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열매도 달콤하다

2017.10.01 12:31

조형숙 조회 수:86

   작가님이  따 주신 대추는 아주 부드럽고 달콤하다.  도로에서 한참 올라간 언덕위에 있는 작가님의 집 뒷마당은 내리막 비탈을 타고 저 밑 길가까지 뻗어 있다. 그 비탈에 무화과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아보카도, 복숭아나무가 푸르고 싱싱한 잎사귀와 든든한 나무 기둥을 뽐내고 서 있다. 보통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아야 나무 열매를 볼 수 있다. 이 정원에서는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나무 열매를 볼 수 있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강서구 화곡동 주택에 살았다. 시어머니가 중풍이셨고 늘 보살펴드려야 해서 직접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니지 못했다. 남편이 다녀와 집도 가격도 적당하고, 특히 마당에 배나무가 있다는 말에 좋아서 그 집으로 정했다. 왕십리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화곡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해서 나무를 찾으니 웬걸 배나무는 생각보다 아주 작고 가늘었다. 배는 커녕 꽃조차 필 것 같지 않았다. 조금 실망했으나 매일 아침 나무를 보며 조금씩 실해지기를 바랐다. 커져라 커져라 소원했다.
   이사하고 이듬해 봄에 배나무는 아주 곱고 하얀 꽃을 많이 만들어 냈다. 놀라웠다. 그리고 얼마후 작은 열매들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과일나무는 키워 본 적이 없어 그냥 매일 커져가는 열매만 지켜보고 있었다. 열매를 솎아 주어야 남은 열매가 크게 자란다고 동네 분이 말해 주었다. 많이 달린 가지에서는 좀 많이, 적게 달린 가지에서는 적게 솎아 주었다. 열매는 제법 커지기 시작하고 어린아이 주먹만큼 되었다. 경이롭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는 말씀이 마음에 따뜻하게 와서 퍼졌다. 맛있게 먹으려면 봉지를 만들어 열매를 싸매 준다 했나? 누군가 했던 그 말이  얼핏 생각났다. 신문지를 가로 20센티 세로 10센티 정도로 자르고 가장자리를 밀가루 풀을 쑤어 발라 봉투를 만들었다. 족히 백 장은 넘었다. 배 하나 하나 마다 봉투를 씌우고 핀으로 꼽았다. 따가운 여름 볕에 그 봉투들은 누렇게 익어가고 그 위로 비가 내리고 또 익어가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부풀어 갔다. 배는 봉투가 터져버려라 하고 커갔다.  목사님이 오신다 해서 그중 큰 것을 몇 개 따놓았다가 깎아 드렸다. 얼마나 부드럽고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지 정말 신통했다. 그 해에는 그렇게 과일 추수를 해서 동네 분들과 나누어 먹었다.
   
이듬해 배나무는 좀 적게 열매를 맺었다. 작년 추수로 진이 빠졌나 보다. 그 다음 해에는 또 많은 배를 땄다. 큰 나무만 열매가 맛있다는 편견을 깨워 주었다. 작은 열매도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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