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해서 눈부신 식물적 상상력의 시

-임혜신의 시 꽃들의 진화’-

                                                                백남규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었어요. 짐승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이상한 곳 풀밭은 푸르고

산언덕이 들여다 보이는 호수의 수면은 은빛으로 빛났지요.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이렌소리도 들리지 않는 간간이 폭우가 흰 눈처럼 펑펑 쏟아져 내리는 침묵의 도시,대체

이 눈부신 폐허의 땅은 어디인 것일까요? 벌써 오래전3,4차 대전이 끝나버린걸까요?

 

 고요한 식물의 나라에서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움직이지 않는 일에는 나도 자신이

있지요. 한 때 나는 강아지풀이었고 들국화였고 호박꽃이었으니까요. 여느꽃이었을 때처럼 익숙하게 흙속에 깊이 발을 묻고 바람에 얼굴을 묻고 자폐증환자처럼 꼼짝도 않았어요. 저녁이 오고 어둠이 깊어가고 동쪽하늘에 당신의 얼굴을 닮은 둥근 달이 뜰 때 문득 먼 혹성이 내뿜는 한숨소리를 들었는가 싶었지요. 피리 소리처럼 물 위를 스쳐 지나가는 길고 애달픈 목소리, 나는 누가 먼 혹성으로 많던 짐승들을 다 옮겨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아마도 비밀의 통로가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계획도 있었겠고 배후의 조종자도 있었겠군요. 누군가는 말했지요. 보이지 않는 통로로 언젠가 모든 식물들도 사라져갈거라고, 그리고 아메바를 닮은 최초의 외계인들이 똑 같은 통로를 통해 들어올 것이라고 그러나 내 관심사는 통로가 있느냐 없느냐도 아니고 누가 어디로 갔을까도 아니고 그저 나 자신일 뿐이었어요. 짐승들이 다 사라진 정물의 산기슭에 쑥쑥 자라나는 나의 몸,그 속에 맛있었던 빵의 기억처럼 살고 있는 호수 같은 기다림이 문제였지요. 그리워하거나 기다린 적은 많았지만 특별한 대상도 없는 기다림이란 정말 처음이었으니까요.

 

 만일 내가 좋아했던 아주 논리적인 짐승이 곁에 있었더라면 말해 주었을지 모르지요.구체적 대대상 없는  것은 기다림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언어의 소리나 향기라고 봐야할 거라고,그러기에 목적하는 방향이 따로 없고 스스로의 내부와 외부를 향해 파문처럼 동시에 퍼져 나간다고 레이져광선 같은 독기가 없어 대상을 파괴하는 일도 없기 때문에 평화 시 우주 탐사등으로 사용하기도 아주 좋은 구조일 거라고, 이런 기다림은 기다림이라는 형이하학적 행위의 마지막 실현, 혹은 실체화라서 대상과의 거리가 무한으로 길어질 때 생물에게 발생하는 놀라운 돌발현상이라고.

 

 어쩌면 그는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다가와 슬프지 않고 아프지 않고 갈망하지 않는 기다림이란 불가능한 만남이나 완전한 결별에 대한 욕망의 진기한 진화인 게야,라고 중얼거리며 렌즈처럼 차가운 외계의 손가락으로 진달래꽃 화안하게 피어난 적멸의 산하, 분홍빛 내 머리카락과 발가락을 송이송이 꺾어 침실로 데려간 다음 신기한 듯 밤새도록 나의 DNA를 뒤적거렸을 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참으로 어려운 말들 나는 다 알아듣지도 못하고 주먹만한 뿌리를 깊이 더 깊이 넓게 더 넓게 내리면서 여전히 기다리고만 있었겠지요. 붉어지는 가슴을 여민 채 때로는 언덕 너머 태양을 등지고 달려올 아이들을 생각해보고 때로는 빗속에 방울방울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 소년들을 생각해보고 때로는 마차, 때로는 소를 모는 목동 때로는 당신과 내가 모래둔덕을 뛰어 놀던 것을 상상해보면서, 예쁜 짐승들의 기억을 짐승들이 다 사라져버린 황량한 풍경에 조금씩 더해주고 빼주면서 저녁종소리처럼 바알갛게 산 하나,산 둘,산 셋,산 넷, 점령해 오르고만 있었을 것입니다.

                                                                             (꽃들의 진화)

 

 6연의 비교적 긴 시다. 이 시의 시간과 공간은 미래의 지구이다.3,4차 대전이 끝나고 폐허가 되어 살아 있는 동물은 하나도 없는 지구의 어느 공간이다. 한편의 공상소설을 축약해 놓은 듯한 시이다.

 현대는 문명이 지나치게 발달하여 지구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고 개개인의 인성도 점점 더 각박해지고 있다.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16세기를 지나면서 서양인들은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자연을 파괴하고 학대하기 시작했다. 삶의 둥지인 자연을 파괴하는 진짜이유는 돈벌이이다. 자연을 거슬러야 돈이 생긴다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한 이래 일체 남의 말을 듣지 않고,남을 생각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오직 돈이 움직일 곳만 쳐다보는 괴물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보고 어떤 것은 보지 않는다. 우리 마음속에 선택체계가 있어 그것에 따라 어떤 것은 보고 어떤 것은 보지 않는다. 지구 곳곳에서 자연은 파괴되어 황폐화되고 있다. 원시림이 사라지고 사막화되고 있다. 근래에 멕시코만의 원유 유출사건으로 바다가 오염되었고 한국에서도 4대강 개발이란 이름으로 산야가 파헤쳐지고 있다. 강을 개발하여 이득을 보는 자들은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애써 외면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역사는 아마도 그런 생각을 가진 자들이 주도해 온 것같다.

 

 보이는 것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하나뿐인 지구가 신음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을 지키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자연을 지키자는 시인의 의도가 비교적 쉽게 독자에게 전달되는 힘이 있는 시이다. 의도적인 기교나 장식없이 고백투의 어조로 담담히 진술하는 화자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공감하게 된다. 나는 문학은 문학일 뿐 그것이 문학이상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엄청난 힘이란 문학이 혁명가나 사제의 역할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문학은 문학나름대로 을 어쨌든 가지고 있다. 그 힘은 또는 본능에 속하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는 기존의 사고방식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인간에 의한 자연파괴가 극에 달한 현대의 위기를 구해낼 수 있는 새로운 가치체계가 시급히 필요하기때문이다. ‘꽃들의 진화는 자연파괴와 인성파괴에 따른 지구파멸을 막아낼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의 형태는 인간과 동물 나아가 식물까지 한덩어리로 묶어서 보는 생태학적 세계관을 보이고 있다.

 

1연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일어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살풍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살아 있는 것 하나 없는 죽음의 땅을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1968년에 상영된 혹성탈출이란 영화에서는 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대신 원숭이들이 지구를 지배하는 내용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모든 동물들이 사라지고 식물만이 살아남은 지구를 보여주고 있다.

2연은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 광막한 평원의 조용함이 표현되어있다. 움직임이 없는 황량한 풍경이다. 그 때 당신을 닮은 달이 뜨고 시적화자는 먼 혹성이 내뿜는 희미한 한숨소리를 듣는다. 아마도 그 혹성은 지구의 짐승들이 옮겨간 혹성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지구를 그리워하는 짐승들의 한숨소리일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꽃이다. 제목이 보여주듯이 진화한 꽃이다. 이 시에서 꽃은 지구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 있는 존재이다. 꽃은 식물적 자아을 상징한다. 동물성을 의도적으로 포기한 자아가 꽃이다. 동물성이란 무엇인가? 탐욕과 공격성일 것이다. 타인을 해치고 망가뜨리는 속성을 버리는 것이 진화의 뜻일 것이다.

 

3연의 핵심어는기다림이다. 구체적 대상이 없는 기다림은 기다림 그 자체이다. 화자가 중심이 되고 화자를 지향하는(독백체)것이어서 시의 분위기가 감상성을 가지게된다. 그러나 예민한 시인의 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4연은 대상과의 거리가 무한으로 길어질 때 기다림은 독성이 없는 레이져광선 같은 빛이 된다. 그 빛은 내부와 외부 양방향으로 파문처럼 퍼져나간다. 논리적인 짐승은 이성이 발달한 인간일 것이다. 아마도 지구를 망쳐놓은 장본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슴은 사라져버리고 차거운 머리만 남은 불쌍한 동물은 5연에서 시적 화자()의 머리와 발을 잘라 기다림을 분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연은 기다림의 대상이 표현되어있다. 태양을 등지고 달려오는 아이. 빗속에 우산을 쓰고 오는 소년, 소를 모는 목동, 모래 언덕에서 뛰어노는 당신과 나, 예쁜 짐승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야 천국으로 들어 갈 수 있듯이 탐욕으로 눈이 벌개진 어른들은 미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낱말은 더하기와 빼기이다. 시인이 꿈꾸는 세계의 주민은 아이들이다. 탐욕과 공격성(동물성)을 빼버린 부드러움과 사랑과 평화,상생의 생명력(식물성)을 가진 존재만이 새세상으로들어 올 수 있다.

 

시읽기란 무엇인가? 한 시인의 내면을 엿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인의 목소리에 심금이 울리는가? 울린다면 왜? 그 대답은 위 시에 나타나 있다.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이 전쟁을 일으켰다. 3, 4차 대전이라면 핵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일단의 무리들이 지구가 멸망하기 전 노아처럼  지구의 짐승들을 종류대로 우주선에 태워 탈출했을 것이다. 먼 혹성으로 탈출한 짐승 중에 물론 인간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한숨소리가 지구에 살아남은 꽃에게 전달된다. 이 꽃은 누구인가? 식물화된 인간일 것이다. 동물성이 사라진-진화한 꽃-인간을 시인은 꿈꾸고 있다.지구가 더 이상 전쟁이나 자연 파괴가 없는 평화롭고 조용한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주시학 봄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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