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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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나잇 값(수필)

2017.12.23 11:28

라만섭 조회 수:7

나잇값

 

생로병사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겪는 여정이다. 고통스럽지만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환 과정인 것이다. 자고로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성공한 예가 없다. 태어나는 모든 것은 출생, 성장, 쇠퇴의 과정을 거쳐 사망에 이른다는 대자연의 법칙은, 비단 유기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무기체에도 똑같이 적용 된다.

 

요즈음을 흔히 백세시대라고 들 하는데, 현실에는 50세 노인도 있고 90세 청년도 본다. 태어난 햇수로 계산하는 실제 나이(Chronological Age)와 몸으로 느끼는 생체 체감 나이’(), . 장년기를 넘어서면서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유를 자주 본다. 이는 평소 건강관리상태의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는데, 최근 유엔이 내놓은 한 통계는 흥미롭다. 인생 주기를 5단계로 나누어, 17세 까지를 성장기, 65까지를 청년기, 79세까지를 중년기, 89세까지를 노년기 그리고 그 이후를 장수 노년기로 분류한다. 청년기와 중년기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는 위에서 지적한 달력나이체감나이의 괴리가 그만큼 커지고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실제 나이로는 이미 유엔이 정해 놓은 중년기를 훌쩍 넘기고 노년기에 접어들어 해를 거듭해 가면서도, 생체 체감나이 덕에 그런대로 버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대견스러운 생각이 든다.

생체 체감 나이는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조직 구성원의 체감 연령이 달력 나이에 비해 젊다면, 그 집단은 그만큼 젊고 활기 찬 공동체가 될 것이다. 맥아더장군이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시절, 그는 일본을 12살 미성년자에 비유해서 한동안 언론의 표적이 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아가 미국은 성년인 45세 정도로, 독일은 청년인 20~30대로 내다보았다. 이는 해당 국가의 과학, 예술, 문화 등 모든 사회부문을 종합하여 판단한 결과라고 한다. 한국에 대하여는 과연 그가 어떤 평가를 할런지 궁금하다.

 

실제(달력) 나이로 우주는 140억년, 태양계는 45억년 정도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사는 행성인 지구의 남은 생명은 앞으로 20억 년쯤 된다고 하니, 그 안에서 순간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는 반가운 소식으로 들린다. 짧은 삶을 사는 동안이지만 우리는 가끔 나잇값운운하는 말을 듣는다.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으로 품위를 지키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들로부터 존경스러운 어른으로 대접 받고 싶은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에 따라 객관적으로 기대되는 가치와 값이 있는 모양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관찰할 때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값은 물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써비스에도 적용된다. 또한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크게 받기도 한다. 소비자가 물건이나 써비스에서 얻을 것으로 기대 하는 기대치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생산 활동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쌍곡선을 그려 적정선에서 을 매겨준다. 예를 들어, 그림 값의 결정 요소로서 그것이 어떤 캔버스나 페인트를 재료로 하여 그려졌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누가 언제 그린 것으로서의 희소가치가 보다 중요하다. 피카소 그림의 희소가치(공급)는 구입자의 개인적 효용도(수요)와 맞물려 가격을 결정하는 절대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진짜 골동품은 오래된 것 일수록 부가 가치가 오르기 마련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림과는 달리, 나이든 보통 사람의 객관적 효용가치(몸값)는 날이 갈수록 떨어진다. 노인에 대한 수요는 바닥을 치고 공급은 남아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공급은 초과잉 상태인데 수요는 태부족이다. 하지만 몸값이 떨어진다고 지성과 영혼마저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삶을 통해서 쌓아온 지혜와 존엄과 품격은 경험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나잇값을 기대하는 연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주위에서 보는 일부 노인들을 반면교사삼아 내 나잇값은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노욕은 자칫 노추로 비치기 쉽다고 한다. 노추는 나이 값을 스스로 깎아 내린다. 한마디로 부덕(不德)의 소치인 것이다. 노추를 피하고 싶은 뜻에서, 평소의 생각을 한번 글로 옮겨 보았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자. 명예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자.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스러운 노인이 되지 말자. 욕심과 아집을 버리자. 잘난 체 자랑 말고 겸손하게, 남을 돕고 배려할 때는 조용히, 말은 되도록 적게, 차림새는 깨끗이, 불평은 금물, 돈에 인색하거나 비굴하지 않게,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실천은 나의 몫이고 나잇값책정은 남의 몫이다.

 

나잇값이 함축하는 바는, 나이에 어울리는 긍정적인 상()이다. 다름 아닌 덕()을 일컬음이다. 누구나 닮고 싶은 노년의 모습일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에 어울리게 어른다워야 어른이다. 존경받는 꼰대로서 나잇값제대로 하며 산다는 것이 거저 얻어지는 일은 아닌가 보다. ‘나잇값에 대한 갈증은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710

 

 

: ‘이 경우에 정신 연령이란 단어를 쓰는 사람도 있는데, 필자에게는 오히려 체감 나이라는 말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