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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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중부 ,호남 고속도로를 번갈아 달리며 내륙지방으로 구례읍에 진입하니, 선조의 얼이 서려있는 고유의 전통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에서 여장을 풀면서 겸허한 심정에 설레기 까지 한다.

안개구름 덮인 지리산 준봉 노고단에서 내려가며, 화엄사 기슭 아래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양반마을 오미 행복마을이라고 일컫는 운조루 에서 하룻밤 민박을 한 후

지리산 둘레 길에서 백의종군길 의 답사가 시작된다.

오미마을은 영조52년 문화 류씨,류이주가 풍수지리설로 운조루를 지으면서 오미 행복마을로 유명하다고 한다. 마루 뒷편으로 생태 숲 산책로가 조성되어 지리산 둘레 길과 백의 종군로의 탐방객들로 발길이 머무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심초사(勞心焦思) 하였던 이 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찾아가니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 진다.

남도, 이순신 백의종군로 구간은 구례 산수유 시목지에서 시작되어 현재 산수유 테마파크로 조성된 곳 계척마을이라 부르며, 지리산 둘레 길의 밤재-탐도

구간에서 출발하는 첫 마을이다. 이곳은 당시 피난민으로 형성된 의미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이순신이 밤 재를 넘어 이곳 마을에서 주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산수유 꽃마을을

맞이하는 얼굴 모습이 떠오르게 한다.

충무공의 백의종군은 159741일에 시작,당시 당파대립의 와중에서 선조 왕명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파직되어 모진 고초를 겪고 의금부에 투옥 되었다.

전쟁중 한산섬 대첩을 비롯하여 그의 혁혁한 전공(戰功)을 고려하여 겨우

구명되어 백의종군의 명을 받게 된다.

아무런 직위도 없이 평범한 병졸로 전쟁에 참가하여 공을 세우라는 가혹한 형벌이었으나, 그에게는 오히려 치욕이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 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신의 죄 없음을 굽이 살 피 소서,

저 한몸 이야 만 번 죽어도 아까울 건 없건마는,

이 나라 일은 어찌하리오.“

 

나라에 충성하려고 했건만, 죄가 씌어 졌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려 했건만 먼저 가셨구나.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간에 나 같은 이,

또 있을 가! 어서 죽느니 못하리라.“

 

이 충무공이 나라를 걱정하는 고심, 우국충정( 憂國衷情)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난중일기에서 깊은 감회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남도, 이순신장군의 백의 종군길은 다음의 코스로 요약 할 수 있다.

산수유 시목지-산동면 사무소-운홍정-지리산 호수공원-우리말 체험관-광의면 사무소-선월 마을-광의교-광의대교-지리산 둘레길-손인필 비각-구례읍사무소(헌청)-문척교-동해마을로 이어져 섬진강 황전 늘 품길, 송지채,장군의 눈물길, 순천부의 구국다짐길, 석주관 가는 길로 총 75 km 거리로 1구간에서 7구간까지 이어진다.

 

그 당시 남해안일대의 정찰과 지휘부와 교신을 통해 전략을 재구상한 길이기도 하다. 백의종군 길은 전체적으로 4개월이나 걸었던, 거리 500 km로 한양에서 충청,전북을 거쳐 전남으로 이어지는 대장정이다.

여기 제3구간,지리산 둘레 길에서 구레읍사무소(구례헌청)문척교를 거쳐 동해마을

까지 7.5km 거리는 백의종군로 구간중 관련 유적 및 인물흔적이 가장 정확하게

남아 있는 공간으로 이순신이 백의종군시 지나간 주요 거점이기도 하다.

 

미지막 석주관 코스는 구레읍에 섬진강을 따라 하동쪽으로 약10km가다보면 구례읍 토지면 송정리에 이르는데 좌측으로 높이 약10m 낭 떨어지가 바로 석주관이다.

전라도 경상도를 연결해주는 지리산의 요충지로 진주에서 구례,남원으로 향해 침입해오는 왜적을 방어하는 전략지로서 다수 순국선열들을 모셔 놓은 사적비이다.

 

백의 종군길은 15974/1-8/3까지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기까지

4개월간 조선의 운명을 걱정하여 조선수군 계획을 세워 ,원균이 지휘한

철전량 해전의 큰 폐해를 딛고 일어서, 명량대첩에서 기적의 승리를 이끄는 구국의

구상 길 이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된 이순신의 삶과 백의종군 길이라는 역사의 현장에서

오뚜기 처럼 일어섰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구례, 순천 종군 길에 그 체취가 짙게 서려 있다.

이순신장군은 늦게 무과에 급제 한 후에도 변방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자원했으며

시련과 아픔으로 굴곡진 시간을 최고가 되는 길로 만들었다. 또한 거북선, 화포를 비롯하여 새로운 무기를 계발(啓發)하고 전쟁 중에서도 전력연구와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난중일기에서 남긴 그의 비망록과 문언 등은 문무를 두루 갖춘 전략가이며 진정한 애국자임에 틀림없다.

백의종군 길에도 시련을 한탄하기보다 옛 부하들과 적정 정보를 수집하는 등 준비하

는 노고는 훗날 지휘권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위기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충 무공 정신은 준비된 자 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이순신장군은 난중일기에 평소에도기쁘다. 기쁘고 다행이다. 아직도 오히려 해낼 수 있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을 먼저 보는 사고력이 특별하였다. 충무공은 오늘 반드시 죽기로 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필사측생 (必死側生) ,필생측사(筆生側死) 로 긍정과 희망을 가진 자 만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신념을 깨우쳐 주고 있다.

충무공은 진실한 소통과 돈독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난중일기에는 1,000여명의 부하 이름이 등장하는데 일일이 관찰 기록으로 부하에 사랑과 관심을 늘 가졌다. 구례에서 순천에 이르는 백의종군 길에 과거 부하들이 삭탈관직 되어 힘없는 이 순신을 극진히 예우하는 모습은 평소 그의 인품과 사랑에 바탕을 둔 진정한 인간관계에서 연유 되었으리라.

충무공은 모든 행동의 근본은 효에서 온다고 하였다. 난중일기에어머니가 평안하시니 다행이다.” 란 구절이 82회나 기록되어 그의 효도를 짐작 할 수 있다.전쟁터에서 나라의 치욕은 크게 씻어야 한다고 가르치던 어머니에게 효심이 깊은 아들이었고

어머니의 큰 뜻을 백의종군 길에 한시도 잊지 않고 결국 적군을 물리쳐 국가 치욕을 막았다.

백의종군의 출발점인 구례 읍은 지금 지리산 탐방의 관문 역할을 한다.

섬진강의 협곡과 부근의 울창한 준봉인 노고단은 반야봉, 천왕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주봉중의 하나로 봉우리 중에서도 영봉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노고단아래 펼쳐지는 구름바다의 절경은 가히 지리산을 지리산답게 만드는 제1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남쪽으로부터 구름과 안개가 파도처럼 밀려와 노고단을 감싸 안을 때 지리산은 홀연히 아름다운 구름바다의 장관을 이룬다.

임진왜란으로 전강토가 유린되는 상황에서 이순신이 일본군을 섬멸할 계획을 구상하고 입안하던 길로, 그 발자취를 따라 선열들의 구국충정과 애민정신이 후세대들에게 전파되어 애국심을 고취시켜온 만큼, 오늘날 성웅 충무공의 정신을 높이 선양하는 역사의 현장을 직시하여 크게 재조명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당시에 잠시, 삼도수군통제사이던 원균은 칠 천량에서 왜군과 교전중 대패하고 한산도의 삼도수군 통제영까지 일본군에 넘어가는 수모를 당하였다. 그러나 이후 같은 해 7/22, 이 순신 장군이 삼도 수군통제사로 복귀, 9/16일 명랑해전에서 13척의배로 133척의 왜선을 패퇴시키고 159811/18-19 도요토미의 사망과함께 패주하는 500

 

여척의 적선과 끝까지 추적하여 용감하게 맞서 싸웠다.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끝까지 왜적을 추적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엄하게 전사하였다.

그는 이 위급한 상황에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하는 엄숙한 유언은 우리 가슴을 뭉클 하게하며 전쟁사에 영원히 새겨지리라.

 

오늘도 섬진강은 남도,백의종군 길을 감돌며 이 충무공의 애환을 안은 채

맑고 선명하게 흐르고 있다. 지안군 마이산에서 발원하여 전북,전남,경남의 312걔 시군의 유역을 거쳐서 500리 물길을 이루는 강으로 전국에서 가장 깨끗한 강이며,순국선열들의 넋이 깃든 생명의 강임에 틀림없다.

 

위대한 성웅의 발자취를 짧은 시간에 주마간산( 走馬看山) 격으로

지나쳐 버린 무모한 낭객이 아니 런지 송구스러운 상념마저 든다.

섬진강변의 용두골에서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낙조가 햇볕에 아름답게 부서지는 시간, 시원한 강바람이 온몸을 적서 주고 있다.