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돌아가 기댈 자연의 품

2018.03.02 06:44

김학천 조회 수:38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언제나 그렇듯 많은 선수들의 아픔과 환희 그리고 감동으로 엮어낸 숱한 이야기를 낳았다. 한데 그중 여자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에서 우승한 제이미 앤더슨 미국 선수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녀는 '평창의 나무를 끌어안고 기(氣)를 받아 금(金)을 땄다'고 술회한 것이다. 
  이번뿐 아니라 그녀는 경기 때마다 명상을 하고 숲을 걸으며 나무를 껴안고 기(氣)를 받곤 했단다. 나무와 기(氣) 그리고 자연과 사람. 그러고 보면 한자에는 나무 목(木) 변으로 이뤄진 글자가 많은데 이는 그만큼 나무가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일 게다. 
  일례로 휴(休)자만 봐도 나무에 기대어 쉬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 이 글자에서 木(목)은 단순히 한 나무라기보다는 자연 전체를 말함일 거다. 다시 말해 '휴(休)'라는 글자 하나에도 이처럼 자연과 함께 쉰다는 철학이 들어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나무는 사람에게 자연이자 세계이고 우주인 셈이다. 해서 우주의 온갖 사물과 현상을 빽빽이 늘어선 나무(森)들이 펼쳐진 삼라만상(森羅萬象)이라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들 중에서도 제왕은 당연 푸른 소나무다. 충신의 절개에 걸맞게 소나무는 작위도 있다. 진시황이 지방 시찰 중 태산에서 갑자기 폭우를 만나 난감해졌을 때 큰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고마움의 뜻으로 그 소나무(木)에게 작위를 내려 목공(木公)이라 했던 것이 후에'송(松)'이 됐다고 한다. 세조가 품계를 내린 정이품 소나무도 있는 걸 보면 과연 나무 중에 으뜸임에 틀림없다. 
  기백 넘치는 소나무와 함께 순결하고 고고한 나무는 또 있다. 자작나무다. 이들은 시베리아 설원에서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백옥같이 흰 살결을 드러낸 채 하늘을 향해 매끈하게 뻗어 그 자태를 뽐낸다. 숲의 여왕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한반도 백두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작나무 숲도 단연코 으뜸으로 그 어디에도 지지 않는다. 올림픽이 열린 강원도 또한 소나무와 함께 자작나무 최대 서식지여서 겨울이면 눈과 함께 순백의 향연이 펼쳐진다. 영락없는 백의민족의 모습을 닮았다. 그 하얀 자작나무 줄기의 껍질은 종이처럼 얇게 벗겨져서 연인들이 곧잘 사랑의 글귀를 쓰는 연가의 메신저 역할도 한다. 그리고 사랑이 무르익어 백년가약을 위해 밝히는 화촉 또한 자작나무의 몫이다. 초가 없던 옛날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처럼 사용했다 해서 자작나무를 뜻하는 화(華)자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자작나무는 이름 또한 시적이고 정겹다.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 붙여진 그 이름처럼 연인들이나 신방의 부부가 무언가 속삭이는 것 같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스노보드 선수 제이미처럼 겨울의 자작나무 숲은 기(氣)도 주고 심신의 피로도 치유해준다니 더 말할 나위 없다. 
  이런 사랑과 치유의 자연 속에서 열린 이번 올림픽을 통해 한반도는 오랜 세월 분단으로 생긴 상처라도 씻을 듯 온통 하얗게 이룬 자작나무 숲처럼 모두 한 마음이었을 게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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