보기 좋았다. 아들네서 따온 청포도는 주일 아침 성가대에서 나누었다. 아주 작은 것이지만 사랑하는 공동체와 나누고 싶었다. 
 갈 때마다 변화하는 포도나무의 모습을 본다. 작은 잎새는 더 넓게 손을 펴고,  열매는 하나 둘 많아지고 커진다. 포도나무처럼 성도가 하나 둘 모여 변화하고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하나님의 기쁨은 얼마나 클 것인가?.
 
지난 2월 아들네가 주택으로 이사했다. 한쪽 담에 바싹 말라 썩은 것 같은 나무줄기가 있었다. "이거 죽은것 같은데 잘라낼까요?"  "아니야 포도나무같아. 조금 기다려보자."  다음에 가니 아주 작은 잎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 때마다 잎은 크고 무성해져가고 작은 열매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청포도였다. 빈 틈없이 다닥 다닥 붙어 있어 놀라웠다. "세상에 이럴수가. 죽은 것 같던 나무가 이렇게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말씀이 생각났다. 믿는 자들은 저렇게 주께 달라붙어 있어야 생기를 얻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포도알 하나 떼어 먹으니 아직은 새콤한 맛이다.
 
   중보기도팀에는 많은 기도제목이 있다. 그 중에도 환우들을 위한 기도는 더 많은 열심을 낸다.  교회일에 충실하시던 분, 믿음의 본을 보이신 분이 하나 둘 떠나갈 때는 참으로 안타깝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사님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 소리없이 흘러내린다.  성도들 앞에서 슬픔을 보이지 않으시려 무던히도 참으신다. 그 분들의 생전에 사셨던 이야기를 하시면서 안타깝지만 다시 만날 소망으로 성도들과 함께 위로 받는다. 교회건축의 어려움과 먼저 가시는 분들을 보내는 슬픔이 어우러져 저 밑 바닥 분화구에서 뿜어지는 아픔이 목줄기를 타고 오른다. 나도 목이 아프게 조여온다. 울었다. 교인들도 다 같은  마음으로 울었다. 이것이 바로 함께 매달려 살아가는 청포도송이요, 철근 빔에 써넣어 교회벽에 매달린  우리들 하나 하나의 기도문이다. 어깨동무하고 사랑하고 위로하며 살아가는우리는 한 공동체다.
철근빔에 써넣은 기도제목이 빽빽하게 들어 있어 교회기둥에 딱 붙어 있는 것과  포도송이가 탱탱하게  포도나무에 딱 붙어있는 것이 같다. 우리 다 함께 포도나무이신 예수께 매달려 싱싱한 삶을 의미있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근원적인 자세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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