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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주판 이야기

2017.12.23 19:40

라만섭 조회 수:6

주판 이야기

 

언제인가 아내를 따라 엘에이 다운타운 북쪽에 자리한 챠이나 타운에 간적이 있다. 물건 값을 치루려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60대로 보이는 가게주인은 큼직한 주판알을 튕기며 한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주판에 눈이 팔린 나는 한참을 넋을 잃고 서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주판이었다. 잠시 옛 감상에 젖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계산의 필요성은 농경 시대를 거쳐 생활 양식이 복잡해짐에 따라 점차로 늘어갔을 것이다.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계산 도구는 손과 손가락 이었을 것으로 쉽게 짐작이 간다. 그밖에 자갈, 조개껍질 등이 보조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손이 중요한 계산 수단이었다는 흔적은 고대 에짚트의 여러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기껏해야 만 단위 정도의 셈에 그치는 손 계산의 한계는 자연히 다른 계산도구의 출현을 촉진 시켰을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듯, 주판도 이렇게 하여 생겨난 여러 계산 도구 중의 하나인 것이다.

 

주판은 1950년대의 서울을 떠 올리게 한다. 아직 사무용 계산기가 널리 보급되기 전이다. 현대식 주판(Abacus)AD 1200년경에 중국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하는데, 윗부분에 2개의 알이 있고 아래에 5개가 있는 2/5식과 그 후에 나타난 1/5식이 있다. 1930년경에 일본에서는 1/4식이 출현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한국에서 쓰이던 것은 주로 1/5 또는 1/4식 이었다. 1950~1960년대 까지만 해도 주판은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계산 도구로 인식되고 있었다. 당시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국가시험을 거쳐 주판 실력의 등급을 매기는 공인 주판 급수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은행이나 공기업 또는 행정 부처에서 주판 유급자(주로 상업 고등학교 출신)를 채용하는 오래된 관행이 있어왔다. 어떤 학생은 개인 교습을 받아가며 국가시험에 대비하기도 하였으며 주판 유단자들은 자신만의 전용 주판을 지니고 다녔다. 인문계 고교 출신인 나에게 주판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 이었다. 아직까지도 중국의 오지에서는 주판이 쓰이고 있으며 러시아의 일부 지방에서는 쇼티(Schoty)라고 불리는 그들만의 독특한 주판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요즘에도 홍콩, 뉴욕, 엘에이 같은 큰 도시의 중국 촌에 가면 주판으로 계산하는 상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불과 몇 초안에 수백억 단위를 소화하는 괴력을 가진 주판 암산 법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일본 점령 미군의 컴퓨터 담당관과 일본의 주판 고수의 시합이 있었다.194511월의 어느 날 두 사람은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5라운드의 계산 시합을 가진바 있는데 승자는 놀랍게도 주판이었다. 결과는 4:1 압승이었다. 점령군의 체면을 생각해서 한번은 일부러 져주었다는 말까지 돌았다. 하지만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시간의 포함여부 문제로, 결과의 공평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론도 있었다고 한다.

 

서양 철학의 기조는 인간을 자연과 분리된 이원적(二元的) 관계에서 관찰한다. 즉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인간의 필요에 맞추어 자연의 모습을 바꿔 가는데 반하여 동양적 사고의 근본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그에 순응해가는 존재로 인식하는데 있다. 이 같은 사고 방식의 차이는 주판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주판이 주된 계산 도구 역할을 해오던 한국을 포함한 동북 아세아 지역에서는 주판셈법의 유지와 숙달이 주된 관심사 이었던 시기에, 서구에서는 계산 기구의 개량과 발명이 꾸준히 이루어져왔던 것이다. 대수표, 계산자(Slide Rules)의 출현은 이를 말해준다. 거슬러 올라가 로마 시대에도 휴대용 계산기가 있었다고 하며, 눈을 지그시 내리깐 자세로 계산기를 사용하던 당시의 직종은 요즘의 공인 회계사 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과학문명의 발달에 따른 엄청난 천문학적 계산의 필요가, 전자 계산기나 컴퓨터의 발명으로 이어진 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세계적인 전산화 바람을 일반기업이 체감하기 시작한 시점인 20세기 중엽까지는 별다른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던 시절이다.

나는 1960년대 중반 미국 원조 자금 감사목적으로 서울에 진출해 있던 미국의 5대 회계 법인중 하나인 쿠퍼스&라이브랜드(Coopers & Lybrand)에 선임 CPA자격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전문 회계 법인의 주요 경영면에는 전산화가 상당히 이루어져 있었지만, 일반 기업에서는 컴퓨터는 말할 나위도 없고 일반 사무용 계산기의 보급조차 충분하지 못한 실정이었다. 이 같은 사정은 1970년대 초반 씨드니지역 담당 회계사로 한동안 몸담았던 영국 계 제과 회사(Cadbury Schweppes)도 비슷하였다. 자동화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르지 못한 과도기적 현상이었다고 생각한다. 변해가는 계산기의 수요를 공급이 미처 따르지 못했던 시절이다. 주판은 뒤이어 나온 전자 계산기의 효용도에 밀려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마침내 주판 시대의 종언을 고하게 된 것이다. 제아무리 고수의 칼잡이라도 총잡이의 적수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 특기할 사항이 있다. 작금 서울에는 주산 학원이 백여 군데나 생겨나고 바둑, 한자 학원이 두 배 가량 늘어났다는 내용의 중앙일보 기사를 얼마 전에 읽었다. 주산교육이 초등학생들의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 효과적이라 하여 그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는 것이다. 디지탈식 교육에 치중한 인공 지능 시대에, 인성 교육을 중히 여기는 아나로그식 교육의 장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어린이들을, 더불어 사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키워 가는데 있어 옛날식 인성 교육이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삶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오던 주판 시대가 지나 간지도 오래이다. 주판 시대를 거쳐 격변의 시대를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당사자의 한사람으로서 실로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서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주판이, 잃었던 옛 정취를 자극하나 보다. 그 후 얼마 있다가 옛날식 주판을 하나 구해다가 책상 옆에 모셔 놓았다.

 

 

 

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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