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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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맛있는 사람(수필)

2017.12.23 12:19

라만섭 조회 수:7

맛있는 사람이고 싶다

라만섭

 

식성이 변했다. 예전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던 것도 이젠 잘 먹는 편이다. 나이 들자 철이든 것인지 입맛이 변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미각은 아직 살아 있는데 말이다.

 

해방전후와 6.25 전후의 가난했던 청소년 시절에는 찬밥 더운밥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시장을 반찬삼아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다. 점차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맛좋고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를 찾게 됐으리라 생각 한다. 콜레스트롤 이라는 사치스러운 낱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동물성 단백질은 없어서 못 먹었다. 한때는 맛 따라 흥 따라 찾아다닌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깍두기 김치는 요즈음 나의 밥상에 자주 오르는 메뉴중의 하나이다. 좀 씁스름한 그 맛은 독특 하다. 다진 소고기와 작은 새우를 넣고 볶은 고추장은 우리 집의 별미 요리에 속한다. 쓴맛 단맛 다 겪어본 터라 그런지, 이제는 특별히 맛있고 없고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맛이,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있어지기도 한다. 건강에 좋은 것이면 맛이 좀 없더라도 먹어둔다. 그런데 우리의 혀가 가려내는 미각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쓴맛, 단맛, 신맛, 짠맛, 싱거운맛, 매운맛, 고수한맛, 구수한맛.......

 

그런데 은 먹는 음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는 것을 본다. 사람마다 각각의 맛이 있다. 된장처럼 깊은 맛이 있는 사람, 신선한 과일처럼 상큼한 사람, 적당히 맛 든 짠지처럼 물리지 않는 사람, 오래 숙성된 포도주처럼 세월이 흘러도 은근히 매력이 있는 사람, 쵸코렛처럼 달콤하고 감칠맛 나는 사람, 첫사랑처럼 생각만 해도 좋은 사람, 아무 맛없이 그저 싱거운 사람, 한물간 음식처럼 신 냄새 풍기는 사람 등등.

 

나에게는 6.25전쟁 당시 군대생활중의 추억 속에 아련히 남아 있는 오래 전의 친구가 하나 있다. 1953년 휴전 직전 3.8선을 사이에 둔 남북의 대치 상태는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초긴장의 연속이었다. 서로 한 뺨의 땅덩어리라도 더 차지하기 위하여 피를 말리는 치열한 전투가 밤낮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은 초개처럼 사라져 갔다. 고등학교 졸업반 학도병 출신인 내가 19살에 육군소위로 임관 후 동부전선 5사단 의무대에 배속돼 있을 당시, 의대를 막 졸업한 햇병아리 군의관 조용을(趙鏞乙)중위가 새로이 전입돼 왔다. 흰 피부에 약간 창백한 얼굴의 조 중위는 계급이 나보다 한 단계 위이었으나 거기에 크게 개의치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그 시절 나이에 비해 다소 조숙한 편이었던 나는 서류상의 나이를 4년 위로 등록해 놓는 등의 치기를 부리고 있었다. 철없는 애송이로 알려지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한껏 청춘의 멋을 추구하는 갓 스물을 넘긴 두 젊은이는 서로 의기투합하여 가까운 친구사이로 빠르게 발전해 갔다. 초연(硝煙)이 휩쓸고 지나간 산야를 바라보면서 국내외의 가곡을 함께 부르는 감성 어린 두 청년장교 사이에서 싹튼 전우애는 자연스레 서로의 마음속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 휴가를 갈 때면 서로를 대신하여 부모님을 찾아뵙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살펴주는 형제 같은 끈끈한 관계는 2년 남짓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후방 병원으로 전근 발령을 받게 됨에 따라 우리는 헤어지게 됐다. 전쟁이 그치면 제대하여 우정의 나무를 계속해서 키워나가기를 기약 하면서. 휴전협정이 체결 된지 얼마 후에 나는 군에서 제대하였고 그 후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우리에게 재회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군에서 제대 후 못다 한 학업도 계속하고 취직도 하며 사회생활에 적응하기에 바빴던 나에게는 그동안 한두번의 주소변경이 있었다. 한편 군의관으로서 향후 수년간의 군복무규정에 묶여있던 조 중위에게도 몇 차례에 걸친 근무부대의 변동이 있은 터라, 우리 둘 사이에는 한동안 연락이 두절 됐었다. 그러면서 어느덧 4~5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서서히 자리가 잡혀 가면서 나는 조 중위의 소식에 목말라 했다. 지루하게 내리던 장마 비가 그친 어느 날, 나는 언제인가 휴가중에 찾아간 적이 있는 서울 통의동 근처의 그의 부친이 개업하고 있던 병원 사무실을 찾아 갔다. 그의 부친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많이 수척해진 듯이 보이는 그는 오래간만에 보는 나를 알아보고는 넋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서랍에서 두툼한 편지 한 뭉치를 꺼내 내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다. “이게 무엇 입니까?” “용을이가 그동안 자네에게 보낸 것인데 주인을 찾지 못해 되돌아온 편지들 일세” “용을이는 작년 1227일 타고 있던 환자 후송 앰블란스가 트럭과 충돌하여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중상을 입었는데 끝내 살아나지 못하고 가버렸다네. 곧 제대하기로 돼있었는데 .......” “을용이는 외톨이야. 자네를 마치 친형제처럼 생각했어.” “그동안 자네를 많이 찾았지. 좀 일찍 둘러주지 그랬어 이 사람아!” 대답도 못하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돌아서 나오기는 하였으나, 비 오듯 쏟아지는 눈물이 앞을 가려 한동안 나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로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자책감이 오랜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봉투 속에는 1년 전 그의 결혼 청첩장이 들어 있었다. 언젠가 둘이서 어깨동무하고 함께 찍은 한 장의 빛바랜 사진도 나왔다. 그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는 용을이의 모습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의 기억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 정녕 맛있는 사람으로.

 

맛있는 사람, 맛없는 사람 두루 오가는 세상이다. 향내는 나는 듯 한데, 맛이 없는 사람이 있다. 맛은 고사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믿음직하고 인간미 넘치는 소탈함에다 맛과 향이 같이 한다면, 비단위에 꽃을 보태는 격이 되련만. 사람도 음식처럼 시간이 가면 맛이 변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음식이 오래되면 상하듯이 사람이 오래되면 쓸모가 없어진다는 사실 이다. 거기에서 새삼 무슨 맛을 찾을 수 있으리오 만....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보다는 세월의 무게를 잘 견뎌낸 무르익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입안에 넣고 씹다가 맛이 없다고 내뱉음을 당하는 사람이 되기는 싫다. 묵은 포도주처럼 은근한 맛과 향기를 간직한 사람이고자 한다. 이왕이면 도 곁들인 있는 사람으로 기억 속에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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