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휴전

2017.12.28 01:06

김학천 조회 수:76

 인류는 기원전 3,000 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4,500 번의 전쟁을 치렀다 한다. 이는 5,000년 인류역사 중 92%가 전쟁 중이었고 8%만이 평화였다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도처에서는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에는 의미 없는 전쟁도 많다. 겉으로는 신(神)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유를 위해, 인류 평화를 위해 한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로 친구일 수 있고 가족일 수도 있는 상대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는 참혹한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가장 그리운 것은 바로 가족과 고향일 것이다. 특히 성탄절 때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103년 전,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연합군과 독일 군이 서부전선에 참호를 파고 대치하고 싸웠다. 한데 몇 개월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서부전선 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다는 벨기에에서 영국군과 프랑스 군, 독일 군 3개국이 각각의 참호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잠시 총성은 그쳤지만 습하고 퀴퀴한 참호 안에서 명절을 보내는 병사들의 마음은 스산하기만 했다. 

 이 때 독일 군 참호 쪽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술잔을 한 모금씩 기울이며 부른 '고요한밤, 거룩한 밤'이 적막한 전선에 울려 나갔다. 그러자 이에 감동받은 영국군들이 화답하면서 전쟁의 긴장감은 누그러들었다. 급기야 독일 군 장교가 참호 밖으로 나와 건너오고 영국군 하사가 마중 나가 악수를 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프랑스군들도 일어섰다. 이어 3개국 군 지휘관들은 크리스마스이브 동안만이라도 전투를 중단하고 휴전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는 서로 음식과 샴페인을 나누어 먹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며 가족사진도 서로 보여주고 주소도 교환하면서 전쟁이 끝나면 만나자고 약속도 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동이 터 새날이 밝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본래 휴전은 이브에만 하기로 했지만 전날 밤의 여운이 남아 싸움할 마음이 없어졌다. 서로의 진지를 자유롭게 오가며 병사들은 함께 축구 경기를 하고 전투에서 희생당해 벌판에 방치되었던 전우들의 시신을 묻어주는 작업도 함께 했다. 그러나 이것이 상부에 알려지면서 군사재판으로 이어지는 등 불협화음이 뒤따랐다. 그리고 이런 기적은 그 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좋은 전쟁이란 없다. 그리고 나쁜 평화도 없다.’는 말이 있다. 그 어떤 명분을 붙인다 해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일게다. 전쟁터에서 벌어진 기적 같은 크리스마스 휴전이 전쟁 없이 화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왜 죽여야만 하는가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각국 지도자들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성탄 월을 맞이해 오늘도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도 모쪼록 이런 크리스마스 정신이 가득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젊디젊은 청춘 100만 여명의 병사들이 총을 들고 24시간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남과 북, 저들의 총칼 끝에 이런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면 꿈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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